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인보가 행성인 이모, 삼촌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큰~절 올려요.
동지 여러분, 연말연시 잘 보내셨는지요? 그리고 새해 소원도 비셨는지요?
저희는 아이 손을 잡고 성탄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한 해 동안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어요. 큰 사고나 환란을 입지 않게 보호해 주시고, 아이를 우리 부부 슬하에서 계속 키울 수 있게 양육권을 주셨지요. 그리고 부모의 마음을 담아 내년에도 아이가 튼튼하게 자라고, 남편이 새 일자리를 얻고, 저도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산타할아버지
시내에 인보가 좋아하는 쇼핑몰이 생겼어요. 피카추 매장인데 학용품부터 어린이 장난감과 생활용품을 파는 마트랍니다. 피카추에 바비인형과 시계를 사러 간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 손목시계, 소꿉놀이와 나무로 된 유아용 교육 시계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오신다고 말해주었어요.
이 녀석 매일 산타할아버지 타령을 했어요. 자기가 코~하고 잘 때 할아버지가 다녀가신다나요.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습니다. 선물을 잔뜩 받고는 입이 귀에 딱 걸렸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특히 교육용 시계에는 양치하기, 잠자기와 같은 일상생활의 시간이 적힌 카드가 있어요. 이 녀석 갑자기 양치카드를 꺼내 들더니 욕실에 가서 치카푸카를 하는 겁니다. 너무 신기했어요.
이웃사촌들이 아이에게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었답니다. 파자마, 머리띠, 소품 가방. 크리스마스는 아이에게 선물을 받는 기쁜 날입니다. 언젠가 커서 산타할아버지가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겠지만, 그래도 산타 양말에 선물을 넣어 주렵니다.
새해맞이
저희가 결혼한 지 딱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이 참으로 로켓배송처럼 빨리 흘러갑니다. 결혼기념일을 기해서 가까운 섬에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올해는 아이가 4살을 먹습니다. 미운 네 살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엉덩이에 뿔난 짓을 할까요? 그래도 유치원 2년 차이니 작년보다 더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더 고집 부리는 일이 많아요.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저의 첫 작업은 다이어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문구점에서 구매했지요. 그러나 필리핀에서 다이어리 구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은 노트를 사서 손으로 달력을 그립니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 올해의 결심을 써내려 갑니다. 올해는 가족사진을 하나 떡 하니 붙였어요.
저는 작년에 무병장수하여 아이와 오래 살고 싶어 금연을 시작했어요. 몇 번의 고비를 잘 넘겼어요. 그래서 올해 금연 2년 차를 꾸준히 유지하려고 합니다.
새해에 온 가족이 건강하고 근검절약하기를 빌었습니다. 신체 발달과 정서적 유대감을 위해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려 합니다. 그리고 저의 건강을 위해 최소한 주 2회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느 해처럼 책을 읽으렵니다. 특히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어주는) 책놀이와 한글 놀이를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딸내미에게 책을 동무 삶아 가까이하고 좋아하고 좋아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어서요.
아우님들 어서 오시게나
쉰 살을 코앞에 둔 세훈이는 늦깎이로 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는 동생입니다. 가끔 공부에 대해 칭찬해 주면서 학문적 대화도 나눕니다.
모든 공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헛된 공부란 없다고 믿습니다. 또한 석박사 공부를 늦게 시작한 터라, 나이 들어하는 공부는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는 공부가 최고라는 것을 훈이에게 말해주었어요.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영어가 약해서 망설여진다”라고 주저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어 때문에 (졸업 자격을 얻지 못해) 학위를 받을 수 없더라도 석사과정 자체를 목표로 공부하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런 훈이가 연초에 휴가를 내어 필리핀으로 여행을 온다는 소식을 들어 무척이나 설레입니다. 벌써부터 함께 어디를 가야할 지, 호텔과 오토바이 렌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동생은 동인련 시절에 만난 W입니다. 최근에 연락이 닿은 W는 (우리가 전에 살았던 민다나오섬에서) 방문한 적이 있어 필리핀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동생이 글쎄 제가 사는 도시로 온다네요.
동생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서 달력, 다이어리, 모기 물려 가려 운데 바르는 버물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한글 책도 있으면 좀 챙겨 달라고 했지요.
두 동생들이 오면 우리 집에서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필리핀이 날씨가 더우니 닭백숙을 푹 과서 먹이려고요. 그리고 제가 잘하는 걷저리 김치와 잡채를 만들어야죠. 비빔국수도 무쳐 먹고 싶어요.
행성인 새해인사
요즘 모국의 정세를 보면 우리 행성인이 많이 바쁘게 투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오래 동안 한국의 지배계급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수도 없이 경험해 왔어요. 그런데 그간의 나쁜 짓거리와 이번 계엄 반란을 보면서 저는 ‘극우파 지배계급들은 완전 파시스트 집단이구나, 이 미치광이 집단을 처단해야 나라가 편안 해지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는 공정과 상식의 문패를 걸고 뒷구멍에서 불공정과 몰상식한 정권이었습니다.
특히 타기팅한 주요 인사를 납치, 감금, 암살하려 했다는 소식과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여 계엄을 정당화하겠다는 발상이 너무도 끔찍했어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고문할 계획까지…
저는 결론 지었습니다. ‘아 이 집단은 상식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자 집단’ 이라고요.
행성인 동지 여러분
이 천하(天下)에 못된 놈(者)들을 당장 끌어내려주세요. 법의 심판대에 세워 처벌해 주세요. 퀴어의 자긍심과 함께하는 자유, 정의, 평화의 이름으로 응징해 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새해 행성인은,
살림살이가 보다 넉넉해지기를,
새로운 회원이 많이 찾아와 야단법석 이기를,
더불어서 지지자와 후원자들의 응원과 후원이 대박 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회원 개개인이 뜻하시는 바를 모두성취하시길,
사랑하는 애인, 파트너, 배우자와 행복하시길,
레인보우 패밀리가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2025년에도 레인보우 패밀리의 육아 일기는 계속 써내려 갑니다.
응원과 격려해 주시고 구독과 (지인들에게 SNS로) 공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회원 이야기 >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33. 미운 네 살, 머리에서 뿔났네 (0) | 2025.02.21 |
---|---|
육아#31. 재롱잔치와 동성결혼 배우자로 등록하기 (1) | 2024.12.24 |
육아#31. 어디에나 존재한다: 필리핀 퀴어 친구들 2탄 (0) | 2024.11.24 |
육아#30. 어디에나 존재한다: 필리핀 퀴어 친구를 소개합니다 1탄 (0) | 2024.10.22 |
육아#29. 어린이집 입학 (0) | 202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