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행성인 HIV/AIDS인권팀)
이 글은 (아마도) 킥복싱을 영업하는 글이다. 행성인 웹진의 지면을 빌려서 (인권 말고) 운동을 영업하는 글을, 그것도 게이가 쓰고 있다니. 만약 축구하는 게이와 비교하며 그쪽이 오히려 뻔하다고 말하면 주변의 축구게이 친구들(놀랍게도 축구를 좋아하며 무려 몸으로 실천하는 게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때론 본인이 축구하는 사실을 '일틱'의 속성으로 주장하기도 한다.)이 분개하려나.
아무튼 이 운동을 어림잡아 1년반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다. 보름 전에는 무려 대회에 참가하여 링 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부터 킥복싱에 대한 경험을 쓰고 싶었지만 감히 내가 이 운동을 욕보이게 될까봐 미루고 미루다 쓴다. 짧은 기간의 운동시간이고 고작 일주일에 2, 3일 나간 경험에 바탕한 좁은 식견으로 쓰는 글임을 미리 밝힌다.
오늘도 운동을 했고, 통산 178회 출석이다. 운동 첫 날로 돌아가보자. 직장 바로 근처에 센터가 생겼다고 출근길 홍보 현수막이 걸렸다. “말 안듣는 후배, 짜증나는 선배” 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에는 펀치를 날리고 있는 인물의 이미지가 같이 있었다. 오피스 단지를 타겟한 홍보 문구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당시 일터 환경을 생각하면 자극이 된 것도 그렇거니와, 마치 저기에 가면 당시의 미쳐버릴 것 같은 다양한 스트레스를 해결해 줄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보내고 등록 상담을 갔다.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되기 전인 그곳에 카운터만큼은 적당히 있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3달 수업을 결제했다. 나중에 관장님께 전해들었는데 무려 내가 첫 등록회원이었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운동을 시작하기 전 킥복싱은 커녕 어떤 종류의 운동에도 일절 관심이 없었다. 언젠가 경기 영상을 보면 남자선수의 몸에는 눈이 갔지만 격한 운동이고 그 폭력적 이미지가 무서웠다. 한대도 맞거나 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직접 접한 운동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마냥 때리고 맞는게 아니었고, 이것마저 절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으레 킥복싱장이라면 한번쯤 들어봄직한 “시작하고 3달간은 줄넘기만”이 아닌 거다. (적어도) 내가 다닌 센터는 크로스핏과 약간 결합하여 매일 달라지는 몇가지 운동으로 몸풀기를 한다. 첫 몇주간 기본 기술 연습을 하고 다양한 기술을 배운다. 원투 펀치, 훅, 어퍼, 로우킥 미들킥 무려 하이킥까지!
이 경험이 꽤 재밌었는데, 한번도 내 몸은 ‘발차기를 잘하기 위해서’ 쓰인 적이 없던 것이다. 발차기를 잘하려면 하체 근육이 중요하지만, 유연성과 더불어 복부를 비롯한 상체 근육이 꽤나 중요했다. 펀치도 팔보다는 하체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나로선 몸을 새롭게 접하는 방식이었다. 운동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빡치는 일이 있을때 샌드백을 때리는 건 꽤나 정신건강에 좋았다.
그렇지만 첫번째 저항은 꽤 금방 찾아왔다. 바로 스파링. 샌드백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때려야하고 심지어 그는 나를 때리려고 한다. 첫 스파링은 별로 맞지도 않았지만 체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몇번의 스파링을 거치면서 든 고민은 ‘얼마나 세게 때려도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파고들어 때리면 상대쪽에서 나를 때려왔다. 제법 아팠다. 어느 날에는 발차기를 맞고 갈비뼈에 실금이 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파링을 보고 코치님들은 종종 ‘너무 상대방을 신경 쓰면서 때리려고 한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그치만 아픈건 누구라도 싫지 않나! 대회를 준비하면서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때리는 게 제일 어렵다.
대회. 한번은 나가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운동에 대한 진심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걸까. 한가지 혹했던 것은 대회를 출전하기 위해서는 협회가 지정한 업체의 개인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센터에 공용 글러브가 있지만 개인 글러브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나도 몇번을 고민했지만 구매가 망설여졌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내가 개인 글러브를 가질만큼 이 운동에 진심이 아니면 어떻하지 라는 검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센터 거울 한켠에 “00월 00일 ***대회 참가자 모집!” 이라는 글을 발견했고, 오늘이 그 날이라는 직감으로 바로 코치님께 신청의사를 밝혔다. ‘대회를 나가게 되면 글러브를 사야한다’는 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운동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코치님 왈, 어차피 아마추어 대회는 “3분 1라운드라, 기술이나 전략보다는 체력과 악으로 깡으로 맞는걸 견디면서 한대라도 더 때려야하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이 큰 표적이라는 감각이 들었다. 적당히 맞아주는 것과 잘 피하는 것, 그러면서도 기죽지 않고 다음 한 대를 더 때리는 방법을 배웠다. 대회를 준비하기 전에 샌드백을 다룰 떄는 쉬엄쉬엄 3분 10라운드를 했다면, 1라운드만에 모든 체력을 다 태우는 연습을 하고 같이 대회를 준비하는 분들과 수차례 스파링을 했다.
대회 당일, 아침 8시까지 대회장에 도착해서 몸무게 측정을 위해 모였다. 그리고 들은 사실. 성인 아마추어 대회는 저녁 5시 시작이라는 것이다. 코치님들은 일상이라는 듯 (맞긴 하지만) 이미 전날 와서 모텔을 빌려놓고, 대실을 하거나 근처 만화카페에 가서 쉰다. 그들은 시합 전에 몸풀기 운동할때 맞춰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고민하다가 근처에서 밥을 먹고, 다른 센터 세미프로 선수의 시합을 같이 보자는 코치님의 제안에 시합들을 봤다. 놀랍게도 이게 처음으로 킥복싱 시합을 제대로 보는 경험이었다. 결론은 매우 좋았다. 운동이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지키고, 시합 전후의 매너를 지키는 일까지. 굉장히 짜임새있는 구조에서 치뤄지는 경기들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어떤 경기는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같이 응원하고 탄식하다가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이 운동의 문법을 조금은 알게된 것일까.
그리고 다가오는 순번. 당연하지만 변수가 많은 운동이라 거듭 딜레이가 되어 5시에 시작한다던 시합들은 6시가 넘어서야 시작했다. 같은 센터 회원분들이 연달아 승리를 했고 하필 우리 센터의 가장 마지막 순번인 나는 7시가 넘어서야 시합에 임했다.
조금 뻔하기도 하고 스스로는 아쉽고 분하지만...졌다. 3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1분도 안되어서 K.O 패를 당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을 풀자면, 상대는 절대 아마추어가 아니었고 너무 능숙하고 부드러운 돌려차기로 내 뒷목을 가격했다. 거기다 연달아 오는 펀치를 막지 못했다.
아마추어 경기는 실력차이가 심하다고 주심이 판단하는 경우 바로 K.O가 떨어진다. 아무튼! 그래도!! 분하고 아쉽다. 이겨야 좀 더 간지나는 글이 되었을텐데. 무려 지고서도 메달과 상장을 받았으니 그걸로 퉁쳐보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이 운동이 좋다. 그치만 여전히 어려운 건 맞는 게 싫다는 거다. 아무래도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그러면 때리는 게 좋은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렇게 두 문장을 쓰고나니 마치 어떤 플레이가 떠오르지만 아무튼 이 글에선 아니다) 내가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만나서, 나를 견디게 해준 운동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 글을 처음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이 운동을 설명하고 추천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않은 것같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약간의 고민이 든다면 한번 잡숴보시라. 바야흐로 게이도 킥복싱을 하고, 그걸로 글도 쓰는 요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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