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행사는 큐앤에이와 청어람에서 진행한 '퀴어성서주석 ‘차근차근’ 함께 읽기 - 창세기편'을 통해 쓰인 원고입니다.
안시(행성인 책읽기소모임 완독)
『퀴어 성서 주석』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방문하는 도서관에 없어 상호대차 서비스로 사서를 통해 직접 책을 건네받아야 했다. 북 자켓이 벗겨진 빨간색 하드커버에 ‘퀴어’와 ‘성서’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함께 있다. 두꺼운 책을 받아 들고 몇장을 넘기다 ‘특이한(queer) 이름의 신을 믿고, 특이한(queer) 정체성을 갖고, 특이한(queer) 믿음을 믿고 사는 우리는 본래 퀴어하다’는 헌사를 읽는데 신앙과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음을 위로하는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해방의 신을 믿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정체성을 추구하며, 신이 인간이 되었다가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이야기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퀴어한 소명이라고 표현한 것이 납득되었다. 성소수자로서의 혐오와 차별 속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퀴어한 삶이 신앙의 퀴어함과 공명하면서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 책은 그 둘의 퀴어함을 어떻게 연결할까?
『퀴어 성서 주석』은 성경 이외의 유대교, 이슬람교의 문헌을 참고하여 텍스트 이면을 살펴본다. 마치 고전 작품을 읽고 풍부한 배경 이야기를 곁들이고 거기에 더해 기존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비평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꽤 유용한 경험이었다. 나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으며, 그 성경을 읽을 때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것은 단순한 텍스트를 읽는 행위와 다르게 의식과 같았다. 자못 신비주의적인 접근이었다. 하지만 성서 비평은 새로운 관점에서 혹은 도발적인 시선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란 존재를 어렸을 땐 부성을 가진 인격신으로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지식이 쌓이면서 어렴풋하게 하나님이란 존재는 비물질적이며 추상적인 존재 혹은 시스템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펼쳐 놓은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존재를 믿는 것에는 수많은 당위로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과정이 나의 신앙생활이었다. 어느 순간 그 설득이 더는 와닿지 않게 되었을 때, 신앙생활의 동력도 상실되었다. 마침내 신이란 존재하는 것이냐 스스로 질문하였다. 유신론과 무신론 중에 근거가 있건 없건 나는 신이 있는 세상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신앙생활을 접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한 신앙의 여정 속에 『퀴어 성서 주석』은 하나님 존재 탐구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아직 창세기만 읽은 상황이지만) 구약 성서학자 마이클 카든은 창세기 내러티브의 상당한 부분을 안드로진에 대한 신화로 해석한다. 인간 창조와 생명나무 등 창세기 여러 에피소드에 현현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안드로진적으로 읽어나간다. 이러한 관점은 나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첫번째는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다. 이 체계를 공고히 하는 중심에 성경이 있었기에, 어떻게 전복적으로 해석해 나갈지 궁금하다. 둘째는 섹슈얼리티 관점에서 개인적 신앙과 공동체 요구의 조화를 위해서는 신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느낀다. 왜냐하면 이성애 규범성에 벗어난 정체성은 개인 차원에서 답을 갖더라도 신앙 공동체와 연결될 때 불협화음을 내는 지점이기 때문다. 그것이 치열한 설득의 과정이든, 자기 확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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