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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독자참여]우리동네 무지개

[국내 최초 성‧재생산 전문의원 색다른 의원을 알아보자 1탄] 지오와 호림의 색다른의원 방문기-색다른 의원 얼마나 색다를까?

by 행성인 2023. 4. 24.

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작년 9월 성·재생산 건강 클리닉 ‘색다른 의원’이 개원했습니다. 행성인 회원이기도 한 최예훈님께서 개원한 ‘색다른 의원’은 성적 지향, 지정 성별, 장애 등에 관계없이 누구든 편안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기획한 클리닉입니다. 개원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 방문하고 싶었지만 개원한 지 6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행성인 회원 분들께 색다른 의원을 소개합니다. 지난 3월 20일, 작년부터 산부인과 진료의 필요를 느꼈으나 일정에 밀려 가지 못했던 호림과 산부인과에 대한 불쾌한 기억에 잠식당해 역시나 진료를 차일피일 미뤄온 지오(필자)가 진료와 탐방이라는 일타쌍피의 목표 아래 색다른 의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색다른 의원은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이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소품들을 사용해서 아기자기한 느낌도 더해주고요. 대기공간과 진료를 위한 공간이 입구에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최대한 내원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간 인테리어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해요. 이점은 화장실에서도 느껴져요. 누구나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배치와 안내에서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연신 오,오! 감탄사를 연발했답니다. 이런 장소들이 널리 알려져서 더 많은 장소에서 공간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저에게 산부인과는 곤란함, 난감함같은 표현이 먼저 떠오르는 곳입니다.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곤란함이라는 생경한 느낌은 불쾌와 수치의 감정으로 이어져 내내 남아 있습니다. 

 

자궁경부암 국가검진을 위해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검사를 위해서는 문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바로 여기서부터 곤란함이 밀려오는 것이죠.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지요. 저는 ‘남성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없다’ 라고 질문지 옆에 추가로 써넣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곤란함이 수치심으로 이어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검사실로 들어가 옆이 뻥뻥 뚫린 천쪼가리 하의를 받아들었을 때 간호사가 그 말의 의미를 다시 물었어요. 답변을 하고 간호사는 의사와 뭔가를 속닥거렸고 저는 그사이 옷을 갈아입었죠.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엄청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저에게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검사 필요없으세요. 갈아입고 가시면 돼요’ 그 뒤로 저를 위아래로 훑으며 검사실을 빠져나가던 의사의 눈빛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수치심이란 그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일거에요. 제가 당시 청소년이거나 만 20세를 갓 넘긴 나이였다면 그런 눈빛이 아니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가임기 여성의 쓸모를 아로새긴 눈빛이었거든요. 그렇게 여성의 몸은 나이에 따라 달리 재단 당합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적은 있어도 수치심을 느낀 적은 없었어요. 가슴이 커지고 생리를 하는 몸에 대한 거부감은 종종 있었어도 부끄럽진 않았어요. 딱 한 번 초등학교 4학년 때 원피스를 입고 등교해야 했던 날 이후로 가장 큰 수치와 부끄러움이 그날 산부인과 검사실 커튼 뒤에서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었지요. 그렇게 제게 산부인과는 곤란함에서 시작되어 수치의 감정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산부인과에 대한 기억이 어떠한가요.

 

이제 색다른 의원의 문진표를 한 번 보겠습니다.

 

 

주민등록 상의 이름과 병원에서 불리고픈 이름을 따로 적게 되어 있고, 질문을 하는 이유를 매 항목마다 간단히 적어 놓았어요. 그제야 제가 느낀 곤란함이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질문에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관계의 유무’ 대신 ‘질 내 삽입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 곤란함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다르게 질문할 수 있었다는 것을 곱씹어 봅니다. (당시의 곤란함과 수치심은 10여년이 지나 분노가 되고 있었으니..)

 

문진표를 다 작성하고 나면 간호사 선생님과 문진표를 바탕으로 상담을 합니다. 내 몸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들에 대해서 꼼꼼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러고 나서 본 진료에 들어가죠. 한 번의 진료를 위해 정성을 많이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만큼 처음 이야기 할땐 살짝 민망함이 몰려오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서너번 대화를 이어 가니 그때부턴 내 몸에 대해 할 얘기가 왜그렇게 많던지요. 내 몸을 얼마나 놓고 살았는지 깨달았네요. 

 

본 진료에 들어갈 때는 진료를 위해 환복을 해야 하는데요. 바지형과 치마형 두 개가 있었어요. 이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냉큼 바지형을 골랐지요. 이외에도 병실 안이라 촬영을 따로 하진 못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진료의자에 올라가면 간호사 샘이 코알라 인형을 안겨줘요. 진료시에 긴장을 완화하고 편안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색다른 의원의 마스코트라는데 인형도 그렇지만 그걸 안겨주는 의미가 조금 귀여웠어요. 또 하나는 모니터가 바로 눈높이에 맞춰져 있단 것이에요. 진료의자에 반쯤 누운 위치에서 바로 모니터가 보였거든요. 저는 코알라 인형보다 눈높이에 모니터를 보면서 긴장을 늦췄던 것 같아요. 불멍같은 효과랄까요. 정말 세심하죠? 

 

진료를 마치고 후속 안내를 받았어요. 제 몸에도, 호림의 몸에도 이상 소견은 없었답니다. 진료와 탐방이라는 일타쌍피의 계획으로 방문했던 색다른 의원에서 저는 오래전 산부인과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씻어낼 수 있었어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죠! 산부인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저와 같은 분들께 색다른의원 강력히 추천합니다!! 

 

[국내 최초 성.재생산 전문의원 색다른 의원을 알아보자 2탄]은 색다른 의원을 개원한 산부인과 의사 최예훈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개원까지 비하인드 스토리와 소회, 성소수자와 관련한 진료들, 행성인 회원들에게 전하는 말까지 자세한 이야기들을 모두 만나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