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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에세이] 우리의 드리블은 준결승까지 갔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by 행성인 2024. 10. 22.

소연(행성인 운동소모임 큐리블)

 

 

지난 1012, 초가을의 더운 햇살 속에서 퀴어여성게임즈가 진행되었다. 큐리블의 오랜 숙원 사업이자 염원이었던 퀴어여성게임즈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가팀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10명의 팀원이 있어야 했는데, 팀원을 모으는 것부터 어려웠다. 큐리블에서 정기적으로 풋살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지수, 소하, 슈미, 사비 5명이었다. 나머지 사람을 어디서 채워야하는지 고민을 하던 찰나에, 큐리블의 정신적 지주(?)를 맡고 있는 슈미가 발 벗고 나섰다. 지오, 평과, 엔진 그리고 다른 풋살팀에서 활동하는 3명을 초대하여 총 11명이 되었다. 경기 날, 나는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나머지 10명이 선수로 등록되어 경기에 참여했다.

 

슈미의 열정적인 리더십으로 모인 우리는 열정적이었다. 8월부터 단톡방을 만들었고 훈련 일정, 참가비도 정했다. 9월 말에 모여 열심히 연습하고 다른 팀원들과 매치 경기도 하며 볼 감각, 경기 감각을 키워나갔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각자가 가진 재능과 열정을 알 수 있었다. 지수는 과거 축구 경험을 살려 우리의 훈련을 계획하고 가르치며 예산까지 관리했다. 슈미는 역시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맡아줬다. 소하와 사비는 훈련에 열심히 참여했다. 지오는 골레이로(골키퍼) 포지션을 주로 맡았는데 거의 거미손이었다. 엔진과 평과는 풋살을 처음 해본다고 했는데, 역시 행성인 회원답게 열정이 넘쳤다. 그들이 보여준 공에 대한 집념은 햇수로만 풋살 5년차인 나보다 더 뛰어났다. 다른 팀에서 합류한 3명과의 호흡을 맞출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마치 오랫동안 한 팀이었던 것처럼 서로 어울렸다.

 

경기 당일은 풋살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8팀이 참여하여 A, B조로 4팀씩 나뉘었다. 우리는 B조로 너랑나랑FC, FC이오, FC마한클과 한 경기씩 뛰었다. 사진에 나와있지만, 우리는 마한클을 제외하고 계속 승리하여 조 2위를 해서 준결승까지 올랐다. 큐리블과 다른 팀의 콜라보 팀은 1~2골을 계속 넣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우리가 유력한 꼴찌였다.

 

우리의 전략은 총 경기시간 10분 동안 계속 뛰지 않고 5분 후 팀원 교체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코치로서 경기장 안에 들어가 5분 후 골레이로(Goleiro: 풋살용어로 골키퍼 역할을 의미_편집자) 교체를 한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하는 역할을 맡았다. 골레이로 교체는 다른 포지션 교체와 다르게 경기를 중단하기 때문에 골레이로 교체를 하면서 다른 팀원들도 교체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면서 우리는 승부욕이 생겼고, 열의가 넘쳤다.

 

준결승에서는 지난 퀴어여성게임즈 우승팀이었던 대포꾼FC와 붙었다. 패배했지만 슬프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해냈다. 꼴찌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밝고 화창한 날 땀 흘리며 공을 쫓는 사람들을 보니 연수가 계속 생각났다. 연수는 우리의 드리블은 모든 차별을 제친다는 큐리블의 기조(?)를 만들었다. 우린 행성인의 지원으로 현수막도 만들고 친선 경기가 있을 때마다 들고 갔다. 당연히 이 날도 들고 가서 다 같이 현수막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연수는 원래 다른 팀 소속으로 이 경기에 출전하려고 했었다. 내 느낌에는 연수가 우리 팀에서 함께 뛰어준 것 같다. 그래서 여러 번의 골의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큐리블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면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큐리블에서 함께 뛰고 숨 쉬고 있으면, 세상의 경계나 모순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삶의 원동력이던 나는 괜히 혼자 지치고 진이 빠질 때가 많았다. 한없이 웃고 떠들고 싶어도 이 분노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것이 가능한 큐리블은 언제나 나의 비타민D이다. 우리가 퀴어여성게임즈에서 준결승까지 갔으니 필수 사업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볼까? 어디를 가든 우리는 억압과 차별을 제치고 즐거움을 쟁취할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큐리블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큐리블 공지방에 있는 감자, 원빈, 소하, 이안, 림군, 해리, 사비, 서영, 레인, 슈미, 제이, 쿠다, 지수, 하루, 애옹, 연수, 희영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쭉 함께 해주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