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을 맞아 '상임활동가의 사정'에 변화를 줬습니다. 12월 '상임활동가의 연말 사정'은 활동가들이 같은 지면에 메모처럼 남기는 기존 형식이 아닌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를 남깁니다. 조금 길게 전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연말의 정세와 활동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그리고 서로의 일상을 만나봅시다. |
지오 (행성인 상임활동가)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한 일도 믿을 수 없어요”
얼마 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함께 하는 동료가 제게 해준 조언입니다. 자신이 해온 활동에 대해 스스로 좀 더 인정하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의미였어요.
지금의 광장에서 저는 동료의 이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광장의 우리들이 보내야했던 지난 8년의 시간을 곱씹어봅니다. 윤석열 탄핵 광장이 열렸을 때 활동가들은 2016년과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다 말했습니다. 각개로 고군분투하는 운동들의 힘을 모아내기 위해 여기 저기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지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런 자리마다 16년 박근혜 퇴진 광장이 언급되곤 했어요. 그때와는 달라야한다, 강박처럼 이 말을 쏟아냈습니다. 광장의 시간이 끝난 이후 밀어닥친 ‘나중에’가 그만큼 단단하게 박혀있던 탓이겠지요.
그 절박함으로 활동가들과 단체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광장에 성소수자들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무지개행동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공동행동을 꾸렸고, 공동행동을 포함하여 행성인도 속해있는 체제전환운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후정의동맹을 비롯한 연대단위들, 여성, 장애, 노동단위들과 진보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를 결성하였습니다. 행성인 상임활동가들도 이렇게 모인 연대단위에서 주요한 역할들을 수행하며 집회를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개별 단체를 넘어 몇 십 개의 인권사회운동 단위들이 모였음에도 광장에 서보면 참 한줌의 한 줌이란 사실을 체감합니다. 그럼에도 광장에서 평등이 지워지지 않도록, 평등이 광장 이후의 키워드가 되기를 바라며 힘을 모아내고 있어요.
그런 한편, 광장 또한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8년 전, 무지개 깃발 아래 선 것만으로 벅차올랐던 이들이 이제는 응원봉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무대에 올라 커밍아웃을 합니다. 다른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주변으로 밀려난 투쟁현장으로 달려가 곁이 됩니다.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자리들을 열어내고 기꺼이 다른 이들을 초대합니다. 누가 우리를 차별받는 자들이라 하나요. 누가 우리를 밀려난 자들이라 합니까. 여기 광장에서 우리는 앞서 나아가는 자, 과감히 손내밀어 이끄는 주역들입니다.
지난 주, 행성인 운영회의에서는 광장의 이러한 변화가 운동이 축적해온 성과이기도 하다는 평가를 나누었습니다. 나의 권리를 반반으로 나눌 수 있느냐는 외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펼쳤던 무지개 깃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펼쳤던 수많은 집회와 행진과 농성의 낮과 밤들,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승소까지, ‘나중에’의 자리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그동안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 같을 때에는 변할 것이란 믿음과 기대를 버리지 말자고도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를 포함한 우리 자신의 변화에는 둔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싸우기 시작하며 단련된 힘들이 지금 광장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난 8년, 세상을 변화시키겠다 말해온 우리들은 지금 이 광장에서 우리 자신의 성장과 진화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로부터 저 역시 내가 해온 활동이 조금이나마 이 광장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중입니다.
이 열광의 끝에 또다시 뒷걸음질쳐야 할 때라도 우리가 이 광장에서 누구였는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온기와 연대로, 서로에게 자신감이 되어준 이 시간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느 자리든 우리는 서로를 나침반 삼아 계속해서 싸워나갈 테니까요.
'행성인 활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임활동가의 연말 사정] 계엄 이후, 3주 간의 단상 (0) | 2024.12.25 |
---|---|
[상임 활동가의 연말 사정] 인권 운동이 해온 일 (0) | 2024.12.25 |
[상임 활동가의 연말 사정 4] 다시 열린 광장에서 발견하는 희망의 근거 (0) | 2024.12.25 |
행성인 2024년 11월 활동스케치 & 회원가입 한마디 (0) | 2024.11.24 |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1) | 2024.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