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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상임 활동가의 연말 사정] 인권 운동이 해온 일

by 행성인 2024. 12. 25.
2024년 연말을 맞아 '상임활동가의 사정'에 변화를 줬습니다. 12월 '상임활동가의 연말 사정'은 활동가들이 같은 지면에 메모처럼 남기는 기존 형식이 아닌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를 남깁니다. 조금 길게 전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연말의 정세와 활동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그리고 서로의 일상을 만나봅시다.

 

 

남웅(행성인 상임활동가)

 

 

 

 

어느 정도 현장에 서고, 어느 정도는 일상을 챙기며 12월을 보냈다. 현실 감각을 더듬어 사태를 살피면서,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면 다른 사건이 발생한 채, 지금 일어나는 상황들과 기록들에 둘러싸인채 연말을 맞고 있다.

 

올해 마지막 운영회의에서 2024년 활동평가를 이야기하는데, 좀처럼 그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첫 문장을 '12월이 24년을 삼켰다'고 썼다. 바로 이어서 24년이 12월을 향해 달려갔다고 말했다. 올해 12월이 있기까지, 사람을 업신여기며 누군가를 좋고 싫음의 대상으로 나눠 제도에 편입하거나 배제해온 정치가, 이윤에 혈안이 되어 죽음을 외주화하고 참사를 일상화하던 이들의 정치가, 민생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구체적인 인권의 요구들은 나중으로 미뤄버리며 2016년 촛불정국 이후 변화의 불씨를 밟아버린 이들의 정치가 지금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명분도 뭣도 없이 대통령이라는 자가 계엄을 선포하더니 화난 시민과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건 자리에 뻔뻔하게 국민들이 놀랐다면 미안하다며 익스큐스를 구하는 모습이나, 두 시간 만에 해제된 것이 계엄이냐고 후려치면서 국정을 안정화 하겠다고 해결사 행세하는 여당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계엄의 무게를 저렇게 축소하는 걸 보니 저들은 언제라도 어떤 위기를 막론하고 조장하고선 시민과 여론의 저항에 부딪혀 무마되면 곧장 본인들이 국정안정을 찾아주겠답시고 권력을 탐하겠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압도적인 상황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집회 현장과 한뎃자리를 사수하는 성원들의 면면을 실시간으로 감각한다. 광장에서 보고, 광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SNS에서 이어지는 증언과 기록을 보고 있다. 천지사방을 광장으로 감각한다.

 

집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약속문을 함께 읽고,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과 이주민, 농민과 불안정 노동자를 함께 언급하며, 그들이 직접 무대에서 발언하며 서로를 배우고 이해한다. 각성한 언어와 의식화한 태도들은 예의 가짜뉴스와 음모론, 보수 저널들의 여론선동만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 각성한 군중이 출현한다는 교훈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기실 광장의 얼굴들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의식화한 채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세진단과 사회문화 비평,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집회참여기와 광장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수많은 글을 읽으면서 12월은 집단으로 싸우며 거리에서 학습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위치와 정체성을 갖는 개인이 각자의 경험을 쓰고 읽는데 멈추지 않는다. 일상의 투쟁과 점거가 왜 일어났는가를 배우고 참여하며 힘을 얻은 이들이 다른 투쟁현장을 찾는다.

 

이 시간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어떤 것들이 당신들을 각성하게 만들었을까. 이 또한 그냥 생겨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속한 단체, 그리고 내가 두루 연결된 단체에서는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을 만들어 함께 읽어왔고, 저마다의 일상으로부터 인권을 연결하며 차별과 평등을 이야기한 자리들이 있었다. 공동체의 평등을 고민하며 먼저 고민한 페미니즘과 장애를 비롯한 다른 시민사회, 인권운동의 기록들을 참고했다. 인권운동에서 성과가 뭐가 있냐고 묻는 냉소와 회의에도 꾸준히 사람을 만나고, 성명을 쓰며 기사를 냈던 활동이 있었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을 토론하고, 불편한 위계와 불평등에 문제제기하는 일의 가치를 제고했다. 시민의 자격도 받지 못한 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것에 국가의 책임이 있음을 물었던 시간이 있었다. 기자 없는 기자회견과 깃발만 나부끼는 집회에 힘이 빠지더라도 저마다의 일상에 어떤 불평등과 혐오가 작동하는가를 직시하고 남기는 작업들이 있었다...이런 얘기를 지금 왜 하냐고?

 

계엄을 맞닥뜨리며 느낀 두려움과 고립, 분노의 상황에서 연결의 고리를 찾을 때, 생각나는 건 단체이고 깃발이며, 광장을 나가면 집회와 문화제라도 있지 않겠냐는 광장의 문법이었다. 사람들은 분노와 두려움을 나누기 위해 광장을 나오지만, 광장은 텅 빈 공간이 아니었다. 삶다운 삶을 살겠노라 외치며 삶을 드러내는 이들이 열어낸 공동의 장이었다. 시간을 거듭하고 성원이 달라질때마다 단체와 깃발, 집회와 문화제의 문법은 변해왔다. 응원봉과 클럽같은 집회문화 또한 그간의 변화 위에 있다. 이미 2010년대부터 고공농성장의 노동자들은 트위터로 소식을 나누고 상황을 전달했다. 2016년 이화여대의 학생들은 다만세를 불렀고, 이미 이전부터 퀴어 퍼레이드에서 많은 퀴어들은 K-POP에 맞춰 춤추며 대낮의 거리를 행진했다. 광장의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일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고립된 투쟁과 실패의 경험도 비일비재 하지만,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공동체와 연결의 감각을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 동시대 유행가가 투쟁의 구호로 참조되고, 일상의 사물과 기기가 현장의 선전도구로 쓰인다. 남태령투쟁 직후 현장에 트랙터를 몰고 왔던 강광석 님의 글에서 인상적인 것은 글 말미에 남긴 '저들의 형식의 가벼움과 내용의 무거움'이었다. 그는 이 낯설고 벅차오르는 광경을 보며 어떻게든 이해하려했다고 회술한다. 내용의 무거움에는 삶을 박탈하고 배제함으로써 가볍게 만드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부연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불법촬영의 대상으로 착취당할 수 있고, 언제라도 갈아치워질 수 있는 일터에서 일하며, 찬반으로 삶의 근본부터 구획되는 이들의 삶은 이미 가벼웠으니까.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들에 저항하지만, 이 싸움이 오래 널리 확산하는데 이바지하는 건 손에 쥐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장비와 몸짓, 전략과 구호가 가벼운 점도 한몫 한다. 그동안 좋아서 했고 손에 쥐고 살아온 사물들이 광장의 문법으로 전환한다.

 

남태령에서 밤새 자리를 지킨 이들은 자신이 나온 이 상황을 알기 위해 그렇게들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들이 찾아본 자료들은 뭐였을지 문득 궁금했다. 밤새 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던 교재들은 분명 가짜뉴스와 여론선동을 위한 저널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지 않고 듣지 못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이 글을 누가 볼까 회의하면서도 꾸역꾸역 남기지 않을 수 없던 활동가의 문장과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미래의 누군가는 기어이 찾아서 읽는다.

 

계엄 이후 열어내는 광장의 풍경이지만, 집단으로 싸우며 배우는 시간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그토록 냉소와 회의에 부딪히면서도 싸워온 이들의 오랜 성과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과거가 지금 우리의 미래로 찾아온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권운동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운동이 만들어온 문법과 남겨온 문장과 습속은 지금의 광장에 맞닿아 있다. 

 

적대적 공존처럼 보이는 양당체제 아래 성소수자 권리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상황은 개탄스럽지만 광장의 감각은 변하고 있다. 97년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 반대를 위한 노동자 투쟁 때 들고 나간 무지개 깃발이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낯선 사물이었다면, 08년 한미FTA를 반대하며 들고 나갔던 무지개깃발은 만남의 장소이자 좌표가 되었다. 지금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열고 있는 광장은 깃발 옆에 다른 깃발이 모이며 점에서 면으로 확장하고 사람이 모이며 무엇보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성소수자가 잠시라도 자리를 채우는 공간이 되었다. 한밤중의 클럽과 찜방이 오랜 시간 있어왔다면, 이제는 대낮의 광장이 화답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이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이 퀴어로서 노동자이자 학생임을 밝히는 건 2016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2016년과 2024년의 깃발도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촛불혁명이라 불리고 곧장 대선이 이어지던 당시,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동성애가 싫다고 공언한 문재인 후보를 게릴라처럼 찾아가 선거운동현장을 점거하면서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냐고, 성소수자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그것들이 뉴스가 되고 그림이 만들어지는 상황에 고무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성소수자 혐오가 더이상 용인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라는 점을 다수의 정치인이 인지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이고 퀴어임을 밝히며 광장의 공적인 성원임을 선언하고 수행하는 상황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이후의 숱한 정치인들처럼 개인적인 입장이랍시고 성소수자가 싫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소수자와 이주민, 장애인을 뒤로하고 차별금지법이 당장 시급한 일이 아니라는 언사를 계속한다면, 이제 싸울 사람은 당사자들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광장을 통해 우리가 몸소 배우고 있는 연결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인권운동은 너무도 실패가 익숙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 중에서도 트랜스젠더와 HIV/AIDS감염인,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은 논란의 대상처럼 호출되어 조리돌림당하며 소모된다. 혐오의 목소리는 변화가 이어지는 지금도 여전히 생산된다. 인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다. 재난이 일상화되고 이윤이 모든 가치를 초과하며 폭력과 성적 착취가 만연하며 혐오가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면서 삶은 가벼워진다. 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와 사람에 대한 환멸은 결국 지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권운동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다음을 준비하는 데 이력이 나기도 했다. 짧은 호흡으로 살기에는 깊은 시간 속에 기억해야 하는 이름들이 많기에 운동의 호흡은 길 수밖에 없다. 침묵의 바다로부터 신호를 채굴하여 수면 위에 파장을 전달하는 오랜 활동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응답을 초과하는 신호들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라도 생길 소모적인 논쟁과 혐오를 돌파할 조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운동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 시국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잘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광장을 열어낸 이들이 성소수자이고 여성이며 장애인과 이주민, 불안정노동자들과 집도 땅도 없는 이들, 개발과 투자의 논리에 밀려난 이들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제 함께 숨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방이 광장이라고 한다면, 광장에 나오지 않거나 나오기를 주저하는 이들 또한, 변화 속에서 분투해온 저마다의 일상이 어떻게 인권에 닿아 있는가를 살피도록 제안하는 것 역시 이후 인권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광장의 변화를 감각하고, 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과거를 기억하며, 지금의 곁을 살피고 만들어내는 일을 놓지 않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