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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활동 후기] 이 강의, 각잡고 찍어서 성교육 자료로 팔자! : ~성교육은 커뮤에서 배웠습니다~ 후기

by 행성인 2024. 9. 24.

착한곰 (참가자 1)

 

 

 

행성인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는 민지와는 생일이 같다는 인연으로 친해졌다. 둘 다 각자의 삶을 버텨내기만으로도 버거워서 한참을 못보다가, 7월 즈음에 시간이 맞아서 만나기로 했다. 밀린 이야기는 식당에서 끝나지 않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도 지칠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민지가 어떤 행사를 기획하는데,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주제는안전한 섹스성병이라고 했다. 호오... 이런 주제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지🧐?

 

안전한 섹스성병은 현대 도시인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아쉽게도 취급은 좋지 않다. 사람들은 섹스만 좋아하고, 섹스 후에 마추져야 할 수도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알고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 안전한 섹스가 중요하고, “콘돔을 사용해야 원치 않는 임신은 물론 성매개감염(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STIs)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어쩌구를 백날천날 떠들어봤자 타인의 신체를 내 안으로 단 한 겹의 방해도 없이 직접 받아들인다는 데에서 오는 정신적 쾌감의 유혹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후자는? 매독, 곤지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임질... 얘네는 이름부터가 너무 께름칙하게 들린다😓;;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남는건, 성병을 두려워하면서도 나는 괜찮을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버티다가 덜컥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어라며 자책하게 되는 얼굴 없는 누군가일 것이다. 아니면 아예 모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섹스를 끊던가.

 

나라고 크게 다를까. 시스젠더 이성애자들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못 받는 판에, 한국에서 게이가 받을 수 있는 성교육이 있겠는가? 게이 포르노(소위게동’)은 애널 섹스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참고 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걸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아찔하게 놀던 때가 있었는데, 콘돔을 안 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난 성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었다. “성소수자는 문란하다!”는 도덕적 비난이 날아올 때면, “문란한 게 어때서? 주체들의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성관계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마쇼😜”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누군가 성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들었을 때콘돔을 안썼다고? 대체 왜...? 제정신이야😑?”라고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민지는 <나의 안전한 섹스 1 | 성교육은 커뮤에서 배웠습니다>를 통해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대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민지는 가장 처음에의학은 성적 즐거움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기보다, 성적 즐거움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행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어디까지 그 리스크를 감내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병은 나쁘니까 무조건 콘돔 껴라. 성병 걸리면 콘돔 안낀 님 잘못 ㅇㅇ이라는 교조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대신, 성병의 가능한 감염 경로와 증상, 영향과 치료법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고민까지 포함해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성적 실천을 중단하는 것보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은 여기에 모인 모든 참가자들의 가드를 내리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뜸을 들이던 사람들도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동안 어디에도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이어갔다. “정액이 눈에 들어가도 괜찮은가요🤔?”, “안싸를 하고 나서 정액이 남으면 배가 아프다는 얘기가 커뮤에서 기정사실처럼 전해내려오는데,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나요?”, “애인이 다른 사람이랑 할 때는 괜찮았다고 하는데, 유독 저랑만 하면 출혈이 있어요. 뭐가 문제일까요?” 진짜 이런 질문을 어디 가서 할거며, 한다고 한들 누가 대답해줄 수 있을 것인가. 게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답변을 준 민지가 대단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일곱시 반부터 시작된 행사는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 마무리 할 시점이 다가왔고, ‘이 강의는 성정체성, 성지향성 따질 거 없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생각이 남았다. 성병이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가려서가면서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우리의 몸은 소중해요”, “아묻따 일단 콘돔사이에서 뱅글뱅글 도는 성교육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합작 소설『사랑 후에 오는 것들』처럼, 『섹스 후에 오(ㄹ 수 있)는 것들』같은 제목을 붙여서 성교육 영상으로 만들면 꽤나 히트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해 보면서, <나의 안전한 섹스 2 | 문란하고 싶지만 성병은 무서워>도 무척 기대가 된다. 10 11월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