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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문수의 지구여행기

[문수의 지구여행기] 게이와 무당 그리고

by 행성인 2026. 3. 18.

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인권연합 KNP+)

 

연재의 말

게이들은 외계에서 온 것 같다.

그래서 지구에 여행 온 외계인의 삶을 기록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내림굿

 

사주팔자 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건 아주 어릴 때부터다. 사람은 왜 다른 운명을 가지고 있는가. 왜 누구는 재벌집 아이로, 누구는 다리 밑 노숙하는 사람 아이로 태어나는가? 본격적으로 운명 팔자 윤회등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기 시작한건 1996년도 부터다.

 

하늘이 주신 병이 찾아온 96년도부터 전국각지의 유명한 무속인 도사를 찾아다녔다. 자칭, 타칭 초능력자 등을 찾아 운명과 궁금증을 해소하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와중에 대구에 있는 초능력 무속인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는 故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 정권의 고문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닐 때 자신의 기도로 지팡이 없이 다닐수 있게 만들었다고 소문나 있었다. 수련원인지 기도원인지 그의 집에 도착하여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자신과 손을 맞잡고 기도하면 손바닥에 금가루 같이 반짝이는 물질이 보일거라면서, 믿음을 가져야 효과를 볼 수 있지 불신하면 효과를 불수없을 거라는 말을 붙였다. 그를 믿지 못했는지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별다른 성과도 없이 나왔다.

 

이후에 다른 박수무당인 그를 만난 것은 98년초였다. 그와 나는 지역의 유명 게이 크루징 장소인 공원에서 만났다. 당시 30대였던 나는 또래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정이 있는 50대 박수무당이었다. 그의 집에 있는 2층 법당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대로 내림굿을 받았다. 

 

그는 게이박수무당으로 지역에서 유명했다. 내림굿을 할 때 지역에 있는 이반 10여 명이 구경을 하러 왔다. 굿이 끝나고 부모님 고향 뒷산 계곡암자에 기도하러 갈 때도 5, 6 명이 따라왔다. 산간벽지 깊은 산골이었는데 같이 따라온 게이들은 자신들도 신기가 있는지 시험해보려고 북소리에 맞춰 대나무를 잡기도 했다.

 

첫 번째 내림굿을 했지만 말문이 트이지 않아 두 번째 굿을 했다. 그 지역 아는 게이 술집 사장 형이 소개해 준 두 번째 박수였다. (그 술집 사장 형도 얼마 후 내림굿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한겨울 지리산에 들어가서 계곡 얼음을 깨고 들어가고, 몸단장을 하고 내림굿을 했다.

 

내림굿을 하기까지는 사연이 있다.

 

97년까지 전국의 수없이 많은 무당 도사들을 만났지만 신통치 않던 차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잠시 지내게 되었다. 달걀귀신을 본 5촌 당숙부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지난 연재에 찾을 수 있다) 5촌 당숙이 돌아가시고 문중 터에 산소를 모셨는데 그곳이 별로 좋지 않은 터였다고 한다. 당숙이 돌아가신 지 2년 만에 6촌 동생인 그집 둘째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즉사 하고만다. 그집 첫째 딸이 갑자기 미쳐서 강에서 누가 부른다면서 뛰어 들어가는 걸 건져냈지만, 반복적으로 그러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면회를 가면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하면서 잘 받들라고 큰소리 치곤 하였다.

 

어머니에게 당숙네 이야기를 듣고 깜짝놀라고 말았다. 아버지도 그곳 터에 묘지를 모셨기 때문이다. 우리집 사정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82년도에 돌아가시고 2년 후 셋째 형이 배에서 오른쪽 팔이 잘리는 큰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둘째 형도 외국 근로지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반신불수가 되어 돌아왔고, 다음 해에는 집에서 하나뿐인 딸인 누나가 버스에 머리를 치여 6개월 간 입원을 요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집이 왜이렇게 불운의 연속인지 아무도 몰랐다.

 

 

파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지관(풍수지리 묘자리 보는사람)을 찾았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나이 들어서 여러 가지 병으로 몸져 누울 때 세종이 자신의 아들과 가신을 불러 모았다. 자신이 죽으면 자기 아버지 이방원의 옆에 산소를 쓰고 싶다고 묘 자리를 보고 오라고 했다.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지관과 함께 태종이 묻힌 산으로 갔다. 수양대군이 어떠냐 묻자 지관 말하길 이 터는 장손이 절명하고 절단 되는 터라서 산소자리로는 좋지 않다. 그 소식을 수양이 세종에게 말했지만 세종은 나이들어 정신이 없는지 굳이 그 자리에 아버지와 함께 묻히겠다 고집했다. 세종이 죽고 묘지를 그곳에 안장한 이후 그의 아들 문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죽고, 문종의 장남 단종도 즉위한 지 2년 만에 왕위에서 쫓겨나고 3년만에 죽으며,

세조의 장남도 17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장남이 왕이되는 기록도 전무하게 된다. 묫자리 풍수지리가 마냥 미신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옆동네 소문난 지관을 찾아가 아버지의 파묘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97년 가을, 지관 2명과 나와 어머니는 문중 선산을 찾았다. 묘지를 파해치니 흙에서 시커먼 물이 나오고 있었다. 묫자리 유골도 안 좋은 흙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유골을 전부 수습하면서 지관이 이야기 한다. '손씨 어르신, 이사 갑시다. 인자 나오시소.'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유골을 수습하고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여 가루로 만들었다.

 

두 번의 내림굿 이후 신당을 차렸다. 비슷한 시기 신아버지의 굿을 했던 애동제자들과 전국의 명산으로 산기도를 다니곤 했다. 차로 5명의 무속인들과 주왕산 달기 폭포로 기도를 갈 때였다. 기도는 보통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하는데, 그날밤 주왕산 가는 산길에 밤안개가 엄청나게 많이 몰려와서 한치앞을 볼수가 없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는데 계속 가도 아까 지나간 길이고 안개가 짙어 그 산길을 벗어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밤 중 안개 낀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텅 빈 도로에 왠 차량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니 아무도 없고 텅 비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함을 느끼고 얼른 지나오니 그제야 안개도 걷히고 도로가 보여서 기도터에 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달기폭포에 기도하던 중 신기한 경험을 하게되는데 하늘에서 선녀복을 입은 여자가 내려와 큰 절을 하는데 처음 보는 복장이었다. 하늘하늘한 금빛 가루가 날리는 눈 부신 옷을 입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같이 온 무속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너무 좋은 기운 받은 거라고 기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또 한 번은 부산 해운대 장산에 마고당이라는 기도터가 있는데 그 곳은 지역 무속인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우리도 그곳으로 밤기도를 자주 가곤 했다. 하루는 무속인 세 명과 함게 그곳으로 기도를 가기위해 밤 11시 쯤 그산으로 들어섰는데 무리중 한명이 오늘은 산에오르기 힘들어서 중턱에 있는 장산 폭포 위에 있는 계곡에서 기도하자고 하여 모두 그곳으로 갔다. 계곡에서 한참 기도에 집중하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웬 여자와 할아버지 한 분이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밖에 없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는사이 여자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얼굴에 아무것도 없는 달걀 귀신이었다.

 

 

산기도 갈 때마다 그곳의 산신이 보였는데, 산마다 산신들의 형상이 전부 다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지리산 산신은 여산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