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인 책읽기 소모임 완독
행성인 책읽기 소모임 완독에서는 지난 2월 『휘말린 날들』을 함께 읽고 HIV/AIDS팀과 공동으로 북토크를 준비하였습니다. 북토크를 준비하는 일은 대체로 온라인으로 만나 책에 얽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나누는 완독에 오랜만에 다른 즐거움을 주었어요. 각자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보다 책에 집중하게 된 것 같거든요. 아래 책을 읽고 북토크에 함께 했던 각자의 소감을 남깁니다.
누리
HIV/AIDS라고 하면 ‘질병’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여전히 ‘동성애’, ‘성병’을 떠올리며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에이즈를 둘러싼 온갖 억측과 집단적 공황이 여전히 활발히 배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HIV/AIDS’ 대중서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중·고등학교 때 받았던 성교육 시간 성병을 다루는 교육시간에 HIV/AIDS는 무분별한 성관계 및 주로 동성애자들이 감염된다는 설명들로 인해 어릴 적부터 무수한 공포스러운 편견과 오해들을 학습하고 이 사고가 꽤 오랜시간 내 사고체계를 잠식해 왔다. 다행히 대학원에서 HIV/AIDS의 역사, 의료적 현실, 법 등을 넘나들며 HIV/AIDS를 둘러싼 낙인이 어떻게 사회적 박탈과 위험을 조성하는지 그 과정을 공부하면서 잘못된 편견들을 없앨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감염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으며, HIV치료의 임상 의학은 혁식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차별의 장기 지속은 HIV 감염을 다른 질병과는 같을 수 없는 것으로 다뤄지는 현실이다.
책에서는 실제 에이즈 감염인의 목소리와 사례들을 통해 두려움과 낙인을 통한 감염 통제방식이 얼마나 심각한 차별을 생산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차별과 배제로 인한 빈곤, 고독, 극도의 불완전성이 생애 전 과정에 축적된 것이 경로화 되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저자는 ‘감염되다’는 말을 '감염한다'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휘말리다’라는 표현에 능동과 수동의 표현이 모두 있는 점을 들며 저자는 감염에 대한 낙인과 차별의 프레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이러스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은 단지 감염에 휘말렸을 뿐이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게 한다.
안시
활동가로써의 구체성과 연구자로써의 방향성과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HIV/AIDS에 대한 입체적인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토크에 소개해주신 유성원 작가님의 책도 접하면서, 휘말린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까지 간접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에든 휘말릴 수 있음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준 책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휘말릴 수 있도록 조금 더 나아가보겠습니다.
Jennie
『휘말린 날들』 은 친절한 책이다.
HIV/AIDS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독자들에게도
HIV/AIDS 전문 활동가가 읽고 배우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다양한 정보와 전문 지식을 담고 있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가슴 아팠고 미안했고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라도 HIV를 조금 알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언어는 문화를 만든다. 우리가 의심없이 선택하고 사용해 온
언어의 무게감을 한 번 더 느끼게 만든 휘말린 날들
그 동안 나의 무책임한 언어선택에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휘말린 날들이 나에게 내린 따끔한 채찍질에 감사한다.
조나단
『휘말린 날들』 을 읽으며 책 초반에 등장하는 도발적인 바람이 너무나 크게 마음에 닿았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HIV에 휘말리기를 바란다.”는 도발적인 바람. “이는 HIV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출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다. 순수성이 강요하는 본질주의, 몸의 불멸성에 대한 거짓된 환상, 통제와 박멸의 욕망이 아니라 열림과 취약성 그리고 상호 연루의 책임성 속에서 몸의 온전함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청하고자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청함인가. 마음을 활짝 열고 어디 기꺼이 휘말려볼까? 책이 휙휙 읽힌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들은 낯설었던 질병에 대한 모호함을 없앤다. '하다'와 '되다'의 이분법 적인 언어적인 측면에서 질병에서 낙인이 발명되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병증 그 자체의 측면에서 삶의 측면에서 이번 코로나를 격으며 입체적으로 HIV와 닿아있고 연루되어있는 내가 보이게 된다. 조각조각 알았던 HIV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나와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된다. 결국 휘말려버렸다.
지오
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입체적인가. 보건의료의 체계가 삶을 중심으로 짜여진다면 질병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감염하다’라는 중동태의 쓰임이 흥미로웠는데 북토크에서 그 부분을 잘 설명해주어서 해석과 관점을 달리 하는 언어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HIV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우리 삶 곳곳에 연결되어 있는지 - 편견이 주입되는 방식, 성적 권리, 보건의료체계, 법의 모순 등등 - 술술 읽다 보면 질병이라는 외떨어진 대상이 아니라 이 사회에 촘촘하게 연결된 지도가 그려지는 느낌이다. 풍성하다,라는 말이 딱 떨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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