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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신임 운영위원 이야기] 꿈을 이루겠습니다

by 행성인 2025. 3. 25.

이안 (행성인 운영위원)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행성인에서 25년도부터 운영위원과 트랜스팀장으로 활동하게 된 이안입니다.

 

반갑습니다. 짧막하게, 또 편하게 이야기 나누도록 할게요.

 

운영위원으로서의 목표는, 행성인이라는 이름과 공간이 제게 그랬듯 많은 회원들에게 좀 더 ‘믿는 구석’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단체로서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곳, 해야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을 자유롭게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총회 자료집에 올라간 저의 올해 운영위 활동에 대한 다짐 문구입니다. 한 해 포부를 적도록 칸을 마련해주셨지만, 정답이랄 게 없는 그 작은 빈칸을 알맞게 채우는 일도 참 어렵더군요. 글쓰는 솜씨가 영 아닌 것도 한 몫 하지만요. 대단히, 대단한 일을, 대단하게(!) 해낼 역량이 없는 것만 같았어요. 사실 제안받았을 때 기쁘면서도 막막했어요. 어느 단체이든 누구든, 운영위원이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과 고민이 만만치 않을테니까요. 흔쾌한 척 수락한 후에도 속으로는 계속해서 ‘네? 제가요?’ 라는 메시지가 종종 떠올랐어요. 자신이 없었달까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부터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행성인에선 분명 제가 뭔가 기여할 수 있겠다, 함께 무언가 해볼 만하겠다는 믿음으로 제안해주셨으리라, 그렇다면 나 역시 행성인에 대한 믿음으로 보답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더라고요. 당장은 덜 아프고 덜 바쁠 때 조금 더 시간내서 행성인 활동에 다양하게 많이 참여하고, 특히 매일 어딘가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급적이면 계속 가야겠다, 연대활동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활동 중 하나겠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내일 할 일만 보자면 그렇지만, 위의 다짐 문구와 같이 조금 큰 욕심도 있어요. 저처럼 행성인에서 할 수 있는 모임, 활동, 그리고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행성인이 계속 필요하고 또 좋아하는 곳이도록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뭘 더 한다고 더 엄청 행성인을 사랑할 거다, 이런 것보다는요. 그저 좀 더 오래 곁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생각보다 더 깊이있게 고민해야하고 더 멀리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아직은 전-혀,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만, 아마 이 자리는 그런 고민과 일들을 하라고 주어진 것 같아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하고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몸과 마음으로 서울에 와 어른이 되어가다보니 ‘있을 곳’에 대한 욕구가 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서울살이는 꽤 낯선 삶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두 해만에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가며 생활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거주가 불안정한 와중에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언제 어떻게 거부당할 지 꽤 전전긍긍했던 것 같습니다. 당당한 듯 조심스럽게 밝혀왔지만 결국에는 성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나의 관점과 체계가 남들과 다르고 낯설다는 이유로 나라는 사람을 꺼려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은 늘 있기 마련이었죠. 그러다보니 마음이나마 정착할 곳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런 점이 퀴어들에게 커뮤니티나 단체가 꼭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잖아요. 행성인은 나라는 데에 아무런 의문 없이 편하고 즐거운 곳이 돼줘서 정말 기뻤던 순간이 많아요. 또 한편으로는 투쟁하는 퀴어들에게 즐겁고 안전한 놀 터이자 쉴 터인 점이 큰 자부심이기도 해요. 제가 처음 행성인을 알게 된 것도, 행성인이 긴 시간 해온 역할 중에도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이름의 머리와 끝에 있는 ‘행동’과 ‘연대’라 생각해요. 여담이지만 행성인 깃발과 함께 행진하면 뒷배같고(?) 든든하더라구요. 저 약간 기수 욕심 많아요. 꿘부치라면 모름지기 깃발들고 흔들어서 팔근육 키워야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 하나 소개하면서 마무리할게요. 예전에 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초면인 분들과 함께 했던 ‘가치 단어 찾기’ 인데요. 4~50여 가지의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쭉 나열합니다. 그 중 나라는 사람에게, 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하여 처음에는 10개, 그 다음에는 5개, 또 그 다음에는 3개, 2개, 마지막으로 단 1개만 남기도록 합니다. 각 단계별로 무작위 지목하여 어떤 단어를 왜 골랐는지, 왜 남겨두었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지요. 저는 항상 맨 마지막 3가지로 믿음, 희망, 사랑을 남겨왔어요. 그리고 운좋게도 행성인에서 그것들을 찾았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내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삶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곳에서 그것들을 찾았나요? 혹은 찾을 수 있으리라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