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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

[코코넛의 눈코입귀] 광장의 게이가 보는 광장의 남자들

by 행성인 2025. 1. 19.
지난해부터 행성인 코코넛 활동가는 웹진에 매월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는 코코넛의 글을 '코코넛의 눈코입귀' 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새해에도 집회마다 광장에 나간다. 추운 겨울에 몇 시간씩 찬바람을 맞으니까 육체적으로 피로하지만, 윤석열 체포, 더 나아가 구속이라는 기쁜 소식을 접하면 조금이나마 풀린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집결한 극우 세력이 법원을 때려 부수고 혐오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 소식을 들으면 다시금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런 와중에 광장에 나와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는 이들, 혹은 발언 무대에 올라 스스로를 밝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유심히 보게 된다. 다양한 성별과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윤석열 탄핵 촉구라는 계기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모을까 싶을 정도다.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광장에 나오는 남성(혹은 남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들이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을 알고 있다. 광장에는 2030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이 많이 보이며, 그 세대 남성들은 여성만큼 광장에 잘 나오지 않거나,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을 일삼는 내용 말이다. 기사를 읽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 이전부터 남성들의 혐오 발언이 숱하게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물론 여성이라고 해서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건 따로 다뤄야 할 문제다.)

 

구글에 '2030 남자'를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들. 원고와 직접 연관되지는 않는다.

 

 

내 주변에는 탄핵에 반대하거나 혐오 표현을 (적어도 대놓고) 일삼는 남자들이 없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가 활동가들과 무지개존을 운영하고 깃발을 들고 행진하다 보면, 확실히 광장에 나오거나 무지개존을 찾는 사람들 중에 남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낀다. 성소수자 당사자이거나 시민 단체, 혹은 노조 조직 구성원이 아니면 20대에서 30대 남성들이 광장에 나온 것을 찾아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 원인에 대해 사회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일단 남성이 여성보다 보수적인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경향이라고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 유독 그런 경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맞다. 그런데 정말 일부 극우 세력이 아니면 성별에 상관없이 윤석열의 탄핵을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광장에는 젊은 남성들이 나오지 않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하나는, 윤석열의 탄핵을 바라는 남성일지라도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혹은 이번 집회에서 많이 보이는 민주노총과 농민들, 장애인 단체 등에 대해 연대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감을 갖기 때문에 광장에 나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나 하는 가설이다. 실제로 광장에 나온 몇몇 젊은 남성은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인권 관련 깃발을 든 개인이나 단체에게 조롱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고, 광장에 나와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연대하는 일은, 평소 그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집단들과의 연대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젊은 남성들로 하여금 광장 참여를 기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남성들이 오프라인에서 연대하거나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말하고 싶다. 많은 이유가 있을 텐데, 일단 오프라인 공간에서 모여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 적극적 정치 참여라는 뉘앙스가 한국 남성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상충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이미 그러한 공론장을 신남성연대를 비롯한 극우 성향의 남초 채널들이 채우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기대되거나 교육되는 행동의 범위에 광장에 나와 진보적 입장을 표현하는 행위가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젊은 남성 중 상당수가 윤석열의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임에도 집회에 나오는 젊은 남성이 적은 것은 근본적으로 한국 남성의 보수적인 경향과 떼어 생각할 수 없어 보인다. 젊은 남성의 평균치보다 훨씬 우경화된 케이스라고 해도, 최근 뉴스가 보도하는 극우 세력의 물리적 폭력과 온라인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등을 향한 혐오 표현도 이러한 보수성에 근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광장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젊은 남성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혐오 표현을 내뱉는 우경화된 젊은 남성들, 그리고 물리적 폭력을 행하는 극우 성향의 젊은 남성은 비단 따로 떼어서 생각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1월 초 한강진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며 34일 철야 투쟁이 이어졌을 때에는 무대에 스스로를 20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꽤 많이 보였다. 이들은 또래 집단인 20대 남성들의 보수성과 혐오를 규탄하며 소수자들과 연대함을 밝혔다. 발언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지금에서야 보이는 건가. 지금까지 집회에 꾸준히 나왔던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지금까지 집회에서 시민들의 연대를 보고 뭔가 깨달은 사람들인 걸까,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젊은 남성은 얼마나 될까, 이런 변화가 탄핵 이후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젊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무대에서 목격한 몇몇 사람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면 좋겠다. 한국 사회가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한참 멀은 것 같긴 하지만, 상상은 또 다른 방법을 낼 수 있으니까.

 

내 주변 젊은 남성 성소수자들은 한국 남성 평균보다 집회에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단체에 가입하지 않거나 활동에 가깝지 않더라도 무지개존을 멀리서 보고 찾아와 옆을 지키는 이들이 있고, 무지개존을 찾아오지 않아도 집회에 종종 오는 친구들이 있다. 한국 게이들도 꽤 보수적인 편인데, 그들 중에는 페미니즘이나 장애인 등 다른 소수자 이슈와 연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 그들도 윤석열 탄핵이라는 큰 사회적 의제에 대해서는 직접 광장에 나가는데 대해선 성소수자가 아닌 남성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것 같다.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과제는 윤석열 탄핵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지금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사회적 의제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나오는 적극성이 탄핵 이후에도 성소수자 관련 의제를 외치고 여성,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할때에도 이어질 지는 솔직히 확신이 전혀 없다. 염세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남자 고등학교를 나오고, 남성이 학생과 교수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교를 다니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남성 성소수자들을 만나다 보니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한국 남성들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면 좋겠고, 이런 우려가 기우였으면 좋겠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나서도 나의 게이 친구들이 광장에 나와서 우리의 권리를 외치면 좋겠고,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고 외면받던 사람들과 연대해서 뭔가 더 큰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사실 내 게이 친구들뿐 아니라 그냥 한국의 내 또래 젊은 남성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이라도 품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20~30대 남성들이 광장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혐오를 싸지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앞으로도 계속 광장에 나가 사람들과 탄핵을 요구하고 이후의 사회변화를 외칠 것이다. 더불어 광장과 그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고민하면서 설연휴에 함께 만두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