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날짜: 2023. 12. 6.
초대: 타리(연구모임 POP)
참여: 남웅, 무나, 민지, H
진행 및 정리: 남웅(행성인 HIV/AIDS인권팀)
연구모임 POP, 켐섹스 보고서와 게이/MSM 커뮤니티
남웅(웅): 지난 8월 HIV/AIDS 인권팀에서 ‘함께 읽는 섹스’ 세 번째 시간으로 연구모임 POP에서 제작한 『켐섹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둘러싼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서』(이하 '켐섹스 보고서')를 읽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러다 연구모임 POP활동가들을 불러서 좀 더 깊은 얘길 해보자고 중지를 모았어요. 해서 에이즈 주간에 맞춰 POP 활동가 타리 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듣자고 해서 내부 간담회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대신 나눈 이야기들은 녹취를 풀어 웹진에 공유하기로 하고요. POP에서 타리님과 같이 활동하는 나미푸님도 같이 오시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꼭 뵙기를 바라요.
POP에 대해서 페이스북 페이지나 그동안 발행한 가이드북, 보고서 등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데요. 타리님께는 어떻게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활동과 고민도 말씀을 부탁드려보아요.
타리: POP 가 2015년에 모임을 시작했는데 크게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 둘이서 그냥 찌불찌불 하고 있고요. 보고서 뒤에 해온 활동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1년에 한두 개 정도 이벤트가 있던 것 같아요.
오늘 두 명이 같이 왔다면 최근의 경향들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좀 아쉽고, 이후에 보완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개인적인 맥락을 말씀드리면, 제가 성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HIV/AIDS 운동에 참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요. 2015년인가 유독 저에게 이미 알고 지내던 게이 친구들 중에서 PL (People living with HIV/AIDS, HIV감염인을 일컫는다_편집자) 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어요. 의제로도 그렇고 관계로도 그렇고 좀 크게 다가왔죠. 그중에 특히 한 친구와 가까워졌는데, 직업 상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고있었어요. 유럽이나 북미 큰 도시에서 열리는 게이-켐섹스-베어벡섹스(Bareback,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섹스를 일컫는다_편집자)-홈파티 문화에 대해서도 접하면서 이야기를 전해주었어요. 얘기를 들을때는 막연히 해외 문화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곧 한국에서도 섹스할때 약물을 사용하는 게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을 감지했고, 해외에서 파티와 약물을 경험한 이들이 한국에서도 관계성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지금은 돌아가신 L 사장님 있잖아요. 2010년대 중반 이태원 게이 클럽 문화를 거의 주도했던 분인데, 이후 그분에게 이태원 게이 클럽씬과 함께 해온 유구한 약물 역사를 듣게 되었어요. 클럽인지 홈파티인지에 따라서도 사용하는 약물이 다르다고 하고, 그때 유행하는 문화에 따라서 클럽의 음악이나 분위기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죠. 소위 클럽 약물이 유행할때는 LSD, 케타민 같은 것이 많이 사용되고, 그 이후에 홈파티 문화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켐섹스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요. 켐섹스 문화가 한국에 본격화되는 게 2010년 중반 이후인 것 같아요. 게이 데이팅 어플에 '하이펀', 'HF' 같은 것들을 써놓으면 알아보고 말을 거는 사람도 생기고.
POP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그 친구가 약물 사용 자체를 고민하지 않았어요. 출장 가면 하는 것, 애인이랑 헤어져서 너무 마음이 허할 때 외로움을 달래는 도구로 사용했는데, 문제는 약물이 개입된 만남은 약물이 개입되지 않은 만남에서 경험하지 않을 문제를 경험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죠. 왜 켐섹스를 할까, 왜 약물을 원할까, 약물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상황은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어떻게 다른 거지? 이건 그 친구가 깊이 질문하고 답을 함께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질문을 붙잡고 여기까지 온 거죠.
질문을 품었을때 다행히 참고하고 배우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앞선 움직임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대만 핫라인 동료들인데요. 약물이 아시아적 맥락에서도 굉장히 많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어요. 대만 성소수자 핫라인 협회(台灣同志諮詢熱線)에서도 약물TF가 있을 만큼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고요. 홈페이지를 구축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과 상담을 하고 있어요. 동아시아에서는 대만이 제일 활발한 것 같고, 대만에서 에이즈 관련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의사가 있는데 ‘하트’(HEART(HIV Education And Research Taiwan))라는 모임을 운영하죠. 그 모임에서 켐섹스 심포지엄을 만들어 진행하는데, 코로나 때 잠시 중단했다가 올해 다시 진행했어요. 주로 호주나 동아시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요. 남아시아나 서아시아의 경우는 그렇게 참여가 활발한 것 같지 않고요. 저희도 참여해서 일본, 대만, 호주 상황을 보면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구나, 정도의 감을 갖고 잇어요. 올해도 10월 25일에 켐섹스 심포지움이 열렸고, 그때 타이페이에 있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웅: POP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와 더불어서 아시아권과 한국의 게이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약물 사용과 유통의 맥락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이슈를 접하고 활동을 시작하는 과정들이 있는데, 현실을 마주하고 알기 위해 사례들을 찾으면서 자원과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국내외 활동들을 하면서 보고서를 기획했을 것 같습니다.
타리: 대만 같은 경우는 엄청난 양의 통계 조사를 갖고 있어요. 호주도 그렇고. 일본도 나인 몬스터(게이 데이팅 어플)로 HIV 관련된 조사를 했을 때 조사 참여자의 35%가 약물 사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을 했는데 아마 랏슈(Rush, 흔히 파퍼(poppers)라고 불리는, 알킬 나이트라이트(alkyl nitrite)가 포함된 파티약이라고 판매되는 제품 중 하나_편집자)가 포함된 것 같아요. 그래서 꽤 많이 나온 것 같고요.
아무튼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최소한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다만 설문 조사는 어려울 것 같고, 가능한 선에서 이야기를 모아보자고 했던 거죠.
활동의 목표 자체를 넓게 세울 수는 없었어요. 저희가 생업이 있고 전문가도 아니고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잖아요. 제가 어떤 대학에서 개설한 평생교육원에 약물 중독 상담 최고위 과정이라는 코스를 1년간 수료하긴 했는데요. 거기는 그냥 성중독, 게임 중독, 알콜 중독. 중독의 관점에서 얘길 하더라고요. 돈이 아까웠지만 어쨌든 수료증을 위해 인내하는 세월을 가졌어요.
아무튼 지금은 우리가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약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없고 켐섹스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문화를 알리고 커뮤니티 친화적인 서비스나 메시지를 제공하는 데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약물 사용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낙인이 심하잖아요. 약쟁이라고 소문이 나서 평판이 안 좋아진다던가, 살이 많이 빠지면 뒤에서 수근수근 소문이 나고. 그래서 켐섹스 문화가 게이 섹스 문화와 어떻게 관련 되어 있는지 이야기하고 이것이 HIV 낙인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 이해하면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역할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늘 자리가 되게 반갑기도 하고요.
그런 의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보통의 보고서처럼 인터뷰와 분석의 형식을 생각했는데, 도저히 공통점을 묶기 힘들다고 판단했죠. 사례가 적기도 하고 각각의 맥락이 분절됐을 때 과연 잘 전달될까, 너무 타자화되지 않을까. 너무 파편화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중요한 청자 하나를 정해서 그 사람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각자의 포인트를 잡아서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시도했어요.
보고서가 대표성을 갖기는 어렵지만 어떤 지점을 엿볼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저희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가늘게나마 인권단체랑 어느 정도의 끈이 있는 사람들인 거죠. 성소수자 단체나 PL단체에 후원이라도 한번 해본 사람이고 누구의 친구 정도가 되는 사람이라서 저희가 만날 수 있었어요. 페이스북에 공고를 냈었는데 한 명 정도 문의가 왔어요. 비수도권에 있는 분이었는데 결국은 연락이 중간에 끊겨서 인터뷰까지 진행은 못 했어요. 그래서 약물 이슈로 열어두고 만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약물과 HIV/AIDS, 내밀하고 민감한 이야기들
웅: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 중에 PL이 정말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는 보고서에 참여한 인터뷰이 분들도 대부분 PL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요. HIV와 약물이 얼마나 가깝다고 체감하시나요?
타리: HIV 연관성에 대해 말씀드리면, 해외에서는 HIV 취약계층이 MSM(Men who have sex with men)이랑 약물 사용자, 성노동자라고 나오잖아요. 한국에서는 그게 국내 실정과 다르다고 이해해왔죠. 우리는 그동안 MSM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잖아요.
약물 사용자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궁금했어요. 주사기 공유를 통해서 HIV가 확산이 되는 시점은 켐섹스 이전, 혹은 별개의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UNAIDS 보고서에 계속 등장하는 주사기 공유는 제가 알기로는 헤로인 계열, 그러니까 진정제나 진통제 계열의 주사약을 사용하는 경우인 것 같아요. 주사기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계층에서 주사기를 공유하고 교도소처럼 고립된 장소에서 주사기를 공유하면서 HIV와 관련된 취약계층이 됐던 것 같고요.
한국사회에서 HIV와 약물의 관련성을 생각한다는 건 노콘섹스 문화라고 생각해요. 메스암페타민같은 경우 계속 각성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2~3일 정도 잠을 안 잘 수 있고 밥을 안 먹을 수 있고 계속 섹스할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죠. 그런데 또 다른 효과로 탈수가 이어지니까 굉장히 감염되기 좋은 신체 환경이 만들어져요. 그 만큼 타인과 경계가 없어지는 신체적인 조건이죠. 그 상태에서 파트너도 되게 많을 수 있고. 그래서 주사기 공유보다는 콘돔 없는 집중적인 섹스, 그리고 몸의 상태 이런 것들이 이제 PL과 연관성을 만드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애초에 켐섹스로 진입하는 사람 중에 PL이 많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저희가 이 가닥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면서, 2017년 1월 대만 핫라인 활동가 2명을 초청해서 게이 클럽에서 강연회를 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 방문한 두스청(Sih-Cheng Du, 杜思誠)이라는 활동가가 쓴 소논문이 있거든요. 그 소논문을 기본으로 발표했는데, 거기에 나왔던 게 외모나 HIV로 인해서 자신감이 부족할 때 약물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두려움을 잊어버릴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HIV에 감염되고 나서 내가 어떻게 파트너를 만날 것인가 두려움이 생길 때 약물이 중간에 있으면 모든 것들을 묻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세팅된다고 해요. 그래서 너 약물 있냐고 하면 식성이 아니어도 만날 수 있고, 약물이 있다고 하면 방값도 상대방이 낼 수 있고. 그런 낙인이나 두려움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약물이 작용에 대해서는 모임 안에서도 얘기를 많이 했고 보고서 인터뷰하면서도 들었던 내용이죠. 그런 인과가 굉장히 강한 것이 PL과 약물 사용의 켐섹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거는 해외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경향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사전에 여러분이 정리해주신 질문을 받았는데요, 대답할 수 있고 못 할 수도 있는 것들이 있는데, 어쨌든 그런 이야기들을 좀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감염인이 가지고 있는 성적 낙인에 대한 고민과 약물 사용자가 되는 과정, 그리고 약물 사용자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약을 결심할 수 있고 아니면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과정을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같이 이야기 나눌 곁이 될 수 있을까.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약물 사용까지 가게 되는 여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 약물 사용으로 인해 해소되는 감정의 내용이 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약물로 인해 힘들어졌을 때, 약물을 대체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데 그것은 연애일 수 있고 다른 쾌락이나 관계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대체 가능한 게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성소수자 운동과 계속 이야기 해나갈 지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웅: 너무 중요한 말씀이고 공감도 됩니다. 그동안 약물 의제를 개인의 중독과 손상의 문제로, 사회의 병폐로 접근했다면, 그 안에서 누가 약물에 노출되는지, 약물에서 기대하는 감정은 어떤 결핍이나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인 맥락과 연결되는가를 살피고 여기서 공동체의 역할을 어떻게 고민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네요. 한편으로는 커뮤니티의 어떤 결핍된 부분에 약물이 틈입해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보고서를 읽고 질문을 만들면서 HIV/AIDS인권팀에서는 보고서에 대해서 왜 편지 방식을 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건 앞에 설명해주셨고, 인터뷰이를 확보한 과정도 잠깐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체에서 조금이나마 연이 닿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알음알음 일곱 분을 섭외했던 거고요.
관련해서 또 다른 질문이 있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이야기를 편지로 가공했잖아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공한 것에 대해 인터뷰이들은 어떤 반응이었는지, 어렵긴 하겠지만 그분들 중에는 이 편지를 수신자에게 전달하기도 했을지, 했다면 어떤 응답을 받았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타리: 첫 번째 분은 수신자가 명확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막 어플에서 (약물이) 궁금해요, 나도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게이한테 전하는 얘기여서 이분은 딱히 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누군가 보기를 원할 수 있겠지만요. 다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동료 ‘t’는 저니까 되게 그렇네요.(웃음)
보고서에는 애인 있는 분이 2명 나오는데, 한 분은 약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애인에게 알렸어요. 그래서 아마 읽어봤을 거고. 직접적으로는 2명 정도, 다른 분들은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서 아마 전달하지 못했을 거고, 보고서가 돌고 돌아 그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요.
웅: 2022년 7월쯤 POP가 보고서 발행하는 자리를 열어서 참석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로 행성인에서 다시 이야기를 듣는 거기도 한데요. 그전에도 게이 커뮤니티와 HIV/AIDS, 약물 이슈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나요?
타리: 사실 보고서 나오면 좀 이야기할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고, 1순위가 행성인이긴 했어요.
웅: 드디어 만났네요. 어깨가 웅장하고 가슴이 무거워지는… 말씀 들어보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열망도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숨겨야 하는 사회적 제약이나 금지가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할 거 같아요.
타리: 약물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거나 부작용으로 환청이나 우울, 불안이 올때가 있는데 그럴때 평소 자기를 짓누르는 무거운 문제점이나 한국사람의 경우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살다가 캐나다로 이주한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이 토론토에서 약물 파티에 갔다가 환청이 온 거예요. 그래서 너무 불안하다, 지금 경찰이 문 밖에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캐나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면서 여기는 경찰이 오지 않는다, 왜 경찰 생각을 하냐, 마음 편하게 즐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얘들은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없구나, 생각했다고 해요. 정신병이 얼마나 사회적인가를 또 너무 그때 알게 됐고.
약물 부작용이 발현하는 방식도 외부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해결하지 못하거나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문제가 확대 돼서 드러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죠. 약물을 사용하는 과정이나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테고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도 알게 될 거고요. 약물 때문에 힘들어졌을 때 약물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커밍아웃 이슈 등 평소에 본인이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어떻게든 직면해야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또 알게 됐죠.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이나 상담가들이 이해할 지점이 아닐까도 생각을 했어요.
취약함을 덜미 삼아 커뮤니티를 망가뜨리는 공권력
웅: 약물 이슈는 퀴어커뮤니티에서 이야기하기 까다로운 주제죠. 머리로 지식을 채운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고, 자칫 법적이고 도덕적인 판단부터 앞세우게 되면 세부의 맥락들을 놓치기도 쉽고요. 오히려 도덕적인 규범이나 편협한 통념에서 가십과 편견이 과잉 생산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약물마다의 차이나 접근하게 된 상황을 따지기엔 과중하게 징벌적인 낙인이 큰 것도 그렇고요. 법적인 부담이 크기에 당사자가 나서기 어려운 지점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무게를 갖는 것 같기도 한데요. 해서 연구모임 POP를 비롯한 약물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활동하는 분들은 이슈에 대해 단순히 중독과 단약의 문제로 좁히기보다 낙인과 관계의 문제로 설정하고 개인의 결핍과 손상이 어떤 맥락에서 구성되는가를 살피는 데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아까 경찰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 약물 이슈에서 경험 있는 개인을 드러낼 수 없는 지점에는 약물 행위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약물을 누가 유통하고 사용했는가를 찾기 위해서 경찰들이 사용자를 많이 들볶잖아요. 잠복 수사를 하면서 함정 수사 조력 같은 것들을 강요한다거나, 이런 부분도 보고서에 상세하게 나오는데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저는 공권력이 커뮤니티에 어떻게 개입을 해서 공동체의 친밀함을 망가뜨리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게 약물에 대한 커뮤니티 내부의 낙인 어떻게 더 재생산하는가 하는 것도 또 알게 되었고요.
타리: 저희가 2017년에 논평을 한 번 냈어요. 매년 집중 단속기간을 운영하고 발표하는 경찰청 브리핑 자리가 있었는데, 단속 경로에 대한 통계를 낸 거죠. 그런데 거기에 게이 데이팅 어플 이름이 그대로 나와있었다고 해요.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해서 브리핑에서는 가려지긴 했다는데 이미 경찰은 많이 알고 있고, 알게 된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일단 검거가 되면 저쪽에 이제 안암동에 있는 마약 수사대, 마수대에 가서 조사를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들도 대부분 거기에서 조사를 받았어요. 단속 된 사람들이랑 쫙 앉아 있는데 인적사항부터 시작하잖아요. 연봉을 물어보더래요.(다들 놀람) 연봉을 말했더니 깜짝 놀라더래요. 아 얘는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애라고 경찰이 인식한 거죠. 근데 옆 사람은 무직이었어요. 그때부터 완전 대우가 달라지는 거죠. 다짜고짜 반말하고, 그걸 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모멸감이 들었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경찰은 잡혀온 사람들에게 어플 열어서 계속 사람들한테 제안하라고, 함정 수사에 협조하라고 요구했다고 해요. 제가 아는 사람은 하는 척만 했지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는데, 경찰도 그걸 강요하지는 않았던 거죠. 근데 연봉 적고 사회적 지위 없어 보이고 지지하는 자원도 없어 보이는 사람한테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사람처럼, 계속 끌고 다니면서 너는 우리가 선처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검찰 조사받을 때까지 계속 협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거죠. 함정 수사 문제도 계급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무게가 집중되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초범은 많은 경우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가 나오는데요, 그러면 이제 마약퇴치운동본부에 가서 일주일간 교육을 9시부터 6시까지 받아요. 그것도 정규직들은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받겠죠. 근데 그렇게 휴가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당장 일자리 그만두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여기에 높은 비용도 불평등하게 전가되는 거고요.
웅: 타리님 이야기 들으면서 약물 이슈에 대한 과도한 낙인 외에도 약물 사용자를 법적으로 다스리는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태도에도 세부적으로 계급적이고 위계적인 태도로 사안에 응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떤 위계들이 교차하고 있는가를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앞서 약물과 HIV를 함께 이야기 들었는데, 관련해서 올봄엔가 마약 사건이 한 번 터졌어요. 약물 관련해서 부산지역 언론에서 단독 취재를 걸기까지 했는데, 대충 기억해보면 60여 명을 다 검거했는데 이들이 다 HIV 감염인이라고 심각하게 얘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저는 예전에 일간지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관련 이슈를 대중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일단 이 이슈를 쓰려면 데스크부터 설득시키고 수위와 메시지 방향을 정하는 것부터 불화가 생기는 거죠. ‘환각 파티’ 맞지 않냐, 이렇게 당연하게 얘기하는 지점에서는 이분들을 어디서부터 설득해야 할지 벽을 마주하는 기분도 들었어요. 또 이들이 전부 감염인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은데, 경찰에서 브리핑했다고 하면 또 사실확인에서부터 힘을 소모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드는 거죠. 사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고요. 근본적으로는 이 사건에 HIV가 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고 대서특필을 하는 건가 싶은 거죠.
타리: 경찰이 바로 물어본대요. 너도 ‘H’냐고, ‘히브’냐고, 그놈의 히브. 진짜 똑바로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물은 결과를 기자들에게 브리핑했겠죠.
언론 보도들이 묘하게 게이라고는 말 안 하는데 감염인이라고는 밝히잖아요. 게이라는 사실을 아우팅하면 안 된다는 내용은 매뉴얼에 있는데 HIV를 알리는 건 공중보건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HIV감염인이 여성이었을 때, 이 여성이 성노동자라는 걸 공중보건의 필요에 따라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언론에 노출하는 것인지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러한 필요가 있다고 언론이 인식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질병’과 ‘전파'를 우려하면서 범죄화를 정당화했던 논리인 거죠. 이 질병 정보가 HIV가 아니었으면 굳이 알리지 않았겠죠. 코로나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릴 것인가도 정치적으로 정해졌잖아요. 아무튼 올봄에 터진 그 사건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대응을 하지는 못했죠.
웅: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언론의 인권의식은 어느 정도 학습되었지만, 약물이나 섹스, HIV/AIDS와 같은 성적 도덕 규범이 작동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드러내는 지점들, 그걸 일종의 공익적인 태도로 이해하는 경향들도 그렇고요. 약물 사용자는 범죄자라는 논리가 저 사람을 마구잡이로 뜯고 괴롭히고 사생활이나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가 있겠죠. 그걸 공익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편으로는 경찰들이 함정 수사에 약물 사용자를 이용하거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다른 대우를 하는 점들에 있어서 공권력이 어떻게 사적인 친밀함이나 공동체에 개입하고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약물의 맥락, 만남과 연대의 물밑작업
타리: 제가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시작하긴 했는데요, 이야기하면서 여기 계신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실지 듣고 싶기도 해요. 뭐랄까, 저는 HIV/AIDS인권팀에서 보고서를 읽게된 계기가 궁금해요. 왜 읽자고 결정을 하셨는지, 그리고 좀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슈라고 생각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지도 듣고 싶어요.
웅: 질문을 생각하는 동안 잠깐 간담회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면, 저희가 올해 ‘함께 있는 섹스’라는 책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한 해 동안 글로라도 섹스를 배우자고. 많이 읽진 않았고 세 번 정도 함께 읽고 웹진에 에세이를 남기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POP의 약물사용자 보고서는 제가 제안했어요.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SF 소설이거나 번역된 이론서였는데요, 지금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다루는 텍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HIV랑 관련해서는 게이 섹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종종 LGBT커뮤니티에서 게이의 성애가 과잉대표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이 안에서는 충분히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저야 활동하면서 타리님 같은 동료들에게 풍문으로든 뭐로든 듣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켐섹스 하는 이들이 많이 출현하고 있다는 걸 알죠. 그게 ‘나 약한다’는 노골적인 표현보다는 데이팅 앱에서 암호처럼 자음을 남긴다거나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 알아보는 식으로 유통하고 사용하는 거겠지만요. 그러다가 보고서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서 읽어봤는데, 약물사용자의 이야기를 담지만 커뮤니티를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받았어요. 보고서에 차마 남기지 않은 이야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면서 활동가를 초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자고 논의했죠.
저희 팀은 게이 섹스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구성원이 게이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보고서를 읽으면서도 자신들의 관점에서 의견이나 질문이 다양하게 나오는 걸 보면서, 이참에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자리를 마련했던 배경이 있습니다.
무나: 저는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봤다기보다 의제를 다루는 형식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읽었어요. 앞서 통계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접근보다는 개인 경험에 기반한 서사를 바탕으로 문학적인 방식으로 보고서를 내신 거잖아요. 그게 구술 생애사 작업과는 좀 다른 접근이라 형식이 좀 흥미로웠어요. 앞서 말씀 듣기는 했는데, 인터뷰이를 어떻게 접촉했을지, 인터뷰할 때 어떤 약속을 하고, 어떤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인터뷰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선에서 가공을 했을지, 그리고 한 인물 한 인물이 진짜로 한 인물만 지칭하는 건지 아니면 의도에 따라 편집한 것인지도 궁금했어요.
타리: 섞지는 않았어요. 이게 편지가 되다 보니까 약간 그 사람에 빙의해서 쓰게 되긴 했던 것 같아요. 소재들은 그 사람 말속에 다 있지만, 선후 관계라든가 연결지점들은 가공 됐다고 볼 수밖에 없을 거고, 그걸 당사자에게 보여드렸을 때 대부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크게 어긋나지 않았죠. 그중에 한 분은 제가 베프에게 쓰는 편지로 가공했는데 그분 거는 실리지 못했어요. 자신의 이야기가 출판이 돼서 이렇게 나오는 게 많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잖아요.
웅: 인터뷰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던 거죠?
타리: 네. 대부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약물사용자 자조모임 같은 걸 해볼까 얘기 나누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단약을 목표로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약물 이슈에 대해서 안전한 공간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사용자뿐만 아니라 비사용자 중에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만한 사람들을 모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뭐랄까, 트리거. 자꾸 얘기하니까 (약을)하고 싶다고 하는 거죠. 이 모임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힘든데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저희가 응급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에 대한 가이드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가이드를 모임에서 같이 번역하고 업로드하는 것으로 일단 그 모임을 마무리한 적이 있죠.
서너 번 모임을 갖다가 켐섹스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번역했어요. 데이비드 스튜어트라는 영국 활동가가 만든 ‘켐섹스 케어 플랜’이 있는데 피오피 활동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 취지에 많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상황을 평가하고 내가 원하는 게 줄이는 건지 중단하는 건지, 아니면 더 잘하는 건지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자원이 뭔지 생각해 보는 건데요,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리고 주변 사람으로서 어떤 걸 물어볼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저희 기조를 잡는 데 좀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이 케어플랜이 여러가지 언어로 번역되어있는데 한글어 번역을 피오피가 했었고요. 자조모임에서 번역했던 응급상황 매뉴얼도 케어플랜 후속작업이었어요.
웅: 최근에는 게이커뮤니티에 약물 사건이 많아지면서 단체 안팎의 활동가들과도 얘기를 나누곤 해요. 잘 모르니까 깊은 얘기까지 들어가지는 못하고, 약물에 대해서 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죠. 대체로 약물이 초래하는 손상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비범죄화나 징벌을 가볍게 하자고 주장하더라도 어쨌든 안전하게 단약을 해야 하지 않느냐, 단약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가로 의견들이 모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단약만을 방향으로 삼기에는 살펴야 하는 지점들도 많아 보이고요.
타리: 단약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단약이 중요하죠. 스스로 조절이나 조율이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는 자신도 그렇고 주변사람들도 많이 힘들어요.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경찰에 신고하거나 강제입원 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여기기도 해요. 서로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요. 그걸 위해서는 이 문제를 모른척하면 안된다는 거죠. 그럼 그냥 소리없이 고통받다가 사라져버리는 거니까요.
일단은 비범죄화라는 큰 지향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비범죄화가 필요한 이유는 처벌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고, 비범죄화라는 방향 설정 안에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파매개행위죄도 그렇고 성노동 비범죄화도 그렇고 약물 비범죄화로 방향을 설정하면 다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하냐. 마치 낙태죄가 비범죄화되고 나서 돈 있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대로 하고 돈 없는 사람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권리 보장 시스템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약물 사용이 처벌의 영역이 아니게 될 때, 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겐 무엇을 할지, 유통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 논의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게 당연히 쉽지 않죠. 약물은 어떤 사람에게 너무나 큰 해악일 수도 있는데 ‘약물 사용의 권리’라는 프레임이 당장 가능하냐는 질문도 가능하고요. 대마를 합법화를 한 나라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태국은 레크레이션용 약물로 합법화를 했다가 다시 의료용으로 축소한다는 발표를 했고, 뉴욕에서도 지금 뉴저지주에서 레크레이션용 대마가 합법화되고 나서 이제 뉴욕도 비범죄화 합법화를 했는데 그 이후에 길거리에 약물 사용자가 많이 보이는 상황들이 뉴스로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대마가 더 센 약물로 가는 관문일 뿐이라고 하는 ‘관문설’에 되게 큰 영향을 받죠. 그래서 이제 대마를 합법화하면 안 된다, 근데 또 다른 전문가들은 관문설은 별로 의미가 없다, 대마를 끊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대마는 계속 사용하면서 다른 걸 사용하기 때문에 대마 합법화는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지 안 사용하는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뉴욕에 제1호 대마 판매점을 연 곳이 하우징 웍스인데, 에이즈 환자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대마 용품점을 뉴욕에서 처음으로 연 거예요. 거기는 비영리로 운영하고 수익금을 모두 에이즈 환자 지원하는 곳으로 쓰고 있는데요, 에이즈 운동이 이렇게 활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전부터 하우징 웍스는 그동안은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면서 수익금을 모았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올해 POP가 ‘노프라이드 파티’를 준비하면서 성노동자 운동과도 만나게 되었어요. 이전부터 만나다 보니까 노프라이드 파티를 하게 된 건데, 단속과 경찰 폭력 그리고 범죄화도 그렇고 필요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처지들이 너무 유사하더라고요. 최근 연예인 사건에서 보면 유흥업소가 되게 핵심적인 역할을 하잖아요. 마약 유통과 제공 등과 관련해서. 여기서 약물이 장사하기 위한 아이템인 것 같아요. 저기 가면 약물도 할 수 있다, 한데 그것이 실제 성노동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전에도 동의 없이 성노동자 술잔에 GHB를 타서 그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업주가 신고를 못 하게 한 거죠. 불법 영업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두 가지 범죄화가 결국 취약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죽인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범죄화의 문제가 어떻게 보면 일단은 여러 운동이 좀 모일 수 있는 최소한의 지반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비범죄화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는 굉장히 여러 방향의 논의가 필요하고요.
웅: 방금 노프라이드 관련해서 말씀하긴 했는데 퀴어 단체와는 그동안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노동자 운동 단체도 말씀하셨고, 바깥으로는 좀 어떤 소통을 하거나 논의를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타리: 성노동 단체랑 외국인 보호소 폐지 운동하는 분들도 같이 노프라이드 파티를 함께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처벌과 감금이 해결해 주는 건 없다는 큰 방향에 대해서 공감을 나눴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약물 이슈에 대해서 좀 더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자고 논의한 배경에는 합법적으로 처방되는 약물과 불법적으로 유통된 약물 사이에 국가의 태도가 완전히 다른 것도 있었어요. 이게 지금 정신과 약물 남용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비판적 정신의학 진영에서는 남용적으로 처방되는 약물 의존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그리고 약물의존은 환자가 생산되는 체제를 어떻게 재생산하고 제약회사의 수익 창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문제제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양병원이나 장애인 시설에서 화학적 구속의 맥락에서 계속 약물이 남용되는 지점도 그렇고요. 이런 약물에 대한 해악, 에이즈 치료제 특허같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약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불법으로 규정된 약물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고, 우리가 뭐를 같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큰 과제로 다가오고 있죠.
오늘 보니까 정부가 남용적으로 처방되는 정신과 약물을 단속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함약회)에서 활동하시고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도 계시는 장창현 선생님은 한 번에 이걸 규제하면 사람들이 금단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니까 서서히 줄일 수 있게 시간을 줘야 된다고 얘기 하시고요. 함 리덕션(harm reduction) 맥락에서는 어떤 사람이 중독이나 의존 상태에 있을 때 이것을 줄이거나 대체하는 다른 수단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합법적 영역에서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신 게 인상적이었죠.
최근에 본 〈올더 뷰티 앤 블러드쉐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한국에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로 번역_편집자 주)(2022)라는 영화에서는 여성 사진작가 낸 골딘의 언니가 어렸을 때 지금으로 말하면 펜타닐 계열 약물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걸 추적하다 보니까 큰 제약회사의 음모를 알게 되는 거죠. 근데 제약회사 일가가 돈세탁을 위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엄청나게 지원을 하고 대학 도서관에 후원을 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서 그걸 폭로하는 과정들이 쭉 나오는데요, 거기서 액트업이랑 연대 활동을 하더라고요. 연대 운동의 구체적인 맥락이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데, ‘침묵은 죽음이다’라는 구호를 가져와서 쓰기도 하고, 약물 사용자 낙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요. 에이즈 운동의 유산을 많이 받아서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한다거나 전략들을 활용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가 최근 에이즈 운동 안에서 초국적 제약회사를 문제 삼는 상황이 떠오르는 거죠. 제약회사의 탐욕이라는 게 향정신성 약물 대한 소비자를 늘리는 방식이랑 굉장히 같이 가는 측면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연결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웅: 찾아봐야겠네요. 말씀 듣다보면 POP 활동가들이 제약 속에서도 활동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여기서 희망회로를 조금 돌려서, 하고 싶은 활동들도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물 이슈가 생각보다 넓은 맥락에 연결되어 있어서 만남도 더 많아져야 할 것 같고요. '맷집'이 있으려면 우리의 편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언어도 많이 만들어 놔야 하는 거잖아요.
타리: 일단은 언론대응이 시급한 것 같아요. 결국엔 대항담론을 만들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전문가들도 필요하죠. 관심 있는 의사와 상담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가이드라인이나 상담에 필요한 참고 문헌의 목록을 만든다던가 친화적인 병원의 목록을 만든다던가 하는 게 꼭 필요할 것 같고요. 이분들을 만나서 어떤 모임을 만드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운동 차원에서는 의제적으로 연결되는 것들, 그러니까 비범죄화 운동과 초국적 제약회사 대응에서 약물 이슈를 어떻게 같이 얘기할 수 있는지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거고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는 약물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응급 시 어떻게 대처할 건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찾아보면 좋겠어요. 혐오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지지하라는 메세지를 모토로 만들어서 캠페인이든 교육이든 홍보든 이런 거를 좀 하면 좋겠네요.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해요. 태국 송크란 축제에 갔는데 한국 애들이 섹스 파티를 하다가 누가 심정지가 와서 쓰러졌는데 다 도망갔다더라, 그래서 그 사람이 사망했다는 소문들. 이게 범죄기 때문에 돕고싶어도 돕지 못하고 도망가게 되는 상황들이 있고, 응급 상황에서 자기가 뭘 할지 모르는 상황이 있잖아요. 구급대가 와서 약물 사용한 정황이 있다는 걸 파악을 하면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자. 의사는 경찰에 신고할 의무는 없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고 약기운이 없어질때까지 링거를 맞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하면 위험한 상황을 넘길 수 있어요.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 좋겠고요.
웅: 약물 이슈가 논쟁적인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붙잡아주는 것 같아요. 말씀처럼 그런 가이드가 시급한 상황에서 중요한데 얘기하고 있는 데가 없기도 하네요.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과 지금 할 수 있는 것
타리: 감옥에서 최근에 KNP+로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요. 감옥에 간 이유는 약물인데 교도소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건 HIV감염인이라는 이유죠. 그래서 HIV/AIDS 단체로 연락이 늘고 있대요. 감염인이 교정시설에서 차별받는게 오랫동안 해결이 안되고 있어요. 차별과 낙인, 개인정보 침해에 기반해서 운동과 샤워, 종교활동 제한 등 제도화된 차별도 여전하고요.
웅: 약물이 HIV/AIDS를 이렇게도 만나는군요. 상황이 상황이니 PL 단체들이 그 전선에 서게 되었고요. 아닌 게 아니라 새벽에 가끔 잭디나 그라인더를 돌리면 메시지가 와요. 하겠냐고. 섹스만 얘기하는 게 아닌 거죠. 'ㄹ'이든 'HF'든 약자로 냅다 던지는거 보면 그만큼 부지불식간에 노출이 많이 된 거겠죠. 한편으론 그만큼 게이 커뮤니티에서 만남의 문턱만큼 조건 안따지고 편하게 보고싶다는 열망도 크다는 생각을 하지만요.
타리: 인터뷰한 분들도 대부분 처음에 뭔지 모르고 했다고 해요. 기분 좋은 거 있는데 할래? 의식이 없을 때 강제로 한 적은 없는 거죠. 그래 너도 하는데 내가 왜 안 해, 이런 식으로 가벼운 동의에서 시작했는데 그게 사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대부분 모르고 시작하는 거죠.
그런 걸 미리 좀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데, 섹스의 세팅이라는 게 사실 복잡하잖아요.
웅: 합의와 동의의 과정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분이나 감각, 눈치로 판단하거나 판단을 놓치고 뭉개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고요.
타리: 안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약물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아는 것이 결정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실질적인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해외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보면 주사기를 찌르면 안 되는 부위를 신체 부위로 설명을 해주거든요. 심장 가까운 데는 위험하니까 팔이나 다리에 해라, 그런 정보가 정말 필요한 것 같고. 그 양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정말 조금씩 조금씩 늘려야지 처음부터 많이 썼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 뭐 이런 식의 정보 같은 게 같이 가야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 거죠.
저희가 사이트에 약물의 작용과 부작용 같은 걸 좀 적어놓긴 했지만 글로 읽었을 때 좀 부족할 수 있잖아요. 실질적인 정보나 안내가 되려면 영상을 활용한다거나 친화적인 방법을 많이 개발해야 할 것 같고.
무나: 그때 ‘함께 읽는 섹스’ 자리에서 얘기했을 때 약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SNS에서 거른다고 했던 것 같아요.
타리: 그게 아마 청소년 유해 콘텐츠라고 인식이 될 것 같긴 해요. 저희 사이트도 경찰에서 들어와서 막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요, 저희도 믿을 만한 변호사님한테 한번 읽어달라고 했는데 그분이 이런 건 좀 누그러뜨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반영하기도 했죠. 혹시나 (약물 사용을) 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웅: 실질적인 가이드나 정보가 너무 필요한데, 말씀하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대중이든 언론이든 공권력이든, 뭣보다 커뮤니티 안에서의 비난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고요.
타리: 그래서 대만에서도 처음엔 약물 정보를 제공하는 페이지를 만들면서도 조심스러웠다고 해요. songyy.org.tw 인데, 대만도 근래 혐오 세력이 생겨서 이런 걸로 공격할까봐 방어했다는 거죠. 지금은 핫라인 표시가 되어 있네요.
웅: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만드는 게 중요하고, 특히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많이 환기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일 어려운 대상이 커뮤니티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이렇게 맥락을 알아가지만, 그만큼 시작부터 막막해지는 느낌은 일단 확인을 하고 지나가야 겠습니다.(웃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는 이야기들과 메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겠죠.
타리: 2017년인가 허프포스트에 나와서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글 있잖아요. ‘함께 있어도 외롭다: 게이들의 새 전염병, 외로움’ 그렇게 많은 게이들이 공감했던 이유가 뭘까. 이제 어플 만남에 지쳤다, 안 팔리는 것이 너무 괴롭다, 정말 너무 지긋지긋하다. 이 외모와 몸에 대한 위계 너무 공허하다. 그 글은 동성 결혼 이후에 결혼으로 진입하는 게이와 그렇지 않은 게이 간의 간극 같은 것들도 다뤘어요. 그 사이에 약물이 큰 위치를 차지했던 것 같아요. 동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너무나 ‘베스트 프렌드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약물이 딱 들어가는 순간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더 크게 나에게 주는, 약이 곁에 있으면 충만한 느낌을 가지는, 그러니까 약물 자체가 작용하는 역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길로 계속 가면 이미 멀리 가버린다는 걸 너무 알고 있는 거죠.
누군가는 약물보다 혹은 약물만큼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회사에서의 성취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고, 친구들이나 단체, 커뮤니티에서 내가 기여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절하겠다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관계나 끈이 다 떨어진 사람에게 약물이 거대한 포옹으로 다가왔을 때, 자기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감싸 안고 보호하는 것처럼 다가왔을 때, 너무 강력해지는 거잖아요. 결국은 약물과 나의 이자 관계에 몰두하지 않도록, 약물이 누군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에 불과하고, 약물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장벽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약물 없이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결국 해야 하는 거고요.
웅: 약물 이슈가 상당히 감정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정은 계급이나 질병, 성적 지향 같은 사회적 맥락들에 걸쳐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서서 통계 자체를 내기 어려운 환경도 문제지만, 통계가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POP 여러분들이 판단했기에 보고서도 편지의 방식을 빌어 썼겠다는 생각이 또 드네요.
약물 자체의 화학적 효과도 그렇지만, 복약 전후로 무엇이 연결되고 단절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냥 약물을 하거나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이게 관계의 문제라는 걸, 커뮤니티의 문제라는 걸 얘기해야겠다는 판단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1차적으로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매체로서 텍스트의 의의이자 한계라고 한다면, 소설 읽듯이 와닿은 것 같으면서도 어쨌든 그것이 독자에게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걸 HIV/AIDS운동에서 많이 체감하기도 하는데, 일단은 내 편을 많이 만들고 동료든 넓게는 독자를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용자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POP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그 파이를 조금씩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타리: 수치심이나 두려움의 키워드로 이야기하는 자리도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거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제 약물인 거잖아요. 어떤 사람은 BDSM일 수 있고, 해외 섹스 여행일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결핍을 채울 또 다른 관계를 만들거나 위계를 세팅하는 방식으로 해소할 텐데, 그게 나의 정체성이나 욕망, 아니면 섹스 파트너나 애인과 맺는 관계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거나 차이가 있는지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거고요.
근데 이런 대화가 평소의 친분이나 술자리 같은 자리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기회가 너무 없어서, 그런 분위기도 참 고민이 되네요.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가 NA모임(Narcotic Anonymous, 약물자조모임) 만 필요한 게 아닌데 말이죠.
친구사이에서 LGBTI 욕구 조사를 했을 때, 저는 제일 중요했던 게 그룹 대화였어요. 그러니까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했는데 같은 그룹을 세 번씩 만났어요. 참여한 분들이 그게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 모임에 오는 게. 자기는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는 그래도 한마디씩 하게 기다려주는데, 게이들은 재미없거나 식이 아니면 말을 자른다는 거죠. 근데 여기만 오면 내 순서가 있고 다 들어주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런 세팅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꽤 있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인 세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저는 여전히 하고 있어요.
취약함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H: 저는 개인적으로 중독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운이 좋게 게이 중독 환자들을 여러 명을 보기도 했어요. 제가 주치의로 환자를 만나기도 해서 더 관심이 생겼고요. 이 주제가 진짜 중요한 주제고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는 거를 알기 때문에 POP보고서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좀 나와보려고 합니다.
다른 자리라도 열리면 더 하고 싶은데 아직 제가 전문의가 아니라서 지금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뭘 하기가 좀 어려워요. 당장 신분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기도 어렵고요. 그래도 알고 있는 지식이 있고 제가 진료하는 경험도 있으니까 적어도 준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중독이라는 주제에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풀어내 볼까 고민이 있는데요. 전문가로서의 위치성을 고려하게 되면서 전문의가 되기 전까지는 당사자의 얘기를 더 듣고 싶기도 해요.
제가 들으면서 제일 공감 갔던 거는 마약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할 자리가 애초에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도 단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들이거든요. 최소한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된다고 느끼는데, 진짜 끈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이런 고민을 했죠. 그것도 현실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게, 크게 모임을 연다고 하면 마약 단속반이 나와서 싸그리 잡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공개를 안 하면 알릴 방법이 없고요. 이슈가 중요하다는 건 정말 체감하는데, 어떻게 공론화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어요.
웅: 게이커뮤니티에서 약물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이야기를 나눌 판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느껴져요. 쭉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얘기 하는데, 적지만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pop에서 해외 캠페인 상영회를 성황리에 하기도 하고, 대만 활동가들 초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도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잖아요.
이제 이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부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은데, 그걸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당사자가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고요. 그게 법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그만큼 당사자에게만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인가, 라는 부담을 고민하게 되는 거죠.
타리: 현실적으로 당사자 리더가 없이는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많지 않더라도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공개적인 모임은 단약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기 때문에 경찰 단속에서 조금 자유로운 것 같은데, 그런 기조랑 좀 다르다 싶으면 안전을 보장하는 데 대해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단약을 목표로 세워놓는 모임 같은 경우엔 선처받으려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까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고 동기 자체도 타율적인 상황인 것 같아요. NA 모임 자체가 기독교 이론에 기반한 거잖아요. 하나님에게 모든 걸 맡기고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나가는 이론에 맞춰서 하다 보니까 그 종교적 정서가 안 맞으면 쉽지 않고요.
해서 커뮤니티에 대한 좋은 관점을 가진 리더가 이런 것들을 계속 좀 끌어나갈 수 있는 조건 같은 것들도 너무 필요한 것 같은데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약물 당사자라는 게 위태로운 지위인 경우가 많아서 모임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없는 경우도 많죠.
H: NA는 aa 12단계 이론에 기반해서 하는 거라서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에서의 신은 아니고 그냥 신, 절대자예요. 대부분은 기독교적인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에서 가져온 거니까. 근데 어떤 사람은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큰 존재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도 해서 꼭 특정 종교에 기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종교적이죠.
저는 과감하게 게이 NA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 적이 있는데, 그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요. 모임을 모으려고 하는 저부터가 그 모임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어요. 단약에 효과가 있다는 건 알거든요. 모임이 어렵다면 제가 일종의 대리인을, 당사자를 찾아서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 정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NA가 아닌 다른 형태의 자조 모임을 만드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죠.
타리: 예전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LGBT센터를 갔을 때 프로그램 보니까 약물 사용자 자조 모임이 매일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부럽다, 리더가 있구나 여기는 생각했어요.
한국에서는 참사랑병원에서 그나마 약물 사용자 입원을 받아주잖아요. 약물 사용 게이가 많다는 것도 병원이 알게 되면서 게이란 뭘까, 이제 고민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여기도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닌데,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관계맺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H: 보통 진료는 1대 1 관계로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춘다면 그 주변에 지지 관계가 있는지,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이런 사람들이랑 연락이 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동체 차원에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진짜 좋겠죠.
되게 보수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가족이 진짜 중요해요. 친구나 애인은 다 깨질 수 있거든요. 근데 가족은 그래도 마지막까지 도와주는 존재인 경우가 많아요. 진료하면서 느끼는 건 가족의 존재가 진짜 중요한데 이게 어렵죠.
가족이 없거나 주변에 조력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병원에도 오지 않아요. 못 하죠. 자발적으로 끊고 싶어서 오는 경우가 아니면, 그리고 치료받았다는 증명이 중요하니까.
최근에 정부에서 재활센터를 늘린다고 밝혔어요. 중독 재활센터를 3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걸 2024년에 17개소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해요. 복지부에서 이런 계획을 하는 건 치료 없이 처벌만 한다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 재활시설을 늘리는 방식으로 나오기는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치료 지원을 하라는 게 시설에 가두라는 말은 아니어야 겠지요.
...
웅: 2시간 정도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예상했지만 무언가 하자는 결의보다는 고민을 많이 나눈 자리가 되었네요. 당분간도 좀 헤맬 것 같다는 긴 이야기를 잘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셨나요?
타리: 일단은 얘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당장 뭐가 계획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일단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고, 계속 리더에 대한 고민으로 수렴이 되는 것 같아요. 뭔가 한 사람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잖아요. HIV/AIDS인권운동 초기에 윤가브리엘의 존재와 함께 단단하게 활동을 만들었던 동료들이 있었던 것을 많이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단약 말고 다른 기조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죠. 그런 멋진 리더는 그냥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과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하겠죠.
HIV/AIDS인권팀에서 한두 번 정도 더 약물에 대해서 좀 세미나나 이런 거를 할 수 있다면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데이비드 스튜어트 씨가 만든 캠섹스 케어 플랜이라든지, 그리고 그분이 약물 사용자 상담의 실제 같은 것들을 주제로 교육하신 게 튜토리얼 동영상으로 나와 있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보면서 퀴어커뮤니티의 약물 대응 기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액트업을 비롯한 에이즈 운동이 약물 이슈를 어떤 입장과 활동으로 같이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웅: 제안 감사합니다. 헤맬 날이 첩첩산중이지만, 필요한 공부와 활동을 모색하면서 또 조우할 날을 벼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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