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행성인, 부산 주민)

앨라이 선언
꽤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왔다. 몇 년의 시간을 빼면 반에서는 늘 겉돌고 혼자 다니는 조용한 아이였다.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으로 알게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인터넷 생활은 익명으로 이루어져서일까, 내 주변에는 퀴어(성소수자)가 많았다. 레즈비언, 바이, 게이, 그리고 트랜스젠더친구들. 성 정체성이 어떻든, 성 지향성이 어떻든 그냥 친구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해서, 고민을 들어주다 보니 커밍아웃도 여러 번 받고.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니까, 성소수자가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려 하는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응원해주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앨라이가 되었다.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성지향성 찾기를 시작했다. 내 성정체성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고, 그래서 비교적 쉽게 느껴졌던 성적 지향을 찾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평범한 이성애자'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부정하며 살던 때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정보값이 없다고 해도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학창시절에 같은 반 아이들의 연애 이야기, 연애 프로, 소개팅 같은 얘기를 듣고 볼 때마다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이랑 연애하고 관계를 맺을 생각을 하지? 섹시하거나 꼴린다는 게 대체 뭔데? 싶었다. 친구 몇몇이 보던 야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랑 다른구나. 남자 몸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여자 몸이 낫지. 그런데 그렇다고 남자 몸이 싫은 건 아니었다. 관심이 비교적 덜했을 뿐이지 없는 거랑은 다르니까. 어떤 성별이든 사귈 수 있고, 성관계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믿고 의지해온 사람과만 가능하다.
그래서 데미로맨틱이자 데미섹슈얼, 팬섹슈얼로 정체화했다. 바이(양성애자)가 아니라 범성애자로 정체화한 건 내가 느끼는 '사랑'은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결론적으로 성별이라는 개념이 흐릿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1
범성애와 무성애 스펙트럼
20대 중반 이후에는 에이섹슈얼(무성애,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에이섹슈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름표이면서, '에이엄브렐라'처럼 스펙트럼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전혀 느끼지 않고, 어떤 무성애자는 가끔 느끼며, 어떤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은 느끼지만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공부할수록 정말 다양한 농도와 형태의 무성애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이름표들 사이에서, 나는 마침내 나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느끼는 것을 찾아냈다. 그게 바로 그레이에이섹슈얼다. 가끔, 아주 희미하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개념인데, 지금은 그것이 성적 지향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유성애적 관점으로 보면 범성애자가 맞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모든 성별에 골고루 섹슈얼한 끌림을 잘 느끼지 않았으니 처음에 범성애자로 정체화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사실은 반대에 더 가까운 거였다.
무성애자라해서 섹스를 하지 않는다거나, 감정을 못 느끼지 않는다. 섹스를 혐오하는 무성애자도 있고, 별 생각 없는 무성애자도 있다. TMI지만 나도 즐기긴 한다. 다만 내가 능동적으로 하고 싶어서보다는 상대방이 좋아하니까. 상대가 좋아하면 기분이 좋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관계를 함으로써 기쁨과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건 좋은 일이잖아. 나에게 섹스란 그런 거다. 상대가 나를 위하듯이 나도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
지향성에 관한 고민이 어느 정도 끝난 20대 후반. 미루고 미뤄두었던 내 성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로 몇 년 전이다. 나에게 맞는 정체성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의 기쁨을 이전에 경험했기 때문에, 얼른 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이야기를, 트위터 비계에다 한 마디 털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 나 논바이너리인가?
내가 여성이 아님을 인정하는 데에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렴풋이 아는 것과, 그걸 인정하는 건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해서 바뀌는 그런 게 아니었다. 찬찬히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별을 나누는 것이 싫었다. 작은 장난감에도 여아용 남아용이 당연한 듯이 붙어 나오는 세상이, 내 마음의 어딘가를 늘 불편하게 했다. 너는 여자아이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고, 너는 여자아이니까 인형을 선물해 줄게. 너는 여자아이니까 분홍색 리본을 달아줄게. 어릴 땐 그게 그냥 싫었다. 왜인지는 잘 몰라도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적인 것'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곤 했다.
이제는 안다.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나는 치마나 인형이 싫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지. 분홍색이나 리본은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취향의 영역이다. 내가 싫었던 건 자꾸만 성별의 테두리 안으로 가두는 행위 그 자체였다. '치마, 인형, 분홍색, 리본'이 싫은 게 아니라 '너는 여자아이'가 싫었던 거다.
○○라는 내 이전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소리 울림도 취향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꽤 여성스러운 이름이었다. 내 이름 석 자를 말하면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도 나를 여성으로 인식했다. 사촌 여자 형제들과 돌림자를 써서 더 찝찝했다.
'여자', '여성', '여자아이', '여학생', '아가씨', '언니', '누나'... 그리고 예전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불편감과 답답함이 꿈틀댔다. 여자 화장실, 여탕과 같은 여성 전용 공간에 들어갈 때도, 수련회나 정모에서 여자 숙소로 배정받을 때 나는 그런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했다. 이 느낌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안 맞는 블록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자꾸만 무언가 강요당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 또는 불일치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같이 공감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다. 그 기분 나쁜 경험을 평생 해오면서, '그래도 사회에서 나는 여성으로 인식되고 이걸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까' 맞춰서 살아왔던 거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표현하고,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더 이상 나 자신과 주변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성이 아니고, 그렇다 해서 남성도 아니다. 두 집단 모두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홀로 동떨어져 우주 속을 떠도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논바이너리일까. 고등학생 때까지도 논바이너리의 존재를 몰랐다. 트랜스젠더는 친구 덕분에 알았지만, 성별이 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은 20대 초반에서야 알게 되었지. 그마저도 논바이너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고, 트랜스젠더에 속한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논바이너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내가 평생 느껴온 이 답답함을 설명해줄 용어가, 논바이너리라는 사전 안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국어로, 영어로 검색했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안드로진, 바이젠더, 젠더플루이드, 데미걸, 뉴트로이스... 오죽하면 답답한 마음에 간이 테스트까지 했을 정도로. 그러다가 에이젠더라는 이름표를 만났다. 에이젠더는 젠더퀴어 정체성의 한 종류인데, 젠더가 없다는 걸 뜻한다.
에이젠더
젠더가 없는 젠더라니 다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나는 이게 뭔지 잘 안다. 단어와 설명을 보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번뜩였다.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으며, 그 어떤 성별로도 구분지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에이젠더다.
논바이너리 및 에이젠더로 정체화한지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가족에게 커밍아웃(아빠 제외)하고 온라인에도 논바이너리라고 말하고 다닌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정체성 고민은 오래 걸리는 일일 수 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알았겠지만, 누군가는 40대 50대가 되어서야 깨달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평생 의문만 품은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니, 내가 누구였는지 인정했더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나는 에이젠더다. 트랜스젠더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인구 수만큼 다양한 퀴어 용어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SNS를 꽤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어들을 접했던 것도 있는데, 가장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때이다. 트랜스젠더 친구 덕분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다가 발견한 모 블로그의 글이었는데, 다양한 젠더들이 그림과 함께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 글이었다. 그 당시 인터넷에서 꽤 유명했던 이미지였는데, 처음 봤을 땐 정말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트위터에서 퀴어 친구들을 더 사귀게 되고, 블로그에서 보았던 그 단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에 혹시나 친구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확실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성소수자 단체의 용어 설명 페이지를 정독하고 퀴어 서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당사자들이 하는 고민과 여러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었다.
젠더와 지향성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익숙한 용어가 늘어날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 스펙트럼이었다.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고, 그 무엇도 완전한 0과 1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라는 존재.
언어의 힘을 실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름표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냥 너라는 사람이면 됐는데 왜 자꾸 이름표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정체성에 이름표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퀴어 중에도 꽤 많다),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던 당신의 경험이, 당신 혼자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의 용어로 이미 세상에 존재함을 안다면. 당신 말고 다른 누군가도 당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는 걸 안다면.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그걸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면 나는 몇 번이든 이름표를 붙여 가보자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름표가, 단어가 존재함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 데미로맨틱(Demiromantic)은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 상대에게만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을 말한다. 데미섹슈얼(Demisexual)은 강한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한 상대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경우를, 팬섹슈얼(Pansexual)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성적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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