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겠지요. 그립다는 말이 슬퍼지도록 떠난 이가요. 스스로 마침표 찍은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막연하게 상상한 적이 있어요. 왜 그랬는지. 막상 마주하니까 감히 상상해본 적 없는 마음과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라구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몰아치고, 뭘 하다가도 갑자기 어딘가에 오도카니 서 있게 만들어요. 겨우 버티고 선 몸에 기억들이 부딪히고 부서지기까지를 반복해요. 그게 자꾸만 그러면요, 생각보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는 없어요. 누가 그런 걸 연습할 수 있겠어요.
동지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지면에 너무 사적으로 추억해도 되는 걸까 조금 고민했지만… 공동 추모식과 행성인 추모모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알겠어요. 빈 자리를 진심으로 느끼고 그리워하는 것도 약간의 용기가 필요해요. 자다가도 꿈을 꾸고, 일하다가도 흔적이 보이고, 얘기하면서 웃다가 울더라도 ‘아, 나 지금 걔가 정말 그립구나' 라고 인정하고 그걸 나누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같은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 위를 달리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공을 차고, 처음이라 실패해서 맛대가리 없는 밥을 만들어먹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 하소연하고, 아직은 어렵지만 꼭 같이 문선 올리자 약속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보일 때마다 사다 주고, 솔직히 수준도 비슷한데 매번 내 개그에 야유하고, 술마시면서까지 트랜스팀이 뭘 하면 좋겠냐며 고민하고, 아 틈만나면 시스권력 깨부수자 그러고…그리고… 내가 글을 쓰면 네가 그림을 그리자고, 언젠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화로 같이 작가가 되자고 다짐하고, 또…밥 안 먹고 단 과자만 먹으면 어떡하냐고 잔소리하고, 또… 자기 타투 어떻냐고 묻길래 아니 나한테 왜 결재받으러 온 거냐 했더니 디자이너니까 잘 알지 않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결정해줘, 진짜 어이없어…
예… 아직도 이럽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보다는 그럴 만한 일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지도요.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고요. 근데… 연수가 너무 멋진 활동가였다는 부담에 괜히 예의 차려서 쓴 어설픈 추모사가 있거든요. 연수가 이걸 보면 왜 멋있는 척 하냐고 얼마나 웃을까, 그러면서도 글 잘 쓴다고 얼마나 칭찬해줬을까 싶었던 그 글을 마지막으로 이만 정리할게요. 참고로 계속 들어가는 이미지는 연수 스타일로 해봤습니다.
저처럼 연수를 계속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글이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감히 바라봅니다. 당신도 오늘, 또 앞으로 문득 연수가 생각난다면 그저 잘 만나서 인사 나누고 올 수 있도록, 그립고 슬플 때 다가와 안아줄 누군가가 있도록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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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안녕을 말했던 그날처럼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이라는 말을 써봅니다.
당신이 남긴 말들을 떠올려봅니다.
[ 어쩌다트랜스, 자나깨나트랜스, 트랜스 담론의 선구자, 트랜스이슈 이연수가 모르면 아무도 모른다, 중도여성, 시스권력타파, … ] 어록만 봐도 당신이란 사람, 심상치 않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커뮤니티로서도 많은 곳이 트랜스젠더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트티켓’을 외치던 모습까지도 기억하려 합니다.
우리는 누가 인간의 자격이 있는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로 싸워야 한다.
9월 28일 당신이 마지막으로 올린 글 속 문구입니다. 문장표현도 참 당신 답습니다. 말 그대로 불꽃같은 활동가였지요. 그래서 이리도 수많은 곳에 불씨를 남긴 것이겠습니다. 그 모습을 왜 당연하게 여겼을까요. 지칠 법도 한데 끝까지 강하게 밀고 나가야한다고 외쳤던 당신은 어쩌면 그만큼 매 순간 절박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이 결국 팀장이 되었던, 우리가 함께 큰 포부를 펼쳤던 행성인 트랜스팀에서 매 회의 첫 시간 안녕을 묻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잘’ 살아있었냐는 애정과 돌봄의 물음. 그런 인사말이 필요한 우리라는 것 역시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지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힘듦과 아픔에 대해 그저 견디는 것 뿐이라며 농담에 묻어넘기던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놓고는 혼자 가늠하기 힘든 외로움과 두려움에 수없이 헤맸을 당신 그 깊고 차가운 밤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그 찬 새벽을 지나온 당신이 남긴 모든 것들이 뜨겁고 선명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추모는 당신이 싸우고 버텨온 수많은 것을 잊지 않고 마저 함께 맞서겠다는 다짐입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며 연대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그 모든 때와 곳에 당신이 함께하고 있음을 믿겠습니다.
차별도 멸시도 없는 세상에서 부디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2024년 10월 3일.
친애하는 동지, 연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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