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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후원/무지개 텃밭은 지금

[행성인이사가자] 행동하는 모두의 사무실

by 행성인 2023. 8. 22.

예정(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40일의 긴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첫 주 어느 날. 대흥역부터 행성인 사무실이 있는 카리스장원빌딩까지 가는 발걸음이 놀랍도록 익숙하여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정말 행성인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구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평등작당소

 

이 글을 읽게 될 모두가 참여했을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을 준비하던 시점부터 몇 달간 행성인은 차제연의 사무실이 되었다. 그 기간에 명동 우리 사무실을 다섯 번은 갔던가? 분명 10번은 넘지 않았다. 자주 갔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농성시기에는 아예 소회의실에 흡사 비트코인 채굴장 같은 장소까지 펼치기에 이르렀다. 날씨예측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컴처럼 보이는 거대한 데스크탑 컴퓨터들과 여러대의 노트북까지. 그 시절 사진을 보니 그때 국회 홈페이지를 해킹해서 슬쩍 차별금지법 가결로 바꿔놓을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물씬 몰려온다.

 

차별금지법 온라인 농성 당시 본부처럼 쓰였던 행성인 소회의실 모습

 

행성인 대회의실은 기꺼이 차제연 활동가들의 사무실이 되어주었다. 동료들과 합을 맞춘 깊이는 음료 취향을 아는 것으로 나타나고, 길고 긴 회의를 할 힘은 간식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나는 행성인 대회의실에 주기적으로 간식을 꽉꽉 채워두곤 하였다. 차제연의 투쟁 경험이 쌓이는만큼 나는 어느덧 행성인 공간에 익숙해졌다. 행성인으로 오는 여러 단위의 택배도 능숙히 받았고, 비품은 어디있는지, 근처에 식사할 곳은 어디가 있는지 익숙해졌다. 마음 한 켠에는 이 공간을 이렇게 내 집처럼 써도 되나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온라인농성을 마치고 대회의실 대청소를 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후련했던지. 조금이라도 신세를 갚은 기분이었다. 이제 여기로 출근하지 않는다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건 크나큰 착각…지금도 행성인 사무실로 매우, 자주 출근하고 있다.  

 

 

언제나 환대받은 장소

 

엄연히 대관절차가 있건만, 차제연의 담당자인 지오가 참석하지 않는 회의를 잡으면서도 묻지도 않고 행성인 사무실을 다음 회의 장소로 잡고는 했다. 이렇게 막(?) 공간을 써대는 것이 한두번은 언짢을수도 있건만 단 한번도 행성인 식구들은 드나드는 동료들을 냉대한적이 없었다.

 

대흥역부터 몸이 기억하는 익숙한 공간이었던 행성인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행성인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환대하기 위하여 필요한 여러 조건들을 마주하였어도 그 조건을 포기하지 않고 새 보금자리를 구하였다.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공간기금 마련을 위한 펀딩에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30여명 이상이 모일 수 있고, 연대단체의 짐들을 보관할 수 있는 30평 이상의 공간"

 

차제연도 앰프부터 시작하여 스티커, 뱃지 등의 굿즈, '집회에서 만나요'와 '평등의 약속' 을 비롯한 수백권의 소책자들까지 행성인에 신세를 지고 있다. 이사가야하니 이만 짐을 빼달라고 하기보다 이 짐들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까지 구하려는 행성인의 넉넉한 마음을 본다.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구성을 바라는 것도 성중립화장실을 마련하여 누구나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바라는 것도 모두 이 공간에 모이게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리라. 이 공간에 가장 오랜 시간 있을 사무국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보다도 방문할 사람을 위한 조건들을 우선으로 두는, 환대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행성인답다. 

 

새로이 보금자리가 될 ‘무지개텃밭’은 아마도 또 모두의 공간이 될 것이다. 행동하는 모든 활동가들에게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나누어주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다음 장소에서는 기필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무지개텃밭’ 이사를 위한 기금에 작은 마음을 보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