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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HIV/AIDS특별기획] 프렙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계설정

by 행성인 2022. 7. 25.

*2022년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HIV 노출 전 예방법 '프렙(PrEP)'세미나와 토론회를 진행하며 퀴어커뮤니티의 의약품 접근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행성인 회원 김민수 님의 후원으로 이뤄집니다. 

해당 원고는 7월 29일 HIV/AIDS인권팀에서 진행한 토론마당 '프렙(PrEP)은 누구의 것인가?'의 발제 내용을 요약한 결과물입니다. HIV/AIDS인권팀은 하반기에 내용을 보강하여 대중 토론회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김민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PrEP은 Pre-exposure prophylaxis, 노출 전 예방 요법을 의미한다. HIV/AIDS에 노출되기 전부터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함으로써 감염을 막는 요법으로, 2012년 FDA/WHO에 의해 승인된 요법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효과를 인정받아 널리 퍼져 있으며, WHO 필수의약품에도 등재되어 있는 예방요법으로 한국에서는 2018년 트루바다정에 대한 예방요법 적응증이 승인되어 PrEP 목적의 처방이 가능해졌다.

 

PrEP은 2022년 기준 한국에서 한 정에 13150원의 약가로, 비급여로 처방받을 경우 한 달 4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 제한적인 요양급여 적용이 가능하나 그 기준이 협소하여, 현재 국내에서 PrEP 목적으로 트루바다정을 처방받는 경우는 수백 건 내외로 추정되어 통계조차 명확하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시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PrEP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적응증과 보험적용기준’, 학회의 권고안’ 등이 모두 다른 기준임을 이해해야 한다. 심평원의 적응증은 이 경우에 약을 투여할 수 있다는 기준으로, 적응증에 맞지 않은 약제의 투여는 심평원 차원에서 삭감 등이 이루어진다. ‘보험적용기준은 적응증 중에서도 건강보험요양급여를 지급하는, 즉 보험 적용이 되는’ 경우에 대한 기준이다. 다시 말해, 적응증에 속하지만 보험적용기준에 맞지 않는 집단의 경우에는 약을 처방받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약을 전액 본인부담으로 처방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PrEP의 적응증에는 ‘HIV-1 유병률이 높은 지역 또는 사회적 네트워크 내에서 성생활을 하는 경우가 들어 있으며, ‘콘돔을 불규칙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경우’, ‘성관계 파트너의 HIV-1 상태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모두 적응증에 속한다. 그러나 PrEP 요법의 보험적용기준은 달라,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에 속하는 경우에만 급여가 적용되어 최대 약가의 25%까지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대한에이즈학회는 PrEP 권고안을 통해 성적으로 활동적인 MSM에게는 모두 PrEP 권고가 필요함을 명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같은 약제에 대해서도 심평원의 적응증과 보험적용기준, 대한에이즈학회의 권고안이 모두 다른 상태로 각 단위의 이해관계에 따라 PrEP에 대한 관점과 접근태도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PrEP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가 있는 단위들로 여겨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감염내과와 대한에이즈학회를 필두로 한 의료계,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PrEP 사용의 당사자가 되는 MSM 커뮤니티에 대해 HIV/AIDS 운동은 어떤 접근을 하고 관계를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 하에서 발생하는 처방에 대한 평가를 하는 기관으로, 처방의 급여 적용 기준 역시 이곳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공공기관으로 새로운 약물이나 처방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다. 심평원의 PrEP에 대한 의견은 직접 확인한 바는 없으나 PrEP의 좁은 보험적용기준과, 보험적용기준 확대 시도가 수 차례 기각된 것으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PrEP에 대해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결과물을 예방하는데 국가 재정을 사용한다는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PrEP 급여적용 확대를 위해서는 심평원의 성적 보수주의적 관점(“PrEP을 확대하면 보험이 동성애를 부추기게 된다”), 개인 책임론(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른 결과물을 공적 자금으로 예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   대한에이즈학회 / 감염내과 의료계

 

감염내과와 대한에이즈학회는 PrEP이 처음 해외에서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PrEP에 대단히 적극적이었으며, 이는 2017년 PrEP의 도입 전에 벌써 발간된 국내 HIV 노출 전 예방요법 권고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PrEP의 적응증 승인, 보험적용 승인에도 감염내과 의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약가 문제에 대해 대체로 관여하지 않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고약가에 대한 비판은 주로 보험적용기준의 협소함에 대한 비판이지 약가 자체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아직 감염내과에서조차 도덕적 낙인 없이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PrEP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사에게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기탄 없이 이야기하고, 도덕적 판단이나 성행동에 대한 교정 시도 없이(콘돔 없는 성행위 등의 간단한 것이라도) 최선의 의학적 조언을 받기를 기대하기란 아직 어려운 일로 보인다. HIV/AIDS를 직접 접하는 감염내과에서도 아직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데 감염내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진은 U=U, PrEP에 대한 정확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에이즈예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전파매개행위죄를 강화해야 한다’ 등의 경악할 만한 발언도 종종 보이고 있다.

 

의료계는 아직 섹슈얼리티를 이해하지 못한다. PrEP 처방이 안전하고 광범위하게,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와 도덕적 판단이나 낙인, 교정시도 없는 면담과 환자의 성행동 내에서 최선의 예방법에 대한 추천 등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가 높아져야 한다. 의료계 전체에서 HIV/AIDS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과 이해 역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2022년 현재, 한국에서 PrEP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길리어드)는 초국적 제약회사로 주로 여러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공급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의료지원재단을 통해 PrEP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급여 적용 및 본인부담금의 50%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캠페인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길리어드는 필수의약품의 고약가로 수많은 국가에서 여러 단체에 의해 비판받았다. 이 중 PrEP의 고약가와 독점에 대한 시위도 여러 국가에 걸쳐 수 차례 있었으며, 2019년에는 PrEP의 특허권에 대해 미국 정부에 고소당한 바 있다. 소의 요지는 기존의 HIV 치료제 트루바다를 예방요법 PrEP으로 사용하는 데 대한 연구는 미 질병청 CDC에서 진행한 것으로, 지금까지 PrEP 요법에 대한 특허와 이윤을 길리어드에서 독점했으나 CDC에도 특허지분이 있음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길리어드는 CDC의 연구에 약품을 무료제공하는 대신 특허는 길리어드가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반박하였으나 그 이상 논쟁이 진행된 바는 없다.

 

미국에서는 타 제약회사와의 고소전 끝에 2020년부터 PrEP 목적으로 트루바다의 복제약이 도입되었으며, 길리어드는 ‘2세대 PrEP’으로 불리는 Descovy로의 drug hopping(약물 변경)을 기존 복용자들에게 강력히 권장하며 수익 보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길리어드는 최근 2022 퀴어퍼레이드 등 퀴어 커뮤니티에서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PrEP 홍보 및 소위 감염인 인권 증진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필수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쥐고 건강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인권활동에 참여하며 비판을 세탁하려는 혐의가 짙다. 고약가에 대해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적용기준을 확대하면 약가가 싸질 것이다, 현재 한국의료지원재단을 통해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약가는 보기보다 싸다 등의 회피성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길리어드는 앞으로도 퀴어 커뮤니티에서의 여러 행사에 참여를 원할 것이며, 지금은 운동과 커뮤니티가 길리어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4)   MSM 커뮤니티

 

MSM 커뮤니티에서 PrEP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생산되고 있지 않으나, 2014년 PrEP이 처음 승인되었을 때부터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을 통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는 커뮤니티 담론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 또는 제약회사의 설명을 되풀이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뮤니티 안에서 PrEP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PrEP에 대한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정보가 공유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약가와 감염내과에서 처방받아야 하는 낮은 접근성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해결 없이는 PrEP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유통되어도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처방 경험과 담론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티 외적 요인 외에도 커뮤니티에서 담론 형성을 어렵게 하는 커뮤니티 내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는 해외의 연구 논문을 참고하여 다른 나라에서 PrEP에 대한 커뮤니티 내적인 장애요소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섹슈얼리티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때로는 규범을 완전히 어기거나 거부하는데서 가치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PrEP이 명백히 도움이 되지만 섹슈얼리티의 비합리적 상황들은 사용 가능한 상황에서도 PrEP에 대한 관심을 낮춘다. 기존 비규범적으로 여겨졌던 condomless sex, ‘노콘 섹스를 합리적, 규범적으로 만드는 점에서 PrEP은 이런 비합리적 섹슈얼리티를 방해하고 합리화시키는 생의학(biomedical)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커뮤니티에서 condomless sex는 줄곧 ‘unprotected sex’로 여겨졌으며, 이로 인해 커뮤니티의 도덕은 여전히 구시대적 생의학을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PrEP을 문란함,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PrEP 사용자를 낙인화하는 커뮤니티 작용은 여러 국가에서, 특히 PrEP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소득수준/생활수준이 낮은 커뮤니티일수록 강하게 작용하였고 PrEP에 대한 신뢰도도 낮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PrEP 자체에 대한 담론도 없으며 PrEP에 대한 비판도 미미한 수준이나 PrEP 사용에 대한 내재적 낙인 역시 PrEP 담론 형성에 대해 고려해 볼 요소가 될 것이다.

 

커뮤니티에서 PrEP 사용 담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를 이야기할 때, 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커뮤니티 내의/커뮤니티 간의 정보격차와 소득격차 등에 의한 약품접근성의 격차이다. MSM 자체가 HIV/AIDS의 고위험군이나 그 중에서도 정말로’ PrEP이 필요한 고위험군 중의 고위험군 사람들은 과연 PrEP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약을 처방받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일지, 운동은 이러한 격차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PrEP 사용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