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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관대한 가부장이 동성애자와 조우했을 때

by 행성인 2010. 5. 27.

SBS '인생은 아름다워' 게이커플로 등장하는 태섭과 경수


 

최근 한국의 TV드라마들에서는 게이이거나 게이로 가정된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쓴 SBS의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SBS의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바로 그렇다. 이제 드라마를 통해 ‘게이’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왕의 남자>나 <쌍화점>, <후회하지 않아>, <앤티크> 같은 퀴어 영화들이 몰고 온 신드롬이나 파급력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TV라는 매체가 지닌 특수성, 즉 접근의 편의성과 다양한 세대의 온 가족을 브라운관 앞에 모아놓는 동시관람 행위 유발의 용이성은 그 게이들이 일상 속 깊숙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김수현처럼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더불어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과도하게 여성스럽거나 성적으로 과잉되어 있지 않으며, 게이 역에 커밍아웃한 ‘실제’ 게이 배우 홍석천을 캐스팅하여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식의 현실 참조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 게이의 삶을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김수현 드라마가 늘 그래왔듯이,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가부장 중심의 대가족을 복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30대 중반의 첫째 아들 ‘태섭’은 직업이 의사인 동성애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에게 있어 그는 늘 여자한테 차이기만 하는 어수룩한 남자이자 ‘헛똑똑’일 뿐이다. 할머니를 위시해 온 가족이 모여 그의 연애문제에 관여하며 문제점을 찾고 새로운 여자를 소개시켜 주고자 애쓰지만, 그가 동성애자일거라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건 늘 영화 속이나 먼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며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니까.


태섭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채영’이 태섭 어머니의 문자를 보고 용기를 얻어 그의 집을 방문한다. 기대치 않게도 자신에게 다정한 가족의 모습에 감동받은 채영은 더욱 태섭에게 끌리면서 그와의 결혼을 통해 그 대가족, 즉 전통적인 가부장제로의 편입을 꿈꾼다. 그 가부장적인 가족의 이미지는 소극적인 태섭이 지닌 부족한 남성적 매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태섭의 연인 ‘경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들켜 아내와 이혼한 경험이 있다. 경수의 어머니는 그에게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재혼을 하라고 읍소하며 종용한다. 경수의 가족에게 있어 결혼이란 가부장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태섭과 경수가 포기하는 것은 이성과의 결혼뿐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속에는 태섭의 아버지인 병태를 제외하고는 본받을 만한 가장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바람기가 많아 5번 결혼하여 본처인 할머니를 떠난 할아버지는 말 할 것도 없고,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씨는 의처증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한다. 심지어 태섭의 두 삼촌인 ‘병준’과 ‘병걸’은 마흔 살을 훌쩍 넘겼으나 가장이 되려는 욕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드라마는 아무리 가장이 초라하고 무능력하며 때로는 폭력적이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고, 나아가 가부장적인 가족의 재생산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 부족한 틈은 가장을 중심으로 뭉친 가족 구성원들이 충분이 메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유용성이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결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김수현이 갈망하는 관대한 가부장제의 이상인 것이다. 게다가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남은 할머니마저 장남인 태섭의 결혼에 무관심하다며 가부장제 재생산에 일조해야하는 여성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핀잔을 준다.


흥미로운 점은, 결혼이 부재한 태섭의 대척점에 앞서 잠시 언급한, 결혼이 과잉되어 있는 태섭의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즉 전근대적인 욕망으로서의 일부다처제에 충실했던 할아버지는 이제 다시 본처에게로 돌아가고자 한다. 병태가 가부장으로 있는 대가족으로 회귀하고자 하고 그 관대한 가부장은 어린 시절 가족을 버렸던 아버지를 품 안으로 보듬는다. 병태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 태섭과 아버지는 모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했고 또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도 조금 다른 건, 적어도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 즉 자식을 낳았다는 것 때문에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부장제가 지닌 재생산에 대한 욕망은 첫째 딸 ‘지혜’의 의도하지 않은 둘째의 임신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가시화된다. 낙태를 결심한 지혜를 설득하기 위해 가족들은 부단한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은 결실을 얻는다. 오직 지혜의 ‘철없는’ 딸만이 동생이 생기는 것을 반기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그리하여 가부장제의 재생산이 불가능한 게이커플에게도 그 관대함의 손길이 닿을 수 있을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정은 관대한 가부장제가 자기모순에 빠져버리는 선택은 아닐까? 아니, 동성애자를 품에 안지 못하는 가부장제를 과연 관대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김수현은 가부장제와 동성애자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최근 김수현 드라마는 급진적이고 자극적인 전개를 선택했지만 결과는 다소 타협적이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불륜은 결국 실패하고 가족은 해체되었으며 <엄마는 뿔났다>에서 엄마는 독립을 원해 혼자 살게 됐으나 가족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본가로 호출되었고 끝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듯 이성애규범적이고 혈연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인 가족의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은 그 견고한 가족구성의 논리에 위배되는 사적인 욕망에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걸 수는 없다.


실제로 서양에서의 커밍아웃이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반면에, 한국과 같은 유교 국가에서의 커밍아웃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다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의무가 바로 가족 구성원의 재생산이다. 따라서 동성애자인 태섭이 괴로운 이유는 그의 말처럼, 자신이 남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가족)을 속이고 있다는 것, 즉 마치 재생산이 가능한 이성애자 아들인 척 행동하는 것이다. 그가 솔직해지는 순간, 불륜과 폭력조차 한두 번쯤 용서해줄 정도로 관대한 가부장에게마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던 태섭은 결국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고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반복한다. 그 속죄의 행위는 장남으로서의 의무 이행이 불가능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책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태섭은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가족)을 잠시 떠난다. 그가 (불륜과 폭력을 모르는)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라도 재생산의 임무가 잠재적으로라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죽게 할 수도 있는 권력이 가부장에게는 있는 것이다. 만약 가부장이 그를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끌어안는다면, 우리가 감격해야하는 것은 가부장의 한없이 넓은 마음이며 드라마를 통해 부각되고 고양되는 것은 한없이 관대한 가부장의 힘이다.   


한편, 부모는 남의 일로만 알던 일이 자신에게 닥치자 어찌할 줄 몰라 눈물만 쏟아낸다. 그리고는 사회적 편견이 만만치 않은 이곳에서 우리 가족이라도 태섭을 품에 안아야 한다고 이내 다짐한다. 그들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태섭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지적 숙고에서 오는 이성적 수용이 아니라 ‘결함’ 있는 ‘우리 아들’에 대한 정서적이고 무조건적인 포용이다. 김수현은 이미 ‘머리’로만 이해하는 척 하는 지식인 계층, 혹은 상류층의 위선을 경수 부모를 통해서 줄곧 고발해왔다. 대학교수로서 진보적 지식인인 경수의 아버지는 차이를 인정해야 된다는 평소의 지론을 포기한 채 동성애자 아들을 경멸한다. 아마도 경수 아버지는 태섭 아버지에 비해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훨씬 많이 습득하고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남의 일로만 알고 있던’ 동성애자 자식의 커밍아웃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해 온 것이다.


따라서 김수현이 요구하는 가부장의 자세란, 가부장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동성애조차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무한한 ‘희생정신’이다. 김수현에게 있어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가부장제와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해 보이는 해법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적인 정치의식에 기반한 학습이나 캠페인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보다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점차 확장해 나가는 것이 동성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적어도 김수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부장제라면 그것은 충분이 가능할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20회 "태섭이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후 오열하는 장면"




김경태 _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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