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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기획] 활동 팀장 임기를 마치고 - 갈릭

by 행성인 2023. 1. 26.

인터뷰 정리: 미디어TF


2023년 한 해를 열면서, 행성인은 회원들이 함께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둡니다. 하지만 회원들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을 집행하면서 회의를 진행하며 크고 작은 실무들을 분담하는 역할을 맡는 이들이 있습니다. 
행성인에는 활동팀이 있습니다. 성소수자노동권팀과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HIV/AIDS인권팀은 행성인에서 주력하는 의제를 다루는 동시에, 회원들이 직접 활동에 참여하고 운영을 논의하는 기구이기도 합니다. 팀에는 팀원들의 안부를 챙기고, 활동을 제안하며 실무를 분담하며 활동을 대표하기도 하는 활동팀장이 있습니다. 
2023년에는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의 이드 팀장이, HIV/AIDS인권팀 갈릭 팀장이 임기를 마칩니다. 두 분에게 수고의 인사를 전하며,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2년 2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꺾기' 고문을 당한 난민 M씨를 지지하고 해당 보호소를 규탄하는 온라인캠페인에 참여 중인 갈릭

 
미디어TF(이하 '미'): 먼저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갈릭(이하 '갈'): 안녕하세요. 2022년까지 HIV/AIDS인권팀 팀장을 맡았던 갈릭입니다 :)
 
미: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팀장을 하게 되었나요?
 
: 저는 2019년 행성인에 가입해 그해 여름부터 팀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듬해인 2020년에 팀 멤버들이 공동팀장을 맡으면서 저도 역할 일부를 받았습니다. 팀장 예행연습을 거친 셈이에요. 2021년부터 2년간 단독 팀장이었구요. 우리팀은 멤버십의 변동이 적고 충성도는 높아서 무언가 다 책임진다는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되었어요. 다들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팀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 팀장 활동을 2년 이상 하셨는데요, 팀장직을 내려놓는 지금 감회가 어떠신가요?
 
: 마무리해서 기쁘구요. 해보고 싶었던 것들, 염두에 두었던 주제들을 이리저리 시도한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HIV라는 주제에 몰두하면서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을 팀 활동에서 풀어볼 수 있었어요. HIV 운동의 특성상 연대활동에 상시적으로 참여하면서 우리팀의 역할을 적절히 잡아가면 되기 때문에, 외로울 일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도 갖지 않았어요. 대신 현재의 지형에서 우리가 관계맺는 사람들과 가능한 작업을 하고자 했습니다. 
 
미: 올 한해 기억에 남는 팀 활동은 무엇이 있었나요? 뿌듯했던 활동과 아쉬웠던 활동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 상반기에는 4개월간 HIV 사전예방약 프렙(PrEP)에 대한 내부 세미나를 진행하고, 이를 외부에 알리는 토론마당을 열었어요. 활동팀이 회의는 매달 하더라도 이렇게 밀도있게 팀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이슈를 파고들기는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팀원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져 집중해서 의제를 파고들고, 그 결실을 더 큰 운동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몇 년간 묵혀왔던 주제였고, 제약회사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연말에는 팀 오픈하우스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새로운 얼굴도 여럿 만났어요. 섹스 얘기를 우리 방식으로 풀어보자고 한 건데 성공적이었어요. HIV 이슈가 문턱이 있고 자칫하면 딱딱하고 당위적으로 들릴 수 있거든요. 그걸 피하면서 더 많은 퀴어 대중과 섹스와 감염, 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다만 일주일 정도 지나니 남의 섹스 얘기를 왜 그렇게 열심히, 많이 들었을까 하는 피로감도 있었어요. 이런 자리는 1년에 한번이 족한 것 같아요.
아쉬운 활동은 없었습니다. 올해는 내부의 학습의 욕구와 더 많은 퀴어 대중과의 만남이라는, 우리팀의 두 가지 필요를 적절히 해소한 한 해였어요. 
 
미: 본인이 활동하는 팀 자랑을 해주세요. 다른 단체나 활동팀과 어떤 차별점이 있고 매력이 있는지 팀장님의 문장으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 소수의 팀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가진 자원들을 활동에 끌어와 풍성해지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에요. 12월에 아트선재에서 가졌던 <Visual AIDS> 행사가 대표적이에요. 이전부터 HIV와 게이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작업한 작가들과 문화산책으로 만나 교류하곤 했었어요. 미술을 하는 김재원 작가도 2021년에 초대했는데 다음해 이번 행사로 연결되었구요. 그건 제가 한 것이 아니고 팀원들 각자가 활동가로서 HIV에 대한 나름의 접근을 해온 덕분이에요. 그러니 연결되는 것만 잘해도 함께 풍성할 수 있다는 걸 느낍니다.
 
미: 활동팀을 운영하면서 어떤 지점에 역점을 두었나요? 팀장의 태도와 역할은 팀원과는 다를 것 같은데요,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나 방향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 의제이자 성소수자 이슈로서 HIV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껴요. 나름의 경험과 지식, 또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데 이걸 참신한 방식으로 공감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적은 것 같아요. 성소수자 단체의 활동팀으로서 우리팀이 의식해야 하는 것이 이 부분 같아요. 우리는 운동의 최전선이나 중심에 있을 필요는 없어요. 이미 팀원들이 활동가로서 연대운동에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어요. 대신 행성인에서는 더 많은 퀴어들과 HIV를 이야기하고, 각자의 느낌과 경험을 모으고, 이 의제가 어째서 여전히 중요한지 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팀은 HIV감염인과 비감염인, HIV운동과 성소수자운동, 게이 커뮤니티와 더 큰 퀴어 커뮤니티, 인권운동과 커뮤니티 사이에 걸쳐 있어요. HIV운동의 현안을 행성인 회원들에 전달하는 역할도 있지만, 단지 의제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거에요. 참가자들이 HIV 감염과 자신의 젠더, 운동의 경력에 국한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세팅과 언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 팀장을 하는 것이 본인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준 것 같나요?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들도 있을 듯 한데요, 가감없이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덜 외롭게 해주었습니다. 비슷한 세대의 동료들을 만나 서로의 다른 경험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의제에 대해서도 조금씩 다른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내 입장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참고할 수 있었어요. 뒷풀이를 하면서 운동 안팎의 소식들을 빠르게 접할 수도 있었다는 것도 유용한 포인트네요. 
그리고 팀원일 때는 회의가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제가 팀장을 하니 스피디하고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회의가 일찍 끝나면 뒷풀이 시간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점은... 차이가 우리의 힘이기도 하지만 피로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점? 내가 아이디어를 준비해도 반응이 시큰둥하면 더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게 돼요. 하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길들여져서 괜찮습니다.
 
미: 팀장으로서 행성인(단체 전체든, 회원이든, 운영위이든)에 제언할 점이나 바람이 있다면? 
 
: 이주민 성소수자와 이주민 HIV감염인에 더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이상 이주민 인권은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을 파악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행성인도 관련한 상담도 받고 다른 단체와 연계도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체계적으로 대처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지 점검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미등록 HIV감염 이주민의 상황은 특히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주제입니다.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그리고 감옥과 외국인보호소에서는 HIV감염인들이 국가기관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어요. 감염 사실 유출이나 독방 수용 문제도 개선되지 않고 있고요. 당사자들의 경험이 우리 운동의 의제로도 진입하면 좋겠어요. 행성인에도 연대를 요청드립니다. 
 

2021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토론회- 일하는 감염인, 당연한 사실에 익숙해지기 에서 사회를 보는 갈릭. 소주, 권미란 활동가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다.

 
미: 다음 팀을 담당하는 분에게 당부할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 섹스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과 만나기 위해서 텍스트를 함께 읽으며 양분을 흡수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때그때의 아이디어만으로 활동을 지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미: 본인이 활동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생각하게된 키워드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할 것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이야기를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다."
 
미: 팀장을 일 년 더 하게 되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거 같아요? 기왕에 임기마무리를 눈앞에 두었으니 편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 이미 머리를 비웠는데... 퀴어 으른들에게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예도 쌓아나가야 하고, 성 건강에 대한 지식도 정리되어 더 많이 공유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감염과 위험에 대해서 아직 더 많이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팀이 섹스의 현재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미: 올해 나누고싶은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활동 관련한 것도 좋지만, 꼭 활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 책을 좀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연애를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