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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신임 운영위원 이야기] 까짓 거 한 번 해보죠

by 행성인 2025. 3. 25.

소하 (행성인 운영위원)

 

 

혼란과 혼돈이 지배하는 난세의 시기에 다들 안녕들 하신가요? 저는 소하입니다. 원래는 운영위원을 맡게 되어 각오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지면이었는데요. 각오를 이야기하자니 “까짓거 한번 해보죠!” 정도로 짧게 나올 것 같아서, 여러분이 저를 잘 이해하고 제 생각을 알 수 있도록 제 얘기를 늘어놓아 보려고 해요.

 

 

 

우선,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입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게임 기획자로 일했지만, 지금은 인권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한 지는 그렇게 오래된 편은 아닙니다. 19년도 하반기에 정체화를 하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으니까 대충 5년 정도 됐네요. 외모도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리까리하게 생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머리가 길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아리까리해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갖고 오픈리 퀴어로 살고 있어요. 저의 퀴어 정체성을 부정당하면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편입니다.

 

게임 기획자로 일한 건 13년부터 23년까지 회사에 다녔으니까 대충대충 10여 년 동안 게임 기획자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더 이상 게임 업계에 미련이 남지 않아서 게임업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게임업계는 업계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젊은 편이라 사고가 열려있고, 개방적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남초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과로를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강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점점 지쳐서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이냐.

 

오픈리 트랜스젠더로 사는 저는 한국의 구직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듭니다. 거기에다가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니 급여가 좋거나 노동환경이 좋은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었죠. 그렇담 성별 정체성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 일자리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인권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이게 인권 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사회를 더 좋은 곳을 만드는 일이라면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루하루가 보람찰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활동하려고 알아보다가 행성인에 가입하여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서울인권영화제에선 자원활동가를 하다가 상임활동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얘기를 해볼까요? 돈이 궁한 것만 빼면 현재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입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서울인권영화제 일이 반상근인 탓에 생계유지를 위해서 부업을 구해야 하지만, 이 정도는 참아야죠. 언젠가는 '9 t o 6'를 하는 상근활동가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에요. 돈이 없다곤 해도 할 건 다 하고 사는 것 같아요. 낮잠도 즐기고, 최신 게임도 즐기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아 여행만은 즐기지 못하고 있네요. 이건 좀 안타까워요. 그래도 일하면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껴요. 예상했던 대로 일 자체도 보람차서 일 때문에 피곤과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쁜지 안 바쁜지도 모르고 들어오는 제안을 덥석덥석 받는 경향이 생겼어요. 운영위원도 그랬습니다. 제안이 오자마자 덥석 수락했어요. 사실 운영위원이 뭘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에요. 일단 멋있어 보여서!(명예욕 있음) 라는 이유도 있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아직은 인권 활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리숙할 겁니다. 사회생활도 꽤 경험이 있어서 열정과 패기는 약간 뜨뜻미지근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서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트랜스젠더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