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을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는 시기가 찾아왔다. 기력은 떨어지고, 바깥은 덥고 습하다. 여름은 때때로 우리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하지만 이런 계절일수록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 일상의 힘듦과 끝없는 투쟁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버티는 여름이 아니라 살아내는 여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디톡스: 퀴어를 위한 끄기의 기술
디엠이나 타임라인,밈,집회,기사,연대 요청 등, 우리는 늘 온라인에 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말과 감정들이 우리를 향해 밀려온다. 성소수자로서의 삶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늘 ‘접속’된 상태로 존재하기를 요구받는다. 그러다 보면 피곤하고 예민해진다.삶의 입체감이 납작해지게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작정 하는 로그아웃이 아니라 스스로 접속을 ’선택‘하는 힘이다. 오늘 하루 알림을 꺼두고 음악 없이 산책을 해보자.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맡고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자. 손으로 글씨를 쓰고, 종이책을 넘기고, 화면 밖의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자.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과의 연결 거부가 아닌, 나를 회복한 뒤 다시 연결되기 위한 준비다.
여름과 휴식: 퀴어하게 충전하는 법
성소수자의 삶은 늘 긴장을 동반한다. 존재를 설명해야 하고 관계를 합법화해야 하며 감정을 조심스레 표현해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쉴 틈이 없다. 피로는 몸이 아니라 정체성에 쌓인다. 하지만 여름은 가끔 우리에게 말해준다. ’멈춰도 괜찮아.너는 이미 충분해.’

이 덥지만 다정한 계절을 틈타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자. 집에 있는 재료로 디퓨저를 만들거나 뜨개질로퀴어스러운 상징을 담은 파우치를 만들어도 좋다. 그런 느리고 사적인 시간이 나를 ‘나답게’ 회복시켜준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자신이 없다면 책 한 권을 들고 도서관에 가거나, 햇빛 좋은 날 커튼을 걷어 햇살을 만끽하는 것도 좋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회복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퀴어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에게 ‘돌봄’은 감정노동이 아니라 저항이고,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름을 퀴어하게 살아낸다는 것

여름을 퀴어하게 살아낸다는 건 나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내겠다는 선언이다. 조금 덜 연결되고, 조금 더 나를 돌보는 일. 그건 혼자만의 일 같지만, 사실은 다른 퀴어들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세상은 여전히 ‘정상’의 기준으로 살아가길 권유하지만, 우리는 안다. 퀴어한 삶은 느려도 되고, 번아웃되어도 되고, 멈춰 있어도 괜찮다는 걸. 이 여름을 살아내는 수많은 퀴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여름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답게, 퀴어하게 살아내느냐일 것이다. 작은 실천들이 결국 나의 존재를 지키는 언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의 여름이 조금 더 슬기롭고 퀴어하게 흐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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