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T. 웨이스[각주:1]

2009년 12월 11일

 

최근, 게이 운동 역사의 한 아이콘인 로널드 골드[각주:2]가 트랜스혐오적 독설을 빌레리코 프로젝트에 게시했다. 나는 골드로부터 우리 역사에 관한 무언가를 배우길 기대했고, 분명히 뭔가 배웠다. 비록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글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우리 독자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 글에는 독자들이 느낀 고통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글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다. 결국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에 대응하기로 했다.

 

그가 대부분의 다른 사람보다 노골적이긴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결코 골드 혼자만이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이 문제는 예전과 같이 지금도 유효하다. 17년 전 내 여정을 시작하고 게이 "친구"들로 부터 많은 부정적인 반응을 받았을 때와 같이 유효하고, 12년 전 한 게이 친구가 우리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나를 쫓아냈을 때와 같이 유효하다. 그것은 또한 2년 전 성별 정체성이 고용차별금지법안(ENDA)[각주:3]에서 아예 제거되었을 때와 같이 유효하다. 실제로 고용차별금지법 통과가 코앞에 두고 결단을 내릴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이 문제는 각별히 유효하다. 입법자들이 또다시 트랜스혐오적인 동성애자 ‘대변자들’과 그 지지자들의 지원과 사주를 받아 한순간에 손을 놔버릴 위험이 있다.

 

사실, 나는 골드 덕에 이 주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 기쁘다. 이 문제를 더 큰 LGBT 커뮤니티에서 제기하는 데는 지금이 적기다. 트랜스혐오에 반대하는 동성애자들은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지금이 그 때다.

 

Q: 트랜스혐오의 근원은 무엇인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는가?

 

A: 트랜스혐오는 단순히 편견이 아니라 낡고 복잡한 권력 관계에서 비롯하며, 우리는 그 권력관계를 바꿔야만 한다. 이 일은 금방 쉽게 될 일이 아니고 단체명에 글자 하나를 추가해서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트랜스혐오는 "급진적radical" 비평인 양 위장한 이성애주의와 이성애규범에 근거한다. 골드와 그의 동류들은 늑대의 탈을 쓴 양이다. 게이 커뮤니티는 이것을 제기하고 다뤄야 한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혼자 싸우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다.

 

나는 골드와 비슷한 의견을 많이 보았고, 흔히 그것은 내가 만난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외면하는 시선과 냉담한 태도 안에 있었다. 바로 일주일 전에 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학자들의 회의에 초대받았다. 내가 그들에게 합법적인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질 헌법상의 권리에 관한 나의 연구에 대해 설명했을 때, 그들 중 일부는 내 의견을 비웃었다. 누군가 내가 6피트2인치라고 말하면 어쩔 거냐고 질문했다. 어떤 사람은 인권의 발상을 피한 채, 단지 정책 입안자들이 옳은 일을 하기를 바라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이런 의견들이 어떤 면에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했다. 세션이 끝났을 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 날 내내 그 일에 대해 생각했고, 다음날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 중 한명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우리가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빙하만큼이나 따듯한 환영인사였다.

 

나는 LGBT 커뮤니티가 긴 길을 걸어왔고 또 많은 진보를 이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피부색이나 다양한 성적 지향 및 성별보다는 인성만으로 판단하는 약속된 땅에 여전히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성애주의적 권력관계의 작용

2004년에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연구를 루틀리지 출판사의 사회과학 잡지인 <저널 오브 바이섹슈얼리티 Journal of Bisexuality>에 실었다. 그 연구에서 나는 미국의 게이와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의 트랜스혐오가 단순히 혐오감이라는 심리적 상태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보다, 트랜스혐오는 미국의 역사적 조건에 의해 특정하게 생겨난 권력 관계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다. 이런 종류의 게이레즈비언 대 트랜스젠더 구도에 따른 트랜스혐오적인 반응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미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정체성 정치가 LGBT 커뮤니티 내에 편견과 차별을 만들어 낸 만큼, 그것의 근원은 "이성애주의" 혹은 "내면화된 이성애주의"에서 찾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정체성 정치는 젠더의 확고함을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척하지만, 사실 그 역사는 정체성 정치가 좀도 "급진적인" 섹슈얼리티의 형태들을 부인하려는 타협주의적 시도임을 보여준다.

 

다수의 의견이기도 한 골드의 의견은 이성애규범, 그리고 그것의 게이 쌍둥이인 동성애규범(homonormativity)에 기초한 권력 투쟁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수잔 스트라이커는 2008년에 <래디컬 히스토리 리뷰The Radical History Review>에 트랜스젠더 역사에 관해 뛰어난 글을 기고했는데, 거기서 그녀는 동성애규범이라는 용어가 처음에 "트랜스젠더 정치 문화 운동에서 경험한 주변화와 쫓겨남이라는 두 가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는 데 주목한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게이 커뮤니티와 분리된 동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은 1870년대와 그 이전에 기원을 둔, 20세기 초의 아이들에게 주입된 믿음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 연구의 첫 부분을 요약하겠다. 파트 2에 더 많은 내용이 포함될 것이다. 주석과 인용을 포함한 전문을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링크를 남긴다.

 

LGBT 관계의 역사

기본적인 성적 욕구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섹슈얼리티의 형태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셸 푸코는 "남색은 일시적인 일탈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동성애자는 이제 하나의 종이 되었다"라는 개념을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로마 시대를 포함한 고전 텍스트들은 동성에 대한 욕망을 언급하지만 오로지 파트너의 성별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지는 않았다. 동성 간의 성행위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단일한 정체성이란 없었다. 중요하게도, 현대의 남성 동성애자와 가부장적 문화의 많은 부분이 여성성을 싫어한다. 오늘날 우리가 “트랜스젠더”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고전은 여성화된 남성을 풍자했고, 문학과 법 텍스트 모두에서 특정 나이을 지난 남성이 성교에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임을 암시했다.

 

4세기에 이르면, 이전에 매우 대중적이었던 남성의 동성 간 성행위는 기독교에 의해 지하세계로 추방됐다. [그러나] 이전의 개념들에 따라 어떤 남성이든 일탈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남성에게만 이끌리는 성향을 가진 구별되는 남성 하위집단만이 동성 간 행위에 탐닉한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동성 간 행위에만 배타적으로 연루되는 특정 타입의 남성들이 있다는 [과거와는] 다른 생각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장 심한 비난을 받은 이들은 “수동적인” 동성애자들이었고, 남성성을 선호하는 윤리는 제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다른 성으로 보이며 살아가는 일(passing)은 아주 흔했다. 그 또한 금지된 일이었지만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 자체가 성범죄로 간주되지도 않았다. 18세기까지는 대중이 크로스드레싱과 남색에 어떤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18세기에 이르면 대중들은 동성 간 [성]행위가 여성성이나 크로스드레싱과 관련 있고 동성 간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그것만 하며, 동성 간 행위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국한되고 그런 성향이 선천적인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런 대중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동성 간 행위를 하는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화된 행동이나 역할극을 거부했다.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 개념은 18세기 영국에서 (남성의) 여성스러운 행동에 대한 걱정이 커진 것과 동시에 일어났다. 남자아이들은 기숙학교에 보내지기 전까지 보통 여자아이의 옷을 입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남성들의 복장에는 주름장식이 많았다. 그러나 1770년대부터 복장이 분명하게 구별됐다. 멋을 부리는 남성들은 비난받았다. 19세기에 이르면 남성이 더는 감히 공공장소에서 포옹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19세기 과학 개혁 운동가들인 울리히와 히르쉬펠트는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남성을 남성의 몸에 여성의 영혼을 가진 “정신의 남녀추니”라고 이론화함으로써 동성애와 젠더의 관련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1910년 마그너스 히르쉬펠트는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라는 용어를 만들어 이성 복장을 입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을 지칭하고, 동성애라는 현상과 그것을 구별하고 분리했다.

 

이렇게 19세기의 동성애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부터 성적 지향(성적 대상 선택)과 성별 정체성(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성적 자기 정체화)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발전했다. 이런 과학적 합리주의와 동성애의 의학화(medicalization)는 동성애를 단일하고 획일적인 현상으로 확정했다.

 

"현대" 시대

섹스/젠더의 이분법은 20세기 중반에 심화됐다. 이제 동성애는 크로스드레싱과 여성적 행동과는 구별됐고, 남성 동성애와 여성 동성애 형태로 나눠져 각각이 서로 다른 양식화된 행동 양식을 취했다. 이것은 젠더 분리를 만들어냈고, 그에 상응해 양성(bi-gender) 혼합이나 성별(gender) 모호함과의 긴장을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정치 행동을 위한 은밀한 운동들이 있었지만, 운동은 대체로 젠더 경계를 따라 나뉘어졌다. 게이 남성 단체인 매타친협회가 1950년에 설립됐다. 미국 최초의 공개적인 레즈비언 단체인 빌리티스의 딸들은 1955년에 생겼다. 이들 타협주의 단체들은 동성애자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어울리도록 (레즈비언들은 치마를 입었고 남성들은 입지 않았다) 독려했고, 동성애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같은 저명한 “전문가”를 모집했다.

 

1960년대 미국 저항문화의 맥락에서, "성 혁명"은 이런 분리된 인구집단이 공개적으로 존재하고 국가 정치의 장에 입장하는 것을 허락했다. 사회적 인정과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은 이런 집단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었다.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은 단 하나(지만 지극히 중요한)의 예외, 파트너의 성별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당신들과 똑같다"고 말함으로써 인정받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이것은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타협주의적 경향과 성별 모호함 사이의 긴장에 불을 붙였다. 성별 모호함은 (수동성에 대한 그리스 시대의 멸시를 반복하듯) 부적절함의 낙인으로 향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일부 동성애자들이 "부적절한" 성별화된(gendered) 행동의 낙인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 동성애의 낙인을 경감시키려고 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이 네 영역의 긴장을 만들어냈다: 단성애 대 양성애, 성별 타협주의 대 성별 모호성, 동성애자 정체성 드러내기 대 이성애자로 보이며 살기(passing), 젠더 분리 대 양성 혼합.

 

지나치게 퀴어하고, 충분히 퀴어하지 않은

트랜스섹슈얼은 [이성애자로] 보이지 못하는 것과 너무나 [이성애자로] 보이는 것 둘 다를 통해 미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대한 암묵적인 사회적 이해를 위반한다. 트랜스섹슈얼, 그리고 지금의 트랜스젠더들은 일부가 성별화된 행동, 즉 MTF들의 여성스러움과 FTM들의 과잉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의 구멍을 통해, 그리고 그들의 성적 실천을 이성애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동성애 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이성애자들의 실천과 특권의 구멍을 통해 일반(straight)으로 “보이며 산다”는 이유로 비난 받았다. 동시에 그들은 성별 모호성, 가시적인 양성구유(androgyny), 성별퀴어(genderqueerness)를 통해 성적 행동에 대한 문화적 규범을 위반하고, 따라서 "당신들과 똑같다"고 말하는 타협주의적 발상을 훼손한다고 멸시를 받았다. 이로 인한 분열은 사회정치적 힘이 아니라 공포, 즉 “트랜스혐오”에 기인한다고 잘못 여겨져 왔다.

 

골드는 아마도 자신이 타협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별 규범을 뒤흔들어놓는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를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문맥을 무시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그런 주장이 급진적이고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더는 급진적이지 않다. 이제 그것은 퇴행적인 주장이다. 남자로 태어난 사람은 계속 남성성은 아니더라도 남자인 것으로 정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비판은 급진적 노선에서 한참 뒤쳐져 보수적 전통주의자들의 의견과 구별할 수 없게 됐다. 한때 청동기가 가장 최신 기술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골드의 주장이 헛소리만은 아닌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혐오스러운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활개 치며 흔히 트랜스 커뮤니티를 적대하는 데 이용된다. 우리는 2010년 고용차별금지법안 통과를 위한 전쟁에서 그것의 추한 머리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길 기도한다.

 

파트 2에서 나는 게이 커뮤니티 내 트랜스혐오의 더 최근 역사와, 어떻게 그것이 이성애주의와 연관되어 있고 게이 커뮤니티에서 어떤 식으로 말해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원문 : http://www.bilerico.com/2010/07/transphobia_in_the_gay_community.php

 

번역 _ 서리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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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저지 라마포 대학 법사회학과 부교수. 젠더 정체성 관련 연구자이자 ‘트랜스젠더 일터 다양성’에 관련한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본문으로]
  2. 70년대 초 ‘동성애자활동가연합(the Gay Activists Alliance)’의 언론담당자였고 ‘전국게이레즈비언태스크포스(the National Gay & Lesbian Task Force) 창립자 중 한사람이다. 미국정신의학회 정실질환 항목에서 동성애를 삭제하는 활동에 앞장선 동성애자운동가. 2009년 12월 10일 빌레리코 프로젝트에 '"NO" to the notion of transgender'라는 글을 게시해 논란을 빚었다. 현재 그의 글은 삭제돼 볼 수 없으며 이 사건으로 그의 기고자 자격도 박탈됐다. [본문으로]
  3.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안. 1994년부터 입법을 추진했다. 특히 이 법률은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하느냐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왔다. 대형 동성애자 단체들은 성별 정체성을 포함시키는 것에 미온적이었고 대표적인 동성애자권리 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이 2007년에 약속을 어기고 성별 정체성이 제외된 법안을 지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009년에는 성별정체성이 포함된 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가 연기된 채 회기가 끝났다. [본문으로]
  1. 조곤
    2011.08.14 08:37 [Edit/Del] [Reply]
    이 번역글이 앞으로 뻗어나간 맥 앞에 주디스 버틀러가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머리로 이해되긴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서 저는 여전히 보수주의 입장일듯 합니다.

    한국의 성소수자 진영은 이 타협주의를 가지고 정치적 사회적 재미?(결실)을 획득했다 말할 수 없기에 당분간은 이 상태로 가자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네요.

    무엇보다 머리로 이해된걸 선언하면 허세종결자가 될거 같아서 실토하는 바, 저는 연애대상에서 바이섹슈얼을 제외하곤 합니다. 단물 쏙 빼먹고 이성애 가족 창립(?)에 공헌하는 미래가 느껴져서 밑빠진 독에 물붓는거 같거든요.

    제가 FTM 한무지씨 강의를 듣고, 한무지씨에게 간절히 당부드린 말은 "트랜스젠더의 해방의 날이 오더라도 게이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였답니다. 그때가 제가 19살인가 20살때였죠.

    제 눈엔 트랜스젠더들이 이성애주의와 결탁(?)하기, 혹은 편입되기 가장 쉬운 집단으로 보였고, 이태원에서 트랜스젠더가 된 옛 게이친구가 "난 더이상 너와 같은 호모가 아니야. 너랑 같이 다니면 똑같이 취급받는거 부담스러워."라는 말에 배신감 느낀 사연에서 비롯된 시각이었지요.
    • 조곤
      2011.08.14 08:41 [Edit/Del]
      그런데 빤히 예상되는 바. 언젠가 LGBTQA 이 연합이 서로 등돌리는 상황도 쉽게 예상되는게. 이미 불안 요소들이 종로와 이태원 바닥에 널렸다는걸 직감해요. 이반시티만 봐도 불안한 여론이 한두가지가 아니란게 눈에 쉽게 읽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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