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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에세이] 너의 의미를 찾는 너에게

by 행성인 2022. 11. 26.

 

무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1. 말의 시작, 노래의 시작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나를 따라다녔던 질문이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내 삶은 어딘가 달랐고 고통스러웠다.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문제에는 이유가 있을 테고 이유를 찾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때의 질문에 지금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답하고 싶다. 이렇게 답할 수 있기까지 긴 시간과 많은 사건이 필요했다. 그 시간의 끝에서 나는 나를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다. 정체화 이후, 내 삶은 명료해지기도 했고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선택해야 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말하거나. 말하지 않으면 나는 부정당하고 없었던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의 고통은 그대로 나의 잘못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야 했다.

 

처음에는 인권 운동을 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국회 앞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농성장을 찾아갔다. 농성장 텐트 안에서 종걸님과 미류님을 만났다. 나는 트랜스젠더로 나를 정체화했고, 정체화를 하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뭔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종걸님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해보라는 말과 함께 모든 사람이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그 무렵, 혜화에서는 여성가족부폐지 반대 집회가 열렸다. 내가 저런 자리에 선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발언을 들었다. 발언이 끝나고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한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땡볕 아래 뜨겁기만 하던 공기가 말랑해졌다. 노래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 같았다. ‘내 노래도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이거나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났다. 집회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보라던 종걸님의 말도 떠올랐다. 그래서 찾은 곳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이 있는 행동하는성소수자연대였다. 그리고 행성인을 통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저녁 문화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혜화에서의 마법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나누고 싶은 노래를 골라보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타를 메고 국회 앞으로 갔던 그날, 혜화에서의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2.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하지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부터 왜인지 새로운 노래를 쓰지 못했다. 노래로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새로운 노래를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쓴 노래들은 나의 개인적인 고통에서 나온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래들은 활동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노래는 노래고 활동은 활동이었다. 그러던 중 이 지면을 채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글을 써보겠다고 했지만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제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음악으로 풀어가는 활동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던 종걸님의 말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혜화에서의 마법 같은 순간도 떠올랐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퍼즐로 순간이었다.

 

 

3. 너의 의미를 찾는 너에게

 

이 글을 쓰는 동안 오랜만에 노래를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며, 나의 고통이 당신의 고통과 닿는 순간을 떠올리며, 고통을 노래하는 것이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 세상 속에서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농담을 나누던

사랑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이름만 알던 사람 이름도 모르던 사람

 

사라져간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

그 자리에 남은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거대한 세상 앞에 무너지지 않으려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거대한 세상 앞에 흩어지지 않으려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여기 우리가 있는데

당신을 기억하는

 

 

음악으로 풀어가는 활동의 의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르는 나와 닮은 이에게,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무력함을 느끼며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에게 이 지면을 통해 몇 마디 남겨두고 싶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네가 바뀌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계속해보자고, 너의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