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듬뿍 나누고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아니마와의 인터뷰
4월 25일, 안타깝게 청소년 시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육우당, 오세인을 추모하며 작년에 이어 올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라는 제목의 캠페인이 열렸다. 따뜻한 봄볕 아래 50명이 넘는 동인련 회원, 후원회원 그리고 청소년 자긍심팀 회원들을 비롯해 청소년 성소수자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유인물도 나눠주고 서명도 받고 페이스 페인팅도 직접 시민들에게 해주고 기념품도 나눠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이어졌다. 즐겁게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보였고, 이날 ‘아니마’는 가슴팍에 반짝이는 비즈로 ‘GAY'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니마는 26일 입대를 하루 앞두고 기념할 만한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니마의 입대를 2주 앞두고 대학로에서 점심시간 짬을 내서 만났다. 짧아지지 않은 머리를 보며 ‘왜 안짤랐어!’라고 놀렸으나, ‘저 끼를 어찌 2년 간 감추고 살아야할꼬'라며 속으로 안쓰러워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병권 : 2007년인가?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을 할 때, 그때 아마 청소년 성소수자 주제로 강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유심히 보니 아주 어린 친구가 제일 앞에 앉아서 열심히 듣고 있더군요. 그게 바로 아니마였어요.
아니마 : 그때 고 3이었는데, 누군가 올린 블로그를 보고 찾아갔어요. 포럼 내용 중에 청소년 성소수자 내용을 꼭 듣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잠시 쉬고 나서, 수능을 본 뒤 대학을 들어가서 동인련을 다시 찾아갔어요. 불과 2, 3년 활동이란 걸 했지만 내가 어떤 활동을 했나 생각해 보면 가물가물 해요. 처음에는 사무국회의를 가면 모르는 내용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나갔어요. 답답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들어가니 너무 좋았거든요. 해방감에 성정체성이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겼나? 그래서라도 이것저것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아요.
병권 : 회원으로 그리고 활동가로 동인련에서 3년을 보냈는데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그리고 아니마 스스로가 변한 것을 느끼기도 할 텐데 어떤가요?
아니마 : 경험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나 봐요. 제 스스로 많이 변화시킨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는 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 프로그램, 퀴어퍼레이드, 워크샵도 가고 사람들과 종로에서 어울려 놀기도 했죠. 그리고 제 작년에는 촛불집회도 갔었고. 2, 3년 전의 저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하고는 심하게 다르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어요. 하나하나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진지해지고 고민도 많아지고. 헛살진 않았다는 느낌도 들어요!
병권 : 동인련에서 소중한 경험을 나눴군요. 그 자리에 저도 함께 했다는 것이 기쁘네요. 어떤 경험을 통해서 변화한 자신을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생각할 시간을 자주 가졌나 봐요. 그렇다면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하면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아니마 :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동인련 회원 중에 HIV/AIDS 감염인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어요. 제 스스로 편견이 없다고 느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그때 제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경험할 것들이 많구나, 그리고 동인련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에서 보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흔히 나이나 학교 같은 걸 물어보잖아요. 그게 저도 익숙해져 있었구요. 토론을 하면서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를 파악하는 동인련의 방식이 특별했어요. 이 부분도 제가 인상 깊은 것 중 하나에요.
병권 : 그런가요? 그래도 나중에 친해지면 물어보기는 하는데, 그 부분이 인상 깊었군요. 그렇다면 스스로 느낄 때 쉽게 바뀌지 않은 것도 있을텐데요.
아니마 : 고집이 센 편이에요. 유연해져야지 생각하는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에요. 제 심성은 온순한데. (웃음) 딱 한 이야기 할 때 고집이 드러나요. 엄마 이야기 할 때요.
병권 : 음...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예전 동인련 성북동 사무실에서 술을 마시거나 할 때,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보통 화를 내거나 울거나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뭐라고 혼을 내기도 한 것 같은데. 웃긴 이야기지만 아니마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궁금했어요.
아니마 : 엄마하고 관계는 한마디로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변한 거예요. 예전에는 그냥 ‘싫어!’라고만 했는데, 그래도 가족이니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물론 쉽지만은 않지만요. 이틀에 한 번 꼴로 사소한 걸로 다투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밉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이란 이름이 저에게 부담이 되나 봐요. 누나가 둘인데, 큰 누나가 얼마 전 결혼을 했어요. 누나하고 나이차가 좀 있어요. 나중에 엄마가 나이가 들면, 제가 당연히 부양을 해야겠죠. 어떻게 부양을 해야할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제 정체성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따져야 하고 고민 할 것은 많은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등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들어요. 집에도 커밍아웃은 했지만 앞으로 활동을 한다면, 혹시나 알려지게 되면 엄마나 누나, 그리고 누나가 결혼을 했으니 그 식구들에게도 알려진다면 피해가 가지 않을까하는 부담도 있어요.
병권 : 어머니하고의 관계, 가족에 대한 고민이 쉽게 풀리는 문제는 아니겠죠.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아니마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혹시 지금 저에게 한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눈 적이 있나요?
아니마 : 아쉽게도 누나 결혼식 때문에라도 말할 기회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제 입대를 며칠 남기지 않게 되었네요. 편지로 할까해요. 계속 편지를 보내려구요. 제가 군대란 곳에 들어가서 남자들을 보면 느낄 감정들이나 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요. 아직 어머니나 큰 누나는 한 때의 감정이라고 아는 것 같아요. 작은 누나는 그나마 잘 이해해 주는 편이에요. 제대 할 쯤에는 조금이라도 편한 관계가 되길 원하거든요.
군대란 곳이 편하진 않겠죠. 남자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는 것들이 보통 스포츠나 게임, 성관계 이런 것들일 거고, 사회를 보는 관점도 다를 것이고, 위계질서란 것이 숨막힐 텐데 어떻게 버틸까 싶기도 해요. 도움을 받고 싶어도 아는 게이들은 군대란 곳을 어렵게 갔다 온 사람들이에요.
병권 :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했군요. 인터뷰 하다 보니 아니마에게 궁금한 게 생겼어요.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요. ‘아니마는 거쳐 간 남자가 많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얼마 전 블로그를 보니 ‘애인이 생겼습니다!’하고 좋아했는데, 다음날 ‘헤어졌어요’란 글을 봤어요.
아니마 : 뭐,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는 없어요. 아직 찾아가는 단계라고 할까요? 상처를 받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익숙해지기는 싫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영화 물랑루즈에 나온 대사인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란 말이에요.
전 외로움을 많이 타요. 그래서 관계에 대한 규정을 빨리 얻으려고 상대방에게 재촉을 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헤어졌나? 제가 식이 안 되서 그랬을 수도 있죠? (웃음) 사랑에 무르익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상대를 좋아하게 되면 잘 까먹어요! (웃음)
병권 : 꼭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래요. 이제 마지막으로 2년 간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되는 건데요. 동인련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아니마 : 항상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동인련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요. 동인련은 제 삶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줬어요.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 막연했는데,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아준 거죠. 많은 방법을 보여주었구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줬어요.
잠시 기다리면 다시 나올 거예요!!
4월 25일, 캠페인 참가 인증샷
4월 25일, 캠페인을 마치고 아니마는 친구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동인련 사람들을 만나러 충정로로 왔다. 짧아진 머리를 하고서!!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길! 밝은 모습으로 충만한 끼를 들고 다시 나타나길 빌어본다.
인터뷰 및 정리 _ 장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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