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별안간 팀장
꿈꾸던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 몹시 기뻤습니다. 그러나 일터는 험난했습니다. 매일 깊은 호수를 끝없이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느 동료는 출근길에 자동차에 치이는게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출근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다른 동료는 갑자기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관리자가 퇴근을 승인해주지 않았습니다. 유별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다른 동료는 가족의 장례식장에서 관리자의 연락을 받고 바로 부서에 복귀했었으니깐요. 매일 퇴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퇴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성입니다. 제가 퇴사하면 바로 입사할 노동자가 이미 정해져있었고 그는 남성이었습니다. 적어도, ‘이래서 여성을 뽑으면 안된다.’는 선례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쁜’ 퇴사를 준비하던 시기에 우연히 행성인을 만났습니다.
이 시기 제 화두는 ‘노동’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단어에 이끌려 성소수자 노동권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동권팀 동료들에 대해 가진 감정은 이상함이었습니다. 일터에서 겪은 부당한 순간들을 이야기하면 함께 화내주었고, 활동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여러 기회를 내주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엉망진창이었는데 그들은 다정했습니다. 저에게 노동권팀은 ‘마음 붙일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데 노동권팀 모임에 참여하면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기 일쑤라 너무 힘들어서 드문드문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 활동하던 많은 동료들이 없어졌습니다. 2018년이었습니다. 행성인은 단체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위해 비상 체제를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성소수자 노동권팀의 기류가 묘하게 흔들렸습니다.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팀이기 때문에 중심을 잡아줄 팀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팀장을 해도 금방 떠나고, 다른 회원들은 팀장을 담당하기엔 부담스럽다며 난처해했습니다. 마음 깊이 애정하던 공동체였기에 이런 상황들이 속상했습니다. 끝내 노동권팀에는 세 사람만 남아버렸습니다. 그마저 한명은 좋은 기회가 찾아와 떠나야 했고, 다른 한명은 팀장은 하기 어렵다며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제가 애정하던 공간에서, 비록 빈 섬을 지키는 마음이었지만 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6년을 떠올리며
6년 동안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서로를 직접 만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글을 모았고, 세종호텔, 아시아나케이오, SPC를 비롯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아가 마음을 보태고 발언했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인터뷰했고, 노동절마다 그 시대의 의미를 꾹꾹 눌러 담은 성명서를 작성했습니다. 노동절 대회에서는 성소수자 노동자 행진단을 조직해 무지개의 기운을 담아 함께 걸었습니다. 여러 모임과 자리에서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터에 평등하게 존재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얼굴을 드러내기 어려운 팀원들이 많아 사진으로 남기기보다는 각자의 눈과 마음에 담아두어야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시간들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유독 기억에 남는 활동은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입니다. 이 인터뷰는 성소수자 노동자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옆자리 동료로 상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활동입니다. 2011년에 1차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차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저는 2021년에 진행된 3차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와 2024년에 진행된 4차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를 총괄했습니다. 3차 인터뷰는 노동권팀에서 활동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뜻깊었고, 4차 인터뷰는 이십대 초반에는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등에서 활동하다가 노동을 기점으로 ‘벽장’ 생활을 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일터의 동료가 우연히 글을 보고 자신을 알아챌지도 모른다는 불안부터,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터의 좌충우돌을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주었던 마음들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4차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에 참여했던 기간제 교사 A는 노동권팀에서 활동하는 OO 가 자신에게 인터뷰를 제안할 정도면 지금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같아 고양이 손이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A는 인터뷰 내내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노동권팀에 A를 연결한 팀원의 마음부터, 팀원을 위해 기꺼이 용기낸 A의 마음까지.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는 이런 마음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런 깊은 신뢰를 보내주는지 문득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잘하고 싶었습니다. 가끔은 모든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주변에 있는 좋은 동료들 덕분에 방향과 속도를 잘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만났던 수많은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 남깁니다. 처음 노동권팀은 빈 섬같아서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긴 호흡으로 지켜봐 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행성인 사무국 활동가분들에게 진한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동료들 덕분에 저 역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제 몸에 녹아있는 노동에 대한 생각과 언어의 많은 부분은 노동권팀에 빚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무척 아꼈던 공간이기에 진정으로 노동권팀을 아껴줄 수 있는 동료가 나타나면 기쁜 마음으로 팀장을 넘기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드디어, 그런 동료들이 세 명이나 나타나 든든한 마음으로 이제 팀장을 마무리합니다.

요즘 페미니즘을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스젠더 여성입니다. 그러나 일터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입을 열기 어렵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이라는 구분 자체가 조심스러워 말을 삼키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올해는 이 고민을 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행성인이라는 반짝임을 마음에 품고 제 자리에서 열심히 고민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도 작은 반짝임이 머물기를 바랍니다. 모두의 일상에 반짝임이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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