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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다신 없어 이태원

by 행성인 2025. 11. 25.

수풀 (행성인 HIV/AIDS인권팀)



언제부터인가 이태원에서 끼 떨고 노는게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당황스러웠어요. 약 2년 전, 한 행성인 회원 덕분에 처음 이태원에 데뷔한 뒤로, 너무너무 즐겁다며 매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아침까지 놀고, 오전에 버스에서 자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그리고 이태원 너무 재밌다며 설렘 가득한 회원 에세이도 썼었는데… 그동안 이태원은 내가 더이상 아웃사이더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 안전하고 재밌게 끼 떨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처음 데뷔해서 신나게 뛰어 놀았을 때와 달라진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과 달라진 것은, 나름 이제는 어울리는 이쪽 무리가 생겼다는 것 정도?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 거의 처음으로 이태원에서 동갑인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 앞에서 끼를 떨다가 친해졌고, 어쩌다보니 같이 어울리게되는 동갑 무리가 생겼습니다. 이쪽 친구들이랑 처음으로 여행도 가고, 시끄러운 단톡방도 생기고, 휴가나왔을 때 이태원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이제 나름 “이태원 커뮤니티” 안에 소속된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무리 안에서 어쩌다가 사귀던 애들이 헤어지고, 또 누구랑 누구는 손절을 하는 등… 이쪽에서 무리가 빠갈라지는 흔하디 흔한 이유로 무리가 해체되었습니다. 그 중 이쪽 무리와 손절 당하고 워홀을 떠난 친구가 한국에 왔다고 해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제 생일이어서 이태원 클럽에서 생일파티를 열었습니다. 그 때 이 "이태원 무리" 말고, 본가에서 어플을 돌리다가 우연히 자매를 맺게 된 또 다른 친구 무리들도 생일파티에 초대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서울 깍쟁이들과 지방 게이들이 만나게 된거죠. 그런데 그 이태원 무리 중 한 명이 제 지방 게이 무리들을 보고는 "느안좋(느낌 안좋다)" 이라며 제 지방 게이 친구들의 모든 패션 센스와 몸매를 평가하며 제 지방 게이 친구들을 욕했다고 전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수풀이는 안그런데 걔 친구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으니, 너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 뒤로 그 서울 깍쟁이 친구들과 종종 어울리기는 했지만 무엇인가 불편해졌습니다. 그 친구 말대로 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도, 걔네가 저를 어떤식으로든 평가하고 있겠구나 싶어서요.

 

제가 옷을 얌전하게(?) 입은 날에는 그 서울 깍쟁이 중 한 명이 “오늘 왜 이렇게 일틱하게 입었어?" 라는 말을 자주했어요. 당시에는 "뭐야? 나 일틱한가? 오늘 좀 팔리려나?" 하면서 좋아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옷이 구리다는 말을 돌려한건가?”와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당시에 저를 좋아하던 한 형 — 역시 이태원에서 만나서 친해진 — 이 있었는데, 그 형의 친구가 그 형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그 끼순이? 왜 너는 눈이 점점 낮아지냐" 라고 이야기했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상처였어요. 솔직히 뒤에서 누가 욕한게 잘못이고 그게 너무나 유치한 짓이란걸 알고 있음에도 상처가 컸습니다. 이태원은 드디어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믿었던 공간이었는데... 드디어 헤테로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까다로운 게이들의 평가를 신경써야 하다니. 이게 마침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맞물리면서 외모정병이 심해졌습니다. “내가 더 잘생겼다면, 더 키가 크고 몸이 좋았으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까?”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동안은 이태원을 안갔습니다. 그냥 게이들이 지긋지긋했어요. 그런데 또 (당연히) 제가 헤테로 사회에 낄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래도 헤테로들보다는 서울 깍쟁이 게이들이 낫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태원 게이 커뮤니티 안의 주류"라는 것이 허상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헤테로 정상 사회에서 계속 배제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주류에 속할 수도 있을것만 같은 느낌은 저에게 너무 유혹적입니다. 그 서울 깍쟁이 게이들이 자꾸 사람을 평가질하고, 유머랍시고 이런저런 혐오 표현을 일삼아도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그 순간의 허상을 즐기려고 합니다. 내가 그래도 이 이태원에서는 주류에 속해있다는 감각, 내가 여기서는 배제되지 않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 물론 그런 감각은 해가 뜨면 사라지고, 그 안에서 여러 매력자본에 따른 위계질서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속한다는 감각은 참 안정적이고 포근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주말이 되면 열심히 여러 이태원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엉덩이를 흔듭니다. 이렇게 잘 놀면서 흔들어제끼면 이런 복잡한 게이 생태계를 잊을 수 있을것도 같아서요. 그렇게 제 방 구석에는 숙취에 찌들어 미쳐 치우지 못한 클럽 밴드들만 늘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