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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에세이] 거리의 크리스마스- 꺼지지 않는 목소리를 위해

by 행성인 2024. 12. 24.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탄핵촉구 집회에서 '성소수자 차별도 윤석열도 없는 사회로' 구호가 쓰인 무지개 피켓을 들고 무대에서 발언 중인 코코넛

 

연말을 맞아 시의성 있으면서도 뭔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그리고 연말에 맞는 글 주제가 뭐가 있을까 하고 행성인 웹진을 담당하는 남웅 활동가와 연초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지금 시의성이 있을 만한 주제라고 하면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나긴 한다. 그런데 뭔가 너무나 중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여서, 나뿐만 아니라 12월 웹진에 원고를 보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얘기만 쓸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전, 내가 경험한 12월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을 써 줘도 좋겠다는 제안을 남웅 활동가에게서 받았다. 마침 나는 원고 작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던 시점이었으므로,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좀 더 나중으로 미뤄두고 제안받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있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거나 웃긴 글을 쓰려고 무리하기보다는 최대한 담담하게 내 시점에서의 12월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123일 저녁, 행성인 HIV/AIDS 인권팀 행사가 끝나고 다른 행성인 활동가의 집에서 술을 마시러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했다. 내가 활동하는 다른 청년 성소수자 단체인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의 실무단 톡방에서 난리가 났고, 나는 술이고 뭐고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행성인 활동가의 집에 가서는, 다들 술을 마시며 실시간 뉴스를 시청하고, 동시에 각자 활동하는 단체의 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리거나 긴급 성명문을 작성하거나, 혹은 다른 활동가들에게 연락하느라 바빴다. 큐사인도 급하게 카톡으로 운영되던 실무단 톡방을 텔레그램을 옮겼고, 성명문을 작성해서 SNS에 게시했다. 술이고 뭐고 당장 국회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말렸다. 결국 내가 소주를 두 병 마시고,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가 통과된 후에야 나는 뒤늦게 국회로 달려나가 친구들과 만났고, 새벽에 윤석열이 계엄을 해제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이 방송에 송출될 때 추위에 떨며 밖에 있었다.

 

그 이후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는 이후의 대응을 위해 윤석열 탄핵 성소수자 공동행동을 만들었다. 큐사인 실무단 중에서는 내가 큐사인 행사 기획 등의 실무를 조금 줄이고 공동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들 나보다 몇 배는 더 오랫동안, 더 많이 활동을 이어나간 활동가들이었기에 공동행동 안에서의 나의 역할은 회의에 참관해 논의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집회 등에 인력이 필요하면 달려가서 돕는 역할이었다.

 

126일 금요일의 집회부터 본격적으로 무지개행동을 비롯한 여러 연대 단위의 구성원들이 깃발을 들고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광장에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알바를 다니던 매장에서 퇴근해서 국회로 달려가 보니 다른 활동가들은 아직 한두 명밖에 있지 않았고, 집회 시작 전에 시민들의 자유발언 신청을 받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사실 별 생각 없이, 아니면 무지개행동에서 누군가는 오늘 밤에 무대에 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너무 늦기 전에 나라도 신청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내가 발언을 신청했다고 하니 몇몇 활동가들이 나의 발언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무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무지개행동에서 제작한 작은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시작했다. 발언할 계획이 전혀 없었기에 발언문 따위도 당연히 준비하지 않았고, 급하게 발언하고 싶은 말의 개요만 적어 둔 핸드폰은 마이크와 피켓 때문에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코코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는, 냅다 실명을 밝히며 발언을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이 지나고 무대를 내려가 큐사인에서 함께 실무단으로 활동하는 친구를 보고 냅다 끌어안았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과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실명을 밝히고 커밍아웃을 한 것의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비로소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든 간에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깃발을 들고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다들 환영해 주었다. 그날 밤에는 나 말고 다른 성소수자 시민이 본인의 정체성을 밝히며 발언을 했고, 그날 이후로도 거의 매일매일 집회마다 성소수자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발언하며 광장에서의 성소수자 시민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 다음 날인 127일은 국회 앞, 그리고 여의도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도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깃대를 들고 무지개 깃발을 나눠 주기 위해 조금 일찍 국회의사당 앞으로 향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피켓과 핫팩, 그리고 케이팝 응원봉을 들고 모여 있었다. 그 전날인 금요일부터 그날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딱히 관심도 없어 보였던 나의 성소수자 친구들이 무지개 깃발이 모여 있는 곳으로 본능적으로 모여서 함께해 주었다. 무지개 깃발들을 믿고 찾아 준 그들에게 정말, 정말, 무척이나 고마움을 느꼈다.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몇 시간 동안 밖에 있다가 여당 의원들의 탄핵한 표결 보이콧을 보며 다함께 분노했고, 나는 저녁에 행성인 회원들과 함께 간단히 술을 마신 후 자주 가는 퀴어 프렌들리 바로 향했으며, 자정이 넘어서는 이태원 클럽으로 향해 기분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잘 될 리가 없었고, 결국 한두시간 남짓 여러 클럽을 돌다가 텐션이 도저히 오르지 않았던 나는 함께 클럽을 간 친구들을 데리고 소주를 마시러 갔다. 거의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저녁 8시까지 쓰러진 듯 잔 후에, 그 다음 주 평일부터 나는 시간이 되는 날이면 거의 매일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집회 일정 때문에 진짜 급한 약속이 아니면 평일에 약속을 잡지 않았고, 큐사인이나 행성인, 무지개행동, 혹은 내가 인권팀으로 활동하는 HIV/AIDS 인권행동 알의 깃발이 나의 손에, 혹은 내 옆에 저녁마다 있었다. 1213일 금요일 낮에는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에서 개최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있었고, 행성인과 큐사인에서 활동하는 나의 친구들이 참석하고 발언하기도 했다. 개인 일정으로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보며 존경과 연대, 그리고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그렇게 매일같이 저녁마다 시위에 나가다 보니 1주일이 지나 있었고, 1214일 토요일이 되어 다시 한 번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윤석열 탄핵 성소수자 공동행동에서 아예 여의도공원에 자리를 넓게 잡고 성소수자 시민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모일 수 있는 무지개존을 만들기로 했다. 자리를 잡는 데 쓰일 알루미늄 돗자리와 모두의결혼 가판대, 모두의결혼 로고를 붙여 놓은 막대사탕, 대량으로 제작한 손피켓(손피켓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아주 많았다), 여러 단체의 무지개 깃발, 확성기와 마이크가 등장했다. 무지개존에서 사전 집회를 하기로 한 시간이 되어 (미리 선동과 구호 외치는 역할 하겠다고 자원한) 나는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서서 구호를 선창하고, 자유발언을 외치고, 음악을 틀고,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하면서 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무지개존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었고,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혼잡해진 주변의 통행을 정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스스로 맡아 자원했다. 국회에서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고, 주최 측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틀어 모두가 기뻐했던 것이 집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집회가 끝나고 그날 밤만큼은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밤새 술을 마시며 기쁘게 즐겼던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많이 마신 게 문제였지만.

 

14일 집회에서 무지개존 참여자들에게 구호를 유도하는 코코넛 (사진: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그러나 그 다음주부터 이어진 우울한 정계 뉴스 때문에 사람들의 분노는 또다시 축적되기 시작했다.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평일 집회를 개최하지 않고 주말 집회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회의와 뉴스 공유 때문에 집회를 쉰다는 기분은 나지 않았다. 그 이후 토요일인 1221일은 행성인 송년회 날이었기에 나를 포함한 행성인 사람들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다만 광화문 집회에서 무지개존이 운영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행성인 송년회가 열린 밤, 내가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 남태령에서는 트랙터를 끌고 서울까지 올라온 농민들과 경찰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고 큐사인의 친구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밤늦게 남태령으로 뛰어가 그 다음날 새벽과 아침까지 연대와 투쟁을 이어나갔다.

 

늦은 아침에 술이 깨서 일어난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밥을 먹고 씻고 남태령으로 달려갔다. 오후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무지개행동에서 깃발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HIV/AIDS 인권행동 알의 인권팀으로 함께 활동하는 동료가 한 시간 정도 후에 알의 깃발을 들고 합류했다. 그 자리에는 또 우연히 마주친 나의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도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 끝에 결국 경찰은 경찰 버스를 철수했고, 트랙터를 탄 농민들과 시민들은 사당역까지, 그리고 윤석열의 관저 근처인 한강진까지 행진하기 시작했다. 남태령 집회의 자유발언에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등장했다. 사당 쪽에서 저녁을 먹고 한강진 집회에 합류하니 무지개행동과 큐사인의 깃발이 보였다. 깃발들을 휘날리며 집회에 참여했는데 집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나는 집회에 있던 내 친구들과 활동가들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집으로 향했다. 남태령 집회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시민들이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농민 등 많은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의 힘을 깨달은 것 같았고, 광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평등을 위한 프로토콜이 자리잡게 되었다. 투쟁하고 연대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은 크리스마스 전날인 1224일의 늦은 오후이다. 나는 글을 다 쓰고 나서 또다시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설 것이고, 내일인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그리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 주최하는 명동의 집회에 나갈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아닌가. 예수가 2024년 겨울의 서울에 있다면, 난방 잘 되고 화려한 성전이 아닌, 추운 거리 위에, 광화문과 여의도와 명동의 거리 위에, 성소수자들과 여성들과 이주민들과 노동자들과 장애인들과 농민들과 함께 무지개 깃발을 들고 투쟁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많은 것을 할 수 있거나 많은 능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되지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광장에서 해 나갈 것이다. 부패하고 자격 없고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대통령과 정권이 내려올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우리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활동해 나갈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고 자주 우울하고 힘들어지는 여정이지만,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