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국)
1.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작년 9월에 셰어의 연계클리닉 ‘색다른의원’을 개원한 산부인과 의사 최예훈(활동명 후니)입니다. 행성인과의 인연은 2017년 독서모임 ‘완독’을 통해서였는데, 초반 몇년간 한달에 한번 출석체크 하다시피 하다가, 재작년부터 이런저런 활동과 개원 준비 등으로 지금은 참여하지 못하고 있네요.^^;;
2. 개원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간호사 선생님들의 경력도 화려했는데, 함께 의기투합을 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개원 스토리는 길지만 축약해 볼게요^^ 그동안 셰어가 지향해 온 가치와 비전이 현재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 실현가능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이자 구체적인 의료 현장이 바로 색다른의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사적 경로에서 페미니즘을 만난 시기가 2015년인데, 그때부터 천천히 현재 셰어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저 역시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기 시작했어요. 셰어는 2016년 ‘성과재생산포럼’이라는 이름의 연대체로 시작해서,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루어내고 그해 9월에 단체로 설립하였는데요. 성·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의료 지원뿐만 아니라, 포괄적 성교육, 법률 및 정책 연구까지 통합하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에요. 활동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조합을 이루고 있는 단체인데,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의료 현장을 활동과 결합하는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작년까지 다른 의료 현장에서도 일은 하고 있었지만 점차 하고자 하는 활동에 한계를 느껴가는 즈음에 개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색다른의원 의료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또다른 문제였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간호사 두 분에게 각각 제안드렸어요. 마침 두 분이 모두 팬데믹 시기에 생긴 공공기관 일자리에 계셔서 개원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게 있었고요. 인생은 타이밍이죠!^^ 또 저와 셰어의 활동에 대해 이해하고 계신 상태라서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두 분의 합류 이후에 구체적으로 병원 입지부터 운영, 목표,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공부하면서 논의해 왔습니다.
3. 왜 병원 이름을 '색다른의원'이라고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왜 병원명에 산부인과라고 적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의료법에 따라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개원할 때 붙일 수 있는 명칭은 ‘○○ 산부인과 의원’으로 하거나 전문과목을 빼고 ‘○○ 의원’으로 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전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성별에 관계없이,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누구나 섹스를 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죠. 그렇다면 성적 건강이나 재생산 관련한 상담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비뇨기과, 산부인과, 외과, 내과 이런 식으로 나뉘는 시스템으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선 ‘○○ 의원’으로 하되 우리가 하려는 일들과 어울리는 이름을 찾다가 중의적 표현을 담은 ‘색다른’으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색다르다는 것은 독특한, 특별한 의미이기도 하고, 무지개색을 연상시키는 다양성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영어 이름을 지으면서 보니 ‘색다른’이 얼마나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겠더라구요^^ 결국엔 ‘색다른’의 발음 이니셜 SDR만 따서 ‘Supporting Diversity and Reproductive Health Clinic’으로 의미를 새로 조합했어요. 셰어 멤버와 조이(셰어 후원회원)의 아이디어였죠. 어쨌든 색다른의원은 산부인과가 아니라 ‘국내 최초의 성·재생산 건강 전문 의원’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내걸고, 구체적으로 어떤어떤 진료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문의가 계속 있는데^^,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로 자연스럽게 색다른의원의 정체성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4. 성소수자와 관련해서는 어떤 진료를 하고 계시나요? (트랜스여성/트랜스남성 모두 호르몬요법을 받을 수 있는지 등)
말씀드린 것처럼 성소수자 진료, 성적 정체성에 관계없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색다른의원의 핵심 목표였습니다. 대부분의 산부인과는 의료진의 질문이나 태도, 심지어 ‘미혼여성검진’, ‘임신전검사’, ‘웨딩검진’ 같이 사용하는 용어마저 시스젠더 이성애 규범에 맞춰져 있는데, 그걸 깨고자 했어요. 그래서 병원의 인테리어나 분위기, 실내 배너, 화장실 같은 시설물 표시, 검진복, 문진표, 상담시 사용해야 하는 용어와 피해야 하는 용어 등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기 위한 진료를 위해 하나하나 신경썼어요.
특히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호르몬치료는 병원 입지 선정할 때부터 염두에 둔 것이었죠. 지역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기도 하고 일부러 집 근처보다 멀리서 치료하는 이유도 간혹 있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오시더라도 교통편을 생각해서 위치를 정하는 게 중요했어요. 병원이 장승배기역이라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왜?’라고 물으셨는데, 터미널이나 KTX역과의 거리를 고려한 게 커요. 또 개원 초기부터 ‘여의사 산부인과’라고 홍보하지 않는 이유가 색다른의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군의 특성이 소위 ‘여성’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일단 호르몬치료를 받는 분들이 편안하게 오실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게 우선순위였어요. 호르몬치료는 의료보험도 안되고, 의료 정보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니 개별적으로 병원 정보만 알고 무작정 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초기부터 충분한 상담을 하고, 장기적인 건강관리를 위해 적정 비용을 유지하고 안정화된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 여성들이 성건강, 재생산건강과 관련해서 챙기면 좋을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어떤 종류의 검진을, 어떤 주기로 받는 것이 좋은지... 등등)
중요한 건 레즈비언, 바이와 같은 성적 지향이 아니라 ‘내가 어떤 기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성적 행위를 하는가’인데요. 나에게 자궁과 난소가 있다면,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검사 방법은 동일하겠죠.
검진은 크게는 3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 자궁경부에 대한 검사에요. 흔히 자궁암이라고 하면 ‘자궁경부암’을 줄여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궁경부세포검사는 국가암검진에 속해서 만20세부터 2년마다 무료검진으로 할 수 있어요. 자궁경부암은 그 원인이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으로 알려져 있는데, 감염 경로는 질을 통한 체액 감염, 그러니까 손가락이나 섹스토이 삽입만으로도 타인과의 접촉이 있었다면 감염 가능성이 있겠죠. 그래서 레즈비언이건 헤테로이건 상관없이 HPV감염 가능성이 있다면 모두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이 됩니다.
두 번째는 성매개감염(STI) 검사인데, 대부분의 성매개감염은 무증상이라서 감염된 상태인지 확인할 방법은 검사밖에 없거든요. 자궁경부세포검사와 검사방법이 비슷해서 필요한 분들은 같이 하시라고 권유드려요. 현재 STI 12종, 12가지 종류의 성매개감염 검사가 보험이 됩니다.
세 번째는 초음파 검사로, 자궁과 난소 같은 내부 상태를 보는 거예요. 검사 방법은 질이나 항문 아니면 방광을 채운 뒤에 복부로 보기도 해요. 보통 병원에서 질이냐 항문이냐를 결정할 때, ‘성관계 하신적 있어요?’라는 질문으로 퉁치기 때문에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그냥 없다고 하면 항문으로 검사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게 검사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질초음파보다 더 불편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대답을 해야 됩니다. 소위 ‘처녀막’ 신화가 아직도 남아 있고, 심지어 결혼을 안했으면 질초음파 절대 안되고 무조건 항문초음파로 한다는 곳들도 있다고 들었거든요ㅜㅜ
검사 시기는 만 20세부터 HPV 감염 가능성이 있는 분들에 한해서 자궁경부세포검사는 매년 권유드리고, 성매개감염검사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나 파트너가 바뀌어서 검사가 필요할 때 정기적으로 하시면 됩니다. 초음파검사는 자궁경부세포검사처럼 매년 할 필요는 없지만 생리 관련 증상이 있다거나 자궁근종 같은 정기적인 관찰이 필요한 경우엔 같이 하시면 되고요.
6. 작년 9월 개원 이후 7개월 정도가 지났는데요. 지금까지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그러게요. 7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 안정화되었다고 보기엔 이른 것 같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 신경쓸 것이 훨씬 많더라구요. 4월에는 ‘색다른 토크하셰어’라는 셰어와의 첫 연계사업도 시작했고, 그밖에 다른 기관 단체와도 참여형 성교육,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 지지모임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도 시작했어요. 대외적으로는 점차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동시에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사기 안치고(?) 살아남으려면 진짜 열심히 일해야 하더라구요. 그래서 운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장기전은 결국 체력이기 때문에^^
7. 마지막으로 행성인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행성인 분들 중에서도 이미 많은 분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고 방문도 하셨는데요. 사실 색다른의원이 성소수자를 위한 진료를 하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모든 병원이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인데 현실이 그렇지 않죠. 그래서 우리처럼 평범한 동네 의원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어떤 스탠다드 모델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걸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로서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행성인 회원분들, 색다른의원을 널리 알려주시고 또 찾아주세요!^^ 인터뷰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성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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