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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전장연 투쟁에 부쳐 - 행성인의 불타는 지혜를 모아보자

by 행성인 2022. 4. 3.

정리 및 편집: 남웅 (행성인 미디어TF)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와 이동권을 요구하기 위한 출근길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이준석 예비 여당 대표가 연일비난 수위를 높였는데요. 최근에는 장애운동을 조롱하다시피 비난하는 그를 향한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기도 했지요. 심지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적으로 불편을 호소하며 전장연의 투쟁방식에 이견을 제시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되는데요.

 

미디어TF에서는 그간 장애운동의 방식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투쟁을 좀더 힘있게 지지하고자 여러분과 머리를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정답은 없으니 우리 생각을 나눠봅시다. 우리의 의견이 성소수자와 인권운동에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번 설문은 3월 29일(화)부터 4월 1일(금)까지 진행했습니다. 총 6명의 회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남겼습니다. 아래 그 기록을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참여: 스누피, 흥준, 이드, 야채청년, 비오, 김정현



 

Q1. 최근의 지하철 점거에 불편을 언급한 이들 중에는 인권운동을 후원하고 응원하는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출근시간에 지장을 받으니 그냥 지지할 수만은 없었을텐데요, 여러분은 어땠나요? 전장연의 투쟁방식을 비판하는 동료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싶나요?

 

투쟁 목적이 정당하니 불편을 받아들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수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형태의 투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전장연이 이러한 투쟁을 하기 전에 '전장연'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국회의사당 앞에서 백날 농성 한다 한들 그들의 불편함을 누가 알아줄지?

오늘 민주당이 전장연을 만났다는데요. 누군가 죽겠다고 드러누워야 움직이는 현실이 참 슬퍼요. 너도 목숨걸린 일이라면 그런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을거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스누피)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일상적 행위를 과격이란 언어로 비판한다면, 진짜 과격한 존재는 이동권 집회가 아니라, 지금껏 우리가 누려 온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흥준)

 

이동권은 교육, 노동, 의료 등 많은 권리를 포괄합니다. 다리에 깁스만 해도 이동이 쉽지않은데, 너무 자기 입장에서의 편리만 추구하는것 같습니다. 탓은 서울교통공사 및 기재부에 해야합니다.(이드)

 

비장애인 분들은 잠깐의 불편이지만 장애인 분들은 평생을 이동도 못 하며 집안에서 갇혀지내왔습니다. 이동을 해야 교육을 받고 노동할 수 있는만큼 같이 목소리를 내서 인식을 바꾸어 나가면 좋겠습니다.(비오)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법이나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많았는데 그동안 장애인 동지들이 참았던 건 생각을 못 하는 건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정현)



응답한 내용들을 보면서 집회를 비판하는 논리들의 갈래가 보였습니다. 

 

1. 관계 없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정책입안자와 정부부처에 찾아가 직접 항의하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들이 순순히 만나주지 않았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번 지하철 연착투쟁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들의 현실을 가까이서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싸울 때 싸우더라도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지금까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온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고싶다는 표현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는 편리는 다른 이들의 불편을 고려하지 않은채 만들어진 질서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의 호소는 잘 들리지 않거나 쉽게 무시될 수 있기에 선택하는 개입의 방식은 더러 과격해보일 수 있습니다. 성원들의 일상을 가로막고 법의 문턱을 넘기도 합니다.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은 이들의 투쟁 방식에 대한 비난보다 이들이 이러한 투쟁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요? 퀴어퍼레이드에 문란하게 입고 나오지 말라고 훈수하는 이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3. 당신들의 싸움을 알 필요 없다, 회사에 지각하고 바쁜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냐고 묻는 실질적인 항의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들보다도 이러한 직접적인 불만은 많은 고민을 들게 합니다. 우리는 기다리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조금 우회해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출근시간 짜증과 화가 하루를 망칠 수도 있지만, 남들 피해주지 말고 싸우라는 비난 대신 조금 기다려주면 어떨까요.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에 곧장 화내기 앞서 숨을 조금 고르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드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은 제안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다른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전장연이 전철을 점거하는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이들이 싸우는 장소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싸우는 이들이 고립되지 않았음을, 당신들 곁에서 직접적으로 연대를 표하고 함께 항의하는 사람들 말고도 열차와 승강장에서 연착을 묵묵히 기다리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민들 역시 당신들의 싸움에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힘내면 좋겠습니다.  



Q2. 대선 직후 예비 여당 대표가 연일 전장연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시민을 볼모삼아' 싸운다고 말하며 이들을 고립시키는가 하면, '언더도그마'를 언급하며 소수자들이 다른 이들의 의견도 내지 못하게 한다고 비뚤어진 주장으로 여론을 흔드는데 나아가 전장연의 투쟁방식이 '비문명적'이라고까지 공격하는데요. 이 시점에 그가 이렇게까지 여론을 만들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그는 시민사회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이전 정치권의 태도와도 달랐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 이런 상황들이 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향할지 알 수 없는 일이 되었죠.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전형적인 기득권의 반응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인이 탄생했다는게 신기합니다. '척'도 못하는 정치인은 처음봐요. (스누피)

 

정치적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발언들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마음이 아닌 분노를 사는 정치가 주는 편리함을 느꼈겠죠. 하지만 그 분노는 곧 자신을 찌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혐오는 연대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흥준)

소수자 인권의 구체적인 실현을 비용과 관리에서 바라보는 처참한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은 누군가를 배제하지 말라는 요구에서 시작하는 정치적 행위이므로 불편과 이견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차이를 조율하는건 정치인의 할 일 아닌가요? (이드)

 

반대여론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인 것 같습니다.(야채청년)

 

기득권으로서의 권리를 놓지 않겠다는 뜻같습니다.(비오)

 

이제 여당의 대표인데 너무 혼자서 난리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김정현)

 

 

그의 문장들이 하나하나 아팠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남들에게 불편 끼치지말고 정식적으로 요청해라, 공론을 올리겠다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라...는 그의 십팔번 논리는, 장애인 권리를 위한 조건을 고민하기보다 권리를 이야기하고 협상할 수 있는 테이블 성사를 위한 조건만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전장연에게 가시 돋은 말을 하지만 그의 공격은 사회를 살아가는 성원들, 특히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회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있습니다. 

 

일상에 장애접근권이 얼마나 험악한지, 그 속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사회활동을 제지당하고 불편한 이들로 치부되어왔는지, 그 속에서 비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관계와 사회활동을 장애인에게는 박탈하는 환경이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외려 그는 서울 지하철역 94%에 이미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이번 대선에서 저상버스 확대를 공약으로 보여줬으니 이미 할일을 하지 않았냐는 '팩트'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는 의도적으로 팩트를 강조하면서 맥락과 삶의 감각들을 가립니다. 아무리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요구항목들을 협상대상으로만 삼는 팩트싸움이지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언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죠. 그는 상대에게 토론테이블을 요청하는데 있어 갖춰야 할 태도만을 요구합니다. 어떤 의제든 형식적인 협상거리로 좁히는 태도는 상대를 협상 대상의 프레임으로 좁힙니다. 협상을 방해하고 협상의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은 혐오하고 배제합니다. 그를 두고 '정치를 게임처럼 한다'는 시중 평가들의 배경에는 이러한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또다른 팩트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호언장담처럼 장애인을 만난 정치인과 국가기관은 십중팔구 기재부 탓을 했고, 기재부를 만나면 각 부처 탓을 했습니다. 그저 만나고 의지를 보인다는 것에 할 일을 다 했다고 등을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협상권도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잘 보이는 시간과 장소에 나와 한시적으로 점거하는 것이죠. 또 하나 있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팩트들은 오랜 시간 동료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게 했던 척박한 이동시설들을 정면에서 막으며 투쟁해온 장애운동의 성과입니다. 그것은 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준석대표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감정적 반응과 사소한 시비가 토론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기에 더욱 고자세를 취합니다. 전장연이 시위를 멈추면 만나줄 수 있다고요? 지금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당신의 협상이란 그저 핑계로 가득한 먼 약속으로, 한시적 호의와 인증샷으로만 그칠 것입니다. 지금의 태도가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기대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협상테이블에 오르기 위한 태도를 갖추라고 종용하지만, 이미 당신의 태도는 협상보다는 시혜적 정책을 얼마나 분할해줄지만을 계산할 뿐입니다. 그러고선 '언더도그마'를 말하며 소수자정치는 비당사자를 입도 못열게 한다고 엄살을 부리지요. 그의 논리는 기성 체제에서 '동성애독재'를 말하는 혐오선동의 논리를 그대로 빼다박았습니다. 소수자 우위성을 말하는 취지는 당연히 기성체제에서 소수자의 입을 막겠다는 심산일 것이고요. 당신이 제안하는 협상은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당신의 문법으로 상대를 길들이겠다는 훈수 아닌가요. 이미 국민의힘의 많은 의원들이 당신을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한 함께 살아갈 권리는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어긋날 것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그런 점에 그는 정치를 (하지 않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말하자면 정치적 표현 방식과 태도에 따라 성원을 줄세우고 이들을 일방적인 토론과 협상대상으로만 삼고서 결국 공론의 발언권은 커녕 주체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투쟁방식에만 초점을 맞춰 혐오의 대상으로, 비시민으로, ‘비문명’적인 이들로 취급하는 것이죠. 이는 종국에 변화를 혐오하는 정치를 만들고 기어이 정치를 망칩니다. 성원의 삶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가 너무 큰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목소리가 더이상 공론을 망치고 여론을 흔드는 것은 목도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현 정부와 여당이 계속 침묵하고 있는 사실은 또 다른 화를 돋우고 말이죠. 어쨋건 그 덕분에 서울시출근길은 인권의 전선이 되었습니다. 지금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투쟁은 기필코 성공해야 합니다. 



Q3. 줄곧 성소수자 운동이나 다른 시민사회운동에서는 날이 멀다하고 가열차게 진행하는 장애인 투쟁을 보며 응원뿐 아니라 약간은 부러움과 존경의 심정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운동마다 여건과 환경이 다르겠지만 말이지요. 이번 투쟁을 둘러싼 사안들을 접하며 성소수자 운동의 방향과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사실 고민이에요. 물리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기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세상인데. 우리가 저런 투쟁 방식을 채택할 수 있을까? 동력이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드네요.(스누피)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 보험화를 위해 보험공단을 점거하자!! (이드)

 

아직 활동을 많이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시민단체들과 꾸준히 연대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비오)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장판'(장애인운동판)의 기동력과 호방한 태도, 활력을 감탄하고 더러는 저렇게 싸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조건은 다를 수 있습니다. 시설을 나와 자기 공간과 일상을 일궈야 하는 장애인과, 드러내지 않고 살아도 어느정도 일상을 가질 수 있는 벽장의 역사는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데 문턱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장판의 활력을 부러워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둘을 비교하며 누가 더 잘하는지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운동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거고, 같은 기준에서 운동의 성과를 비교하는 건 오히려 기성 운동의 기준으로 맞추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오히려 서로의 조건을 한 그림 안에 엮으며 같이 싸울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일단은 내가 즐거운 운동을 만들고 싶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자는 주장이 좀 더 구체적으로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건 성소수자로서, 저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와 직장, 군대, 공공장소에서 나로서 드러내는 것, 나이를 먹고 장애를 갖거나 아프더라도 차별당하는데 반대한다는 주장 너머 불완전한 이들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와 모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배타적인 권리와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 우리를 지키는 것 너머, 공동체 안에서 나는 나답게 살면서도 얼마든지 관계 속에 협상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담으면서 말이죠. 그것이 일방적인 방어로 벽을 높이지 않으면서 안전을 확보하고, 공동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을 계속 고민하는 운동,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는 운동을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Q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누군가의 미움받는 것은 참 힘듭니다. 단체 뒤에 있는 개인일지라도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삐뚤어진 세상에 처절하게 투쟁한 분들께 무한한 박수와 응원과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스누피)

 

뉴스가 재밌고 살만하다 느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이드)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