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이야기마당은 HIV/AIDS 인권팀에서 진행한 토크쇼 <나의 불안전한 섹스 2부: 문란하고 싶지만 성병은 무서워>에 참여한 패널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현장에서 나눈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
코코넛(행성인 HIV/AIDS인권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 보려고 했는데 성공했나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제목을 보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가 섹스를 잘 못 하는 이유에 대한 것일 예정이다. 잘 못 한다는 것에는 실제로 나의 섹스 빈도가 많지 않다는 것과, 섹스를 할 때 내가 그렇게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의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뭐, 두 가지 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긴 한데, 그래도 나름 만족하면서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섹스를 잘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최근에 우연한 기회를 얻어, 어찌어찌해서 행성인 HIV/AIDS인권팀의 작은 행사를 빌미로 내가 섹스를 잘 못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해 보게 되었다. 섹스라는 나의 지극히 쾌락적인 인생의 부분까지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진지하게 논의하게 된 게 웃기기도 하지만, 아무튼 생각을 정리해 보니, 내가 섹스를 잘 못 하는 이유가 크게 네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술을 안 마신 맨정신으로 내가 적을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함으로 스스로를 내려놓고 이에 대해 한번 나눠 보고자 한다.
데이터베이스 부족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보이는 그대로다. 섹스 경험이 많지 않음으로 인한 미숙함은 내가 처음으로 짚고 싶은 이유다. 여기서 미숙함이라 함은 섹스 테크닉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고, 상대와 연락하고, 상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가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협상, 그 모든 절차까지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퀴어 커뮤니티에 나와서 친구와 연인들, 그리고 섹스 파트너들을 만나 이런저런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으로 1년 하고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 스스로 보더라도 엄청 잘 팔리는 비주얼이나 피지컬의 소유자는 아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을 만나 보고 많은 경험을 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생각보다 섹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더라. 조금 더 일찍 커뮤니티에 나와 사람들과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경험을 쌓았으면 이십대 중반을 살고 있는 지금 퀴어로서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후회와 한탄을 하고 있을 시간에 조금 더 열심히 살아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 보고 더 많이 노는 게 더 생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감 부족
첫 번째 항목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데, 나는 애인이나 섹스파트너와의 관계뿐 아니라 여러 인간관계를 맺을 때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상대에게 내가 좋은 친구, 애인, 혹은 섹스 파트너일지 고민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에게 맞추려고 하고, 그런데 이게 섹스를 하는 상황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내가 원하는 조건이나 방법을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상대가 리드하고 상황을 정하기를 기다리는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섹스를 했더라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내가 섹스 면에서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상대방이 나와의 섹스를 불만족스럽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지레짐작해서 더 상대방에게 맞추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사실 나와 섹스를 하기로 결정한 것 또한 상대방의 선택이고, 그렇다면 나와의 섹스가 만족스러웠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것 또한 상대방이 감수해야 할 것인데, 내가 너무 내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것에만 집착했나 싶다. 내가 만족할 만한 섹스의 기준을 상대방의 만족여부로, 상대가 나의 애무에 오르가즘을 느꼈는지로만 정하고, 정작 내가 얼마나 만족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섹스를 할 때 상대방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움직임이 더 어색해지고, 나도 상대방도 만족스럽지 못한 섹스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만족스러웠던 섹스를 했던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조금 더 뻔뻔해져야겠다고, 조금 더 나를 우선으로 두는 섹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부터 내가 하게 되는 섹스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만족스러운 섹스이길 바라며, 가장 최근에 했던 섹스에서는 이것이 비교적 잘 이루어졌다는, 정말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사족을 덧붙인다.
두려움
사실 할 말이 가장 많은 항목이다. 모든 섹스가 그렇기도 하고, 내가 속한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섹스는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 백 퍼센트 안전한 섹스를 하려면 섹스를 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그럼에도 섹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하며 섹스에서 느끼는 쾌감과 오르가즘을 더 우선순위로 둔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두려움과 낙인, 불안 때문에 게이들은 콘돔을 끼고, 프렙을 먹는 사람도 있으며, 삽입섹스를 하지 않기도 한다. 내가 퀴어 커뮤니티에 들어온 초기부터 이 두려움은 나에게 깊이 내재되었다.
세상에 정말 완전히 안전한 섹스는 없으며, 이것에 굳이 목맬 필요는 없다는 것, 사람들이 섹스를 하며 두려워하는 일이 정말 일어나더라도 사실 진짜 엄청 중대한 큰 일은 아니고 섹스를 계속할 수 있음을 행성인에서 배웠다. 온갖 섹드립이 오가는 게이 커뮤니티에서도(물론 이것이 비단 게이 커뮤니티만의 특징이 아닌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섹스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일, 잠재적인 내적/외적 낙인을 말하는건 금기시되다시피 한다. 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내가 섹스를 할 때마다, 또한 섹스가 시작되어 끝나는 그 모든 시간 동안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괴롭혔다.
아니, 괴롭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지금은 다행히 두려움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옅어졌다. 사회와 게이 커뮤니티가 명시적, 혹은 아묵적으로 정한 두려움에 대한 프로토콜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두려움에 얽매이기보다는 섹스를 할 때의 만족,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 섹스를 할 때의 즐거움이 내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막연한 불안에 얽매여서 인생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내 주변에는 이제 그 불안에 대해 말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이제 그 불안을 잘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귀찮음
정말 사족으로 덧붙이는 항목 같지만, 사실 꽤 중요한 내용이다. 섹스는 귀찮다. 사람을 만나서 약속을 잡고, 이동하고, 서로 원하는 것을 확인하고, 몸의 준비(?)를 하는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든다. 그리고 가끔씩은, 섹스에서 얻는 즐거움이 그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지정성별 남성간의 삽입 섹스에서 삽입당하는 입장(바텀을 말하는 것 맞다)이라면, 그 귀찮음이 배가 된다. 서로에게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신경을 쓰는, 그런데도 가끔씩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는 그 감정은 정말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런 귀찮음이 나의 낮은 자신감과 불안과 맞물려서, 내가 굳이 섹스를 할 상대를 찾아 나서지 않고, 상대방의 섹스 제안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이걸 바꿀 수는 없는데. 내가 앞으로 이 귀찮음을 극복할 만큼 만족스러운 섹스를 하길 바랄 뿐이다.
두서없이 이런 말 저런 말 적다 보니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섹스에 대해 서면으로 이렇게 진지한 말을 하는 것이 처음인데, 마지막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이들의 섹스, 퀴어들의 섹스는(어떤 섹스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정말 미묘한 협상과 정치와 불안이 개입된 쾌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섹스를 돌아보며 내린 결론은, 결국 이런 협상과 정치와 불안에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더 많은 즐거움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행성인 HIV/AIDS인권팀의 행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다들 세이프섹스 말고 해피섹스를 했으면 좋겠다. 백 퍼센트 안전한 섹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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