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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연애와 활동 그리고 반성과 자기 돌봄 언저리에서

by 행성인 2025. 1. 19.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4년 12월 3일 계엄렴이 선포되었다. HIV/AIDS 인권팀 행사 참여 후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X(트위터)를 하다가 소식을 접했고, 갑자기 겪은 소식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같이 살고 있는 룸메이트에게 소식을 접했는지 물어봤다. 룸메는 나의 걱정과 달리 덤덤하게 ‘어차피 금방 해결 될 일이다’ 라고 말하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애인에게 연락했을때, 계엄령이 정확히 어떤건지 되물었다. 나 또한 계엄령이 정확하게 어떤건지 몰라 검색한 정보를 조합해 설명했다.

 

‘헤엑 진짜 미쳤네’ 

 

설명을 마치고 애인에게 내일 퇴근하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애인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저 가야할 것 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계엄령이 선포된 것보다 내가 퇴근 후에 어디서든 열릴 집회에 가야하는 내 모습을 더 의아해 했다.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내게 속상함이나 다른 감정을 느꼈을지 몰라도, 그는 ‘그렇구만’ 이라는 답변을 남기며 대화를 마무리헀다. 평소 내가 단체 활동이나 집회에 참여하는 일을 별로 탐탁치 않았던 친구니 그런가보다 가벼이 넘겼다.

 

4일 아침, 세상은 평화로웠다. 알람을 못들어서 출근시간이 임박해 황급히 회사에 시차를 낸 뒤 서둘러 회사로 향했고, 어찌저찌 출근을 하니 사무실 입구에는 각 매체사들의 신문이 놓여 있었다. 계엄령과 후속상황에 대한 보도로 빼곡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업무에 집중도 안되고, 계속 커뮤니티와 실시간 검색어 순위만 살펴보면서 보냈다. 애인에게 연락을 넣었으나 시큰둥한 답만 오고, 나 또한 그저 며칠 지나면 풀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상 대화만 이어갔다.

 

애인의 태도가 답답했다. 그는 내가 활동을 하는 것이 종종 멋지고 대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때론 자신에게 써줬으면 하는 시간을 활동을 이유로 거절하면 ‘넌 항상 그런식이야’ 라고 실망감을 잔뜩 내비친다. 몇번이나 진중하게 대화를 시도해도 직접적인 갈등만 해소 할 뿐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로 서로에게 불만과 답답함을 쌓아갔다. 감정의 골은 대화를 나누며 더듬을 수 있었다. 그저 내가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 데 불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헛짚었다. 그는 내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며 활동에 참여하고, 그렇게 소진된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그동안 애인이 ‘집회(활동)에 가지 마라. 꼭 네가 가야하는거야?’ 라는 물음을 자신과 놀아달라는 요청으로 생각했다. 그저 활동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않거나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챙기지 못하는 중에 여기저기 활동한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나는 애인을 재단하며 혼자 아쉬움을 삭였고 말이다. 계엄 이후 연이은 집회에서 수 많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자신들의 짝꿍들과 손을 잡고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때마다 본인이 참여한다고 뭐가 바뀌는지, 그리고 나에게 득이되는게 뭔지 묻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문제가 비단 나와 애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이 바람에게 카툰 스타크래프트 저글링으로 만들어준 하트

 

때때로 애인은 사회문제나 정치 이슈에 대해 물어보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당함과 불편함을 제대로 말한다. 그런 성정을 갖고 있는 이가 나의 활동을 마뜩치 않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달랐던 것일지 모른다. 활동이란 직접 행동(서명,후원,행사)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가 품을 낼 수 있을만큼 참여하는 것 또한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집회 장소 인근 식당과 카페에서 선결제를 하거나 푸드트럭을 보내고 핫팩을 나눠주듯 말이다.

 

애인은 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마다해도 내가 활동하는 시간을 존중하고 양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점차 커지기 마련. 집회나 퍼레이드 정도는 같이 나가자고 요청의 덩치를 키웠고, 그는 생각해보겠다는 퉁명스런 답을 하는데 그쳐 이쪽에서도 답답함과 속상함이 커진 것이다. 이번 기회에는 다툼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차이점과 나의 잘못을 되돌아본다. 이제 어떻게 이야기 나누면 좋을지 고민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