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장)
트랜스젠더퀴어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증명해야한다. 트랜스젠더퀴어 인권운동에서 가시화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충분하지 않다. 이번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나는 트랜스젠더퀴어로서 반가운 언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언어를 소개하며, 이런저런 감상을 덧붙여 본다.
1일차 연구세션2, 조윤희, 〈한국에서의 무성애 지향에 대한 탐색적 연구 :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을 중심으로〉
먼저 발표문의 서론 중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선 ‘성적(sexual)’끌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해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며 더 나아가 무엇이 ‘성적’인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중략) 정체성의 정의가 너무 모호하고 각자마다 실천의 범주가 매우 달라 하나의 정체성 범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호함은 오히려 성에 대한 새로운 다양한 논의를 가능케 하는 지점이다.’
발표를 들으며 나는 무성애에 논바이너리를 대입하며 읽게 되었다. 나는 성별을 정의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고 있다. 나는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에도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다. 내가 느끼는 디스포리아(성별불쾌감, 출생 시 지정된 자신의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는 신체적인 것도 있지만 성 역할 수행에 대한 디스포리아가 더 크다. 그런데 커밍아웃할 때면, 존재하지 않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성 역할은 사회 전반에 존재하고, 나는 타인이 보기에 남성다운 것 같은 행동을 수행하기도, 여성다운 것 같은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둘 중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퀴어는 무성애처럼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누가 100%의 특정 정체성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 사람이 성별 스펙트럼 안에, 성애와 무성애의 스펙트럼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더 다양한 관계들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가 올 때까지 나는 계속 퀘스쳐너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 발표문에 쓰인 문장 중 하나를 인용하며 이 세션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 해 본다.
‘무성애를 지향한다는 것은 단지 현재의 상태에 대한 판단에 그치지 않으며 자신이 기존에 걷고 있던 길을 인지하고 사선의 방향을 발견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는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2일차 라운드 테이블, 여행자, ‘성적권리를 여행하다’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섹스어필은 어려운 문제다. 남성성 혹은 여성성으로 구분되는 ‘섹시함’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패널 중 한 명인 태로님은 성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짜기도 한다고 말했다. 원치 않은 방식이지만 가능한 쪽으로 젠더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디스포리아를 겪는다. 그럼에도 섹슈얼한 또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디스포리아를 감수한다. 이에 태로님은 ‘사회에 의해 욕망이 재편성 당했다’는 표현을 했다.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아닌, 사회의 욕망을 실천하면서 섹슈얼한 욕구를 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지정성별 여성으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들과의 관계가 더 많았다. 그 밖에도 태로님의 이야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라운드테이블이 끝난 후, 플로어에서 ‘섹스나 관계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에 대해 태로님은 ‘안정감을 느끼고 나로서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의 존재,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존재, 함께 성장해 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것들이 보편적 욕망이 아닐까요?’ 하고 답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사회에서 성별이분법과 가족규범, 그리고 애착관계가 끈끈하게 붙어있음을 느꼈다. 성별을 규정짓지 않는 사람은 다른 보편적인 행복도 거부할 것이라고, 혹은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끝맺는 말에서 다른 패널인 헤일러 님은 ‘친밀한 관계를 맺을 권리는 고립되지 않을 권리’ 라고 말했다. 누구도 고립되지 않을 권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권리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법과 제도 바깥에서, 개인이 변화해야 할 부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2일차 라운드 테이블, ‘트랜스, 운동하자’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해 온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연대하고 힘을 모아 트랜스젠더 인권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트랜스젠더의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조각보,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 단체 트랜스해방전선, 행성인의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무지개 행동에서 나와서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각 단체의 패널들은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에 있어서의 욕구를 말하면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겪는 사회화의 어려움, 청소년 트랜스젠더 관련 콘텐츠의 부족,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부재, 너무 많은 죽음과 충분한 애도의 과정 없이 외부 대응을 해야 했던 상황이 반복이 가져온 활동가들의 에너지 소진, 임금노동을 하는 상근 활동가의 부재, 당사자들과의 만남 부족 등을 꼽았다.
트랜스젠더퀴어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당사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벅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로 트랜스젠더퀴어가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는 점도 짚고싶다. 라운드 테이블의 대화를 통해, 연대 단위로,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내에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번 포럼 이후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의 활동 방향을 다시 가늠해보았다. 트랜스젠더퀴어는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서로를 설명하는 언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거대한 현실을 함께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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