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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33. 미운 네 살, 머리에서 뿔났네

by 행성인 2025. 2. 21.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행성인 동지 여러분,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집도 한 살 더 먹는 떡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어 먹었답니다. 

 

설날은 아이들에게 뭐니 뭐니해도 세뱃돈, 머니를 받는 날이지요? 그래서 인보에게 세배를 가르쳐 주었어요. 삼촌을 따라 절을 하여 세뱃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 년간 저금통에 모은 동전과 세뱃돈을 가지고 은행에 갔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은행 창구 언니에게 통장과 돈을 건네고 저금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감기님이 찾아오셨다

 

사나흘 전 아이의 감기 기운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리가 뜨끈뜨끈하고 온몸이 펄펄 끓어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기침을 콜록콜록하고 콧물도 나서 코가 막혀 훌쩍거렸습니다. 고열은 다행히도 해열제를 먹였더니 (이틀 만에) 열이 내려가서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집중 관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열을 내리기 위해 찬물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머리와 가슴에 대주었더니 편안해하였습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으면 찰스 아빠는 동네 할머니에게 인보를 데려갑니다. 할머니는 아이의 몸에 오일을 발라서 온몸을 두루두루 주물러주고 어깨 관절을 힘차게 돌려주는 치료를 해주신답니다. 할머니께서 필리핀 전통 치료사인 셈이지요.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치료를 받고 집에 오면 아이의 컨디션이 정말 좋아집니다.

 

할머니의 치료비는 한화로 2,500원 정도 하니 아주 저렴하지요. 특히나 전통치료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아픈 주사를 맞는 방식이 아니라 손으로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해 주는 방식이라 울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주사는 불안과 공포 그 자체이지요. 요 녀석 제법 컸다고 할머니께서 치료해 주시는 동안 울지 않고 협조도 잘해서 치료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할머니 고마워요.

 

 

육아의 체력전에서 심리전으로

 

돌이켜보면, 아이가 태어나서 신생아와 영아기를 거치는 동안 그야말로 육아는 체력전이었습니다. 아이가 낮에 우는 것은 견딜만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밤에 울면 밤잠을 설쳐서 하루 종일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울면 분유를 타서 먹였습니다. 그리고 쉬아와 응아를 하여 기저귀가 젖으면 갈아 주어야 했지요. 이렇듯 아이가 먹고, 자고 움직이는 동안 부모의 신체적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했습니다. 여기 까지는 육아가 체력전 인것 같아요. 

 

이제 아이가 만 3살, 한국 나이로는 네 살이 되면서 미운 4살이 되었습니다. 육아의 심리전에 돌입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인보가(?)

 

가장 눈에 띄는 행동은 자신이 하겠다고 우기는 겁니다. 이전에는 부모가 해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었지요.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합니다. 요 녀석 자신이 한다는 말을 “인보가, 인보가”로 외쳐댑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주면 “인보가” 합니다. 칫솔을 건네주면 이를 닦지 않고 수돗물이나 목욕물로 장난을 칩니다. 해찰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아이가 좋아하는 아침은 계란프라이 입니다. 제가 요리를 할 때 자신이 계란을 깨고 싶다고, 프라이팬에 계란을 자신이 뒤집고 싶다고 성화입니다. 

 

요리 식재료를 식탁에 차려 놓으면 엄마가 뭐 하나 궁금해서 제 옆에 서서 갸우뚱거리고 하고 싶으면 “인보가”로 들이댑니다. 어제는 쌈장을 만들었는데 여러 양념을 된장에 붓고 저으려 했더니 자신이 하고싶어해서 해보라고 했더니 신나게 저어댔습니다. 

 

아동의 성장과 발달 단계에서 미운 네 살은 자율성이 높아지는 시기라고 합니다.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고 결과로 성취감을 얻는답니다. 이런 아이의 행동은 사실 자연적이고 정상입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닌 바로 나의 ‘조바심’과 ‘완벽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는데 (딴짓을 하는 등 )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부모는 기다려야 합니다(아 성질 급한 부모에게는 이 기다림이 정말 너무 힘들어요). 

 

또 하나의 부모병은 아이가 어설프게 한 것에 대해 견뎌내지 못하는 완벽성입니다. 사실 아이의 손과 기술이 아직 잘 발달하지 않아 미숙하기 그지없지요.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어설픈 동작을 보다가 못 참고 자신들이 완성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와 찰스 아빠는 기다려줌을 훈련하고 어설픔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자기 돌봄 Self-Care

 

과거의 수동적이었던 아이가 이제 스스로 한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적극 전환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호학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자기돌봄 Self-Car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돌봄 간호의 목표는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돌봄을 극대화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최적의 건강 상태를 잘 유지하여 건강한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이 자기돌봄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떠먹여 주었던 밥과 음식을 스스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먹게 됩니다. 요즘 인보는 샤워를 마치면 옷장을 열고 자신이 입을 옷을 집어 입으려고 합니다. 대소변의 경우에도, 욕실에 들어가 쉬아나 응아를 하고 변기의 물을 직접 내립니다. 용변을 보고 스스로 처리하는 능력이 생긴 겁니다. 또 하나의 변화로 장난감과 인형을 갖고 놀고 상자에 정리도 시켜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도 스스로 익힐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아이가 더 성장하여 청소년 시기를 거쳐 청년, 성인이 되면 스스로 청소와 빨래도 직접 해야지요. 그리고 엄마와 찰스 아빠와 함께 좋아하는 요리도 만들어 먹고 사물을 정리와 보관도 두루두루 시켜보려고 합니다. 이런 가사 노동의 기술이 우리 아이의 자기돌봄 능력을 많이 키워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보야 너의 돌봄을 잘 익혀가렴. 그래서 부모 없이도 네 스스로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 나갔으면 참 좋겠어. 

 

 

엄마, 아빠 사랑 안 해

 

어머나, 세상에나, 아이가 엄마를 밉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엄마와 아빠의 언행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 아빠, 인보가 사랑 없어 (사랑하지 않아)”라고 외쳐 댑니다. 

 

어디 이 뿐인가요? 자신이 화가 나면 “인보 시장 가(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이렇든 자신이 타인을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그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이 녀석 자기가 느끼는 호불호의 감정을 팡팡 쏘아댑니다.

 

 

숨 크게 세 번 쉬기

 

아이가 크면서 분노를 표현합니다. 화가 났다고 잔뜩 인상을 찌푸립니다. 때로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합니다. 발로 뻥뻥 차기도 하고요.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보면 타인에게 화를 폭발하지 않고 스스로 격리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방편으로 “숨 크게 쉬자”를 말해줍니다. 숨을 크게 세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지요. 시간차 이완을 노리는 방편인데 제법 통할 때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아이가 보기에 엄마와 아빠가 언성이 높아지고 화가 났다가 느끼면 “엄마 숨 크게”를 외쳐 댑니다. 그야말로 ‘아이에게 좋은 것은 부모에게도 좋다’인가 봅니다. 저도 가끔 제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에 이 숨쉬기 요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아이도 그리고 가끔 욱하는(?) 남편도 마찬가지로 온 가족에게 약이 되지요.

 

 

밀당과 협상이 필요해

 

 

어제도 사달이 났어요. 식탁에 점심을 차리고 밥을 먹자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끈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울기 시작하더니 우유 먹은 것을 토해서 닦아주었습니다. 토한 것이 옷에 조금 묻었다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여 밥 먹고 목욕한 후에 옷을 갈아입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자신의 뜻대로 안 해준다며 방으로 들어가 대성통곡을 하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이게 무슨 대성통곡할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무관심 모드로 주방 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 녀석 가만히 살펴보니, 엄마가 보이면 우는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큰 소리로 울더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떡합니까?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요. 오라고 하여 아이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사랑해요’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아이가 이 노래를 불러주면 가장 편안해하거든요.  

 

‘아 정말 힘들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난리를 쳐야 할까나?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밀고 당기는 협상의 기술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날이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삼촌

 

SH 삼촌이 우리 집에 한 달 살이를 왔답니다. 어느 날 삼촌과 함께 마트에 갔습니다. 아이가 찰스 아빠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부리다가 삼촌에게 딱 걸려 야단을 호되게 맞았습니다. 이후로 아이는 이 호랑이 삼촌을 가장 무서워하였습니다.

 

호랑이 삼촌의 효과는 놀라웠어요. 아이는 식탁에서 늘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보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호랑이 삼촌이 밥 먹을 때는 안 된다고 하자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밥을 먹는 겁니다.  가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호랑이 삼촌에게 전화해야겠다”라고 협박(?)을 하면 자신의 고집대로 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역시나 집안에 무서운 사람이 있어야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이 녀석 가끔 삼촌이 우리 집에 함께 사는 것은 싫지만 보고 싶다고 하네요. 삼촌도 정이 많이 들었데요.

 

 

 

 

행성인 여러분,

 

기상 뉴스를 보니 아주 오랜만에 한강이 얼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 엄마가 “3월에 장독 깬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바로 꽃샘추위가 매섭다는 말이지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셔요. 

 

다음 달엔 오랜만에 만난 두 아우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