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커뮤니티 내의 트랜스포비아, 두 번째 이야기
Dr. Jillian T. Weiss, 12009년 12월 13일, 오전 11시 30분
크리스틴 조겐슨(Christine Jorgensen)이 1951년 신문의 헤드라인에 나왔을 때, 그녀의 주치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녀를 동성애자로 봤다. 그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매우 다르게 이해했다. 지금의 LGBT 세계에선, 특히 다른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에게는, 그 차이가 매우 추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트랜스포비아가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한 당시의 분위기를 딱딱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되살려볼 것이다. 독자들은 이것을 단순히 사실에 관한 역사로 읽지 말고, 감정, 힘없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어왔는지의 역사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 당시의 많은 동성애 친화적인 운동homophile movement은 조겐슨과 그녀의 이야기가 사용된 방식 때문에 놀랐다. 만일 트랜스섹슈얼한 생각 -- 조겐슨의 "치유"와 "치료" -- 이 대중들 사이에서 힘을 얻었다면, 게이와 레즈비언을 향한 비난을 심화시켰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정신 치료와, 강하고 위험한 효과를 내는 의무적인 호르몬 주사, 20세기 중반에 사랑받았던 "과학적" 실험들 -- 뇌엽절리술lobotomy이나 전기치료, 동성애자의 성기를 절단하는 것 -- 의 부활,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더 강력한 법적인 제약, 그리고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거나 강제입원법령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 치료를 명령하는 것 등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권력 싸움에 얽힌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의 공포가 커뮤니티 내의 트랜스포비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만 하다. 이것은 단지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일어나는 일이다 (이란과 같은 곳에서는 강제적인 성전환 수술이 교수형을 피하는 한 방법이다)
이 글의 다음 부분에서 나는 조겐슨이 수술을 받았을 당시에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읽지 말라. 이 역사를 읽으면서, 당신은 내가 그랬든 자기 자신을 찾고, 강한 감정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누가, 무엇이 트랜스포비아에 책임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 동성애자들인가? 아니면 트랜스섹슈얼들인가? 어떤 사회적 힘이 그것을 만들고, 기르고, 사용했는가? 당신은 그들에게 조종당한 적이 있나?
이 글의 Part I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Journal of Bisexuality에 기고했던 원문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이 역사적 관찰이 게이 커뮤니티 내의 트랜스포비아 (그리고 트랜스 커뮤니티 내의 호모포비아) 를 만들어낸 권력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는 짧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그 타자들the Other에게는 어떤 연민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성애 치료하기
조겐슨은 스스로 동성애를 "끔찍한 마음의 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동성애와의 연관성을 확실하게 부인했다. 그 당시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괴물과도 같이 취급당하여, 사회, 즉 가족, 종교, 교육, 고용, 주택으로부터 완전히 거부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조겐슨은 동성애로부터 거리를 두려 했던 그녀의 노력 -- 심각한 결과를 낳긴 했지만 -- 을 감안하면 용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트랜스섹슈얼들이 동성애자 정체성을 부인했던 것이 게이 커뮤니티 내의 트랜스포비아의 한 근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동성애를 병이라고 정의하면서, 정신과 의사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은 그것의 "치료"를 감행했다. 1992년 다큐멘터리 "Changing Our Minds"를 만든 심리학자 제임스 해리슨은 의료계가, 사실상 제안된 치료가 모두 지지할만한 수준의 혐오를 가지고 동성애를 바라봤다고 말한다. 레즈비언들은 그것이 사실상 성적 지향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자궁절제와 에스트로겐 주사를 받게 강제되었다. 게이들 또한 비슷한 학대를 받았다. "Changing Our Minds"는 1940년대 후반의 한 영상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한 젊은 남성 동성애자가 경안와뇌엽절리술transorbital lobotomy를 시술받는 장면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안구의 위쪽 안와를 통해 얼음송곳 같이 생긴 도구를 삽입하고, 뇌에 닿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송곳은 앞뒤로 움직여 전두전엽을 피곤죽으로 만들어버린다. 해리슨의 다큐멘터리는 미국 해군이 만든 1950년대의 교육용 영화에서 가져온 거친 흑백 영상도 담고 있다. 한 동성애자 남성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의사들은 그를 묶고, 전극을 머리에 붙인다. "우리는 당신을 치료하려 합니다"라는 남성의 목소리가 배경에 깔린다. 전원이 올라가자, 그 남성의 몸이 격렬하게 튀어오르고, 그는 비명을 지른다. 또한 의사들은 거세 수술과 다양한 종류의 혐오 치료를 시도한다. 이 중 어떤 것도 성적 지향을 바꾼다고 입증되지 못한다.
크리스틴 조겐슨의 이야기가 1951년에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절할 지를 논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담당의였던 내분비학자가 1951년에 출판한 첫 사례연구에서, 그는 그녀의 "동성애적 경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조겐슨 스스로는 그녀의 상태를 동성애와 명확히 구분 지었고, 이것은 "자연의 실수", 즉 여성이 남성의 육체에 들어간 것이라는 트랜스섹슈얼에 관한 일반적인 설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 동성애 정체성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정체성을 정말 적절하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훨씬 끔찍한 마음의 병"과 그녀가 처한 상황을 구분 지으면서 고통을 느꼈다. 이 "끔찍한 마음의 병"은 동성애를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 정체성과 단순히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성애를 나쁜 것으로 묘사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은 그녀를 위험한 변태로 그리려던 많은 시도가 있었던, 그 문맥 안에서 보아야 한다.
치료를 거부하며
US에서 일어난 1950년대의 동성애 지지운동 내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조겐슨을 감싸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일부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스스로를 다른 성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을 맹렬히 비난했고, 그들이 "변태"같이 행동한다고 비판했으며, 이성애중심사회에서 조용히 살려던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에게 오명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1953년의 한 논쟁의 내용이다.
일례로, 1953년 한 잡지에서는 게이 남성들이 조겐슨을 비난해야하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논쟁을 게재했다. 포문을 연 것은 제프 윈터라는 작가였는데, 그는 조겐슨이 게이 남성들에게 "엄청나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그는 "대중들이 잘 알듯이, 당신은 단지 한 불행한 동성애자이며 그것을 극단적으로 보이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윈터에게 조겐슨의 이야기는 모든 게이남성들이 근본적으로 여성스럽다는 잘못된 믿음 --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그렇지 않다." -- 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기로, 조겐슨의 선례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법적 제한과 강제 주사, 심리학적 치료"로 이어지는 근거가 된다. 멀지 않은 과거에, 과학자들은 게이 남성을 거세하는 실험을 했었다.
동성애자들과 트랜스섹슈얼 사이의 이런 긴장은 패싱과 개방성(다른 성으로 보이는 것과 자신의 성별을 열어두는 것) 사이의 긴장, 혹은 "젠더 위반"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계급 차이, 그리고 "여자 같은 남자swiss"와 "남자 같은 여자butch"에 대한 서로 다른 계급적 관용으로부터 유래해왔다. 일부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품위 없는 하급의 행동 때문에 젠더 위반과 연관되어 있는데, "여자 같은 남자fairy"와 "남자 같은 여자butch"가 노동 계급 커뮤니티에선 이미 상당히 받아들여졌다는 것과 비교된다. 1960년대에 동성애 지지운동 진영의 300명의 게이와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3이상이 성확정 수술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정치적 효과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걸쳐 트랜스젠더들은 Gay Liberation Front나 Gay Activists Alliance같은 게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목표가 성적 다양성과 표현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었음에도, 70년대 초반 게이 남성 커뮤니티는 레즈비언들이 분리주의와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돌아선 것처럼 동화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들이 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예를 들어, 1971년 GAA는 뉴욕시의회에 동성애자를 차별에서 보호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그 법안에는 트랜스섹슈얼 보호를 위해 명시된 조항이 하나도 없었다.
트랜스섹슈얼들은 게이-레즈비언 조직 바깥으로 내던져졌고, 그들의 정체성이 합당한지 논의되기 시작했다. 트랜스섹슈얼의 정체성은 1970년대 -- 즉, 부치 레즈비언이 레즈비언 페미니즘 운동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고 트랜스 남성이 게이 운동에서 마찬가지로 환영받지 못하게 된 시기 -- 에 더욱 분리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1979년 레즈비언 학자 재니스 레이먼드가 펴낸 <트랜스섹슈얼 제국The Transsexual Empire>은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초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에서 레이먼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트랜스섹슈얼 현상은 '여성'이 의학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의사들의 묵인 아래, 정형화된 가짜 여성성 속으로 도망가려는 페티시적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만들어진" 트랜스섹슈얼들이 정형화된 남성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해 고정관념화된 젠더 체계에 저항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은 단지 한 스테레오타입에서 다른 것 사이를 왔다갔다하거나, 기껏해야 그런 스테레오타입들을 섞는 정도밖에 하고 있지 않고, 따라서 진정한 젠더 해방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젠더 이분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급진주의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6, 70년대 여성주의자들과 동성애자들이 정치행동을 통해 급격하게 변화시킨 기존의 정형화된 젠더 체계를 보존하려는 반동세력이다.
예상하겠지만, 트랜스섹슈얼들은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이런 식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굉장히 분개했다.
Kumbaya
이런 배경에 대항하여, 90년대 초에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의미가 불명확한 이 단어는 GLB 연합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법적이고 사회적인 차별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충분한 정치적 힘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는 트랜스베스타이트, 크로스드레서, 트랜스섹슈얼이나, 게이 및 레즈비언과 비슷하거나 연관되어 보이는 젠더-가변적인 사람들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 용어에 대해서도, 이전에 크리스틴 조겐슨이나 레니 리처드, 웬디 윌리엄스 등 트랜스섹슈얼에게 결부된 동정적인 이미지를 대중이 똑같이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프린스가 이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를 고안했던 의도는 "트랜스섹슈얼"과 분리된, 다른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는 현재 젠더 수행을 규범과는 달리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많은 트랜스섹슈얼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별로 반기지 않는데, 그들의 정체성을 단지 "수행"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를 LGB에 포함시키는 것은 안고 갈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혔고, 정치적 힘을 더 갖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누군가에겐) 문제라는 게 점점 분명해졌다. 그것은 연대를 조직하는 많은 사람들 -- 증가하던 전문 정치가들을 포함해서 -- 의 목표와 맞지 않았다. 그 목표란 미국의 다수 선거권자들과 동성애자들이 "다르지 않다"는 이미지로 대중에 호소하는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중산층이고 (중간 계급의 봉급을 받고), 지속적인 직업을 갖고 있으며, 한 동성 파트너와 오랜 기간 연인 관계로 지내왔고, 미국 선거권자 다수가 바라는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결국 일부 게이들은 이성애자들의 시각과 동일하게, 트랜스젠더들이 현실의 규범을 공격한다는데 동의했다. 다음과 같이, 얄팍하게 유머인 체하는 공격이 그것을 보여준다.
트랜스젠더들이 진짜 성이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불러달라고 하는 그 고집이 사실 약간 짜증나요. 다른 많은 트랜스젠더들과 같이, 칼리피아(Patrick Califia)는 마치 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잔디라고 불러서 화를 내는 덤불 같아요. 음, 만일 덤불이 있고 줄기가 없다면 그게 진짜 나무인가요? 모든 MTF 트랜스젠더가 그들의 손거울을 닫고 쇠스랑을 (물론, 어울리는 핸드백에서) 꺼내들기 이전에, 나는 우리들 바깥에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어요. 만일 당신이 입은 옷이 갈색인데, 당신이 빨갛다고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말해야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건 내게 당신의 기호에 맞추어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라고 주문하는 겁니다.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환상에 사람들을 빠지게 하는 것은 내게는 그냥 사람들을 조종하려드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네요... 모든 Patty, Pat, Patrick들은 소년으로/소녀로/나중에 알려주겠음으로 살아요. 그저 우리한테 성질부리지만 말아요. 우리는 당신들의 대명사 권리pronoun rights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
게이들은 일부 트랜스젠더들이 이성애자로 패스되거나, 동성애 정체성을 거부하거나, 스스로가 이성애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화가 나 있었다. 예상대로,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 일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고,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것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런 반응, 즉 "트랜스포비아"적인 반응은 사실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공포증phobia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앞에서 서술해왔던 타협주의와 애매한 젠더경계, 동성애자 정체성과 "패싱"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결과물인 것이다.
"트랜스포비아"는 "포비아"인가?
트랜스포비아는 "공포증", 즉 비이성적인 공포의 한 예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성애중심주의적 태도들은 굉장히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동성애자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어져 온 사회적 긴장을 반영한다. 게이와 레즈비언 커뮤니티들은 동성애를 취향보다는 지향으로, 즉 쉬쉬하거나 치료되어야 할 낙인이 아니라, 이성애의 대안으로 선택가능하고 열려있으며 건강한 정체성으로 비춰지도록 오랜 시간동안 노력해왔다.
이런 과정의 끝은 성별 적합성과 타협주의로 이어졌다. 즉,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긴 하지만, '동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치적 진보는, 성적 지향의 '덜 중요한' 예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게이와 레즈비언도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라는 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동성애"가 점점 사회적으로 인정되면서, 1968년 스톤월 항쟁의 부끄러움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1974년 미국심리학회가 동성애를 정신병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등 좀 더 인정받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의 관용과 법 상의 시민권리를 위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정치가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지만, 덜 용인되고 노골적으로 비용인되는 구성원들 -- 특히 여성 트랜스섹슈얼과 문란한 바이섹슈얼들 -- 을 버려야만 했다. 아직도 미국심리학회에서는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를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모든 동성애자와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포함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좀 더 요령있는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이 운동을 이끌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표준적인' 동성애자 구성원들의 요구 -- 트랜스젠더나 바이섹슈얼의 요구일 필요는 없는 -- 를 충족시키고 지지하기 위해 운동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LGBT의 "LG"부분은 늘어난 교육, 사람들이 무감각해지는 것, 그리고 운동의 구성원 중 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부인해버리는 것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용인되었다. 동시에, 이런 정치적 성공은 분리주의적 문화에 불을 지폈는데, 이것이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들에게 존재를 희석시키는 위협이 되었다.
영화 <플로리스Flawless>(1999)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와 관련하여 게이 공화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장면을 담고 있다. 비록 픽션이지만, 이 장면은 정확히 이 글에서 말하는 긴장을 그려내었다.
게이 공화주의자 #1 : 오늘 이 곳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게이 퍼레이드 관련해서 논의를 계속해 왔는데요, 프론트를 하나로 통일해서 보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고, 음, 좋을 것 같아요.
게이 공화주의자 #2 : 말하자면 통합이죠.
게이 공화주의자 #1 : 맞아요. 게이 공화주의자로서 느끼길, 이번에 모두 같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같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
게이 공화주의자 #2 : 통합을 축하한다는 의미?
게이 공화주의자 #1 : 네, 통합...
트랜스섹슈얼 #1 : (비꼬듯이) 오, 정말 좋아요. 미안해요, 계속 말해보세요.
게이 공화주의자 #1 : 아마 한 형제가 되어 행진할 수 있을 거예요.
트랜스섹슈얼 #2 : 자매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게이 공화주의자 #2 : ...걸어서 행진할 거예요. 이동수단 없이.
트랜스섹슈얼 #3 : 그래요. 차가 없으면 힐 신고 행진할 순 없을 테니 우리가 드랙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죠? 한 가지 말해두죠. 우리는 티티카카 호수까지 행진했다가 스틸레토까지 돌아올 수도 있어요.
게이 공화주의자 #1 : 진정해요.
트랜스섹슈얼 #1 : 당신들 돈 많이 모아서 밥 돌의 캠페인에 보냈는데 돌려받지 않았었나요?
게이 공화주의자 #2 : 아녜요. 그건 그가 기독우익의 지원을 잃게 될 거 같아서 그런 거예요.
트랜스섹슈얼 #2 : 정확히는, 당신이 게이라서 그렇죠. 당신이 게이라서, 그가 돌려 보낸거죠. 창피하지도 않아요? 좋아요, 들어봐요. 당신이 옳아요. 우리는 달라요. 그러나 그게 당신이 뜻한 다름은 아니죠. 당신들은 우리를 부끄러워하고, 우리는 당신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다른 거죠. 바나나 공화당원들에게 무릎 꿇고 거기나 빨고 있으니 그렇죠. 오, 당신들은 우리의 자매고 당신들을 사랑해요, 정말로. 신의 축복이 있길. 망할.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지금의 LGBT 토양에서 굉장히 이상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성애의 가장 나쁜 양상과 가장 퀴어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동시에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한 측면에선, 트랜스젠더들 중 많은 이들이 젠더 이분법에 들어맞으려 하기 때문에 이성애 옹호자로 보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많은 이들이 젠더 연속체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전형적인 이분법을 훨씬 초월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배반자" -- 게이나 페미니스트나 퀴어인 것만으로는 배반자가 되기에 불충분하다 -- 인데,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정치적 방법론의 논쟁 속에서 가장 첨예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최근 일어나는 "GL"과 "T" 분열의 윤곽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트랜스포비아"라 불리는 추상적인 심리학적 공포 현상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이해관계로 얽힌 정치적 갈등의 고전적인 예다.
이것이 극렬한 포비아들이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섹슈얼을 제물로 삼은 적이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세균이나 공공장소에 대한 공포로 장갑을 끼거나 마스크를 쓰고서 하늘 아래에 나서는 것을 피해 집에 머무는 범주의 맨 끝으로 그 포비아들을 직관적으로 한정 짓고자 한다.
권력 정치학
이제껏 보아왔듯, 미국의 동성애 정체성이 구성되어온 역사적인 주변 상황이 권력관계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포괄적이면서도 동시에 배타적인 결속을 만들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이런 권력관계들이 서로 다른 네 집단을 만들어냈고, 각각을 정치적으로 다른 정체성, 다른 자원, 다른 공간에 위치시켰다. 이런 사회적 구조가 LGBT 커뮤니티 내 정체성 정치를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더 말하자면, 이 정체성 정치는 커뮤니티 내의 편견과 차별을 낳았는데, 사실 "이성애중심주의heterosexualism"나 "내재화된 이성애중심주의internalized heterosexualism"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사회학자 파울라 리스트의 해석을 좋아하는데, "이성애중심주의란 한 형태의 섹슈얼리티를 다른 모든 섹슈얼리티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심리학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가 가진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은 사실 이성애중심주의다. 그것은 더 "근본적인" 형태의 섹슈얼리티에 굴복하려는 타협주의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서술했듯, 그런 타협주의적 공격은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치명적인 낙인과 편견, 차별, 국가적인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랜스젠더 또한 비슷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것은 트랜스 커뮤니티의 호모포비아로 드러났다.
결국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은 모두를 같은 것으로 만들고 사회에서 배제시켜버리려는 동일한 억압에 노출되어 있고, 이것이 정체성 정치를 망쳐놓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이런 현상에 대해 리키 안네 윌친이 남긴 글을 인용한다.
아아, 정체성 정치는 컴퓨터 바이러스 -- 즉, 호스트가 있고 닿은 것에는 어디나 전염되어 버리는 것 -- 나 다름없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용어들은 설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어가고 있다.... 합법적인 체계를 세우고, 그것을 벽과 경계 짓기로 방어해서 완전하게 하기 위한 제안이 나에게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마 이번 생에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런 시도들은 '진짜 정체성'이라는 언어적인 환상이, 그것을 만들어냈고 필요로 하는 정치적인 시스템보다 정말로 먼저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맞서 싸워야할 억압에 신경 쓰기보다, 자신을 대변하는 요소들에 이름 붙이는 것에 신경 쓰도록 만드는 언어적인 유혹이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 정치적 합법성을 사는 것은 파우스트와 거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파우스트가 그냥 이기게 둘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악마와 그 힘이 우리가 서로를 증오하도록 만들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트랜스포비아도, 호모포비아도, 바이포비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증오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한다. 아니면 그 곳엔 죽음뿐이다. <스타 트랙>을 보며 배운 점이 있지 않은가?
이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트랜스포비아와 트랜스 커뮤니티의 호모포비아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몇 가지 생각해야할 점을 제시하려 한다. 그러나 글의 길이 상, 이 내용은 다음에 싣고자 한다.
번역 : 서리_동성애자인권연대
원문: http://www.bilerico.com/2009/12/transphobia_in_the_gay_community_part_ii.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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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라마포 대학 법사회학과 부교수. 젠더 정체성 관련 연구자이자 ‘트랜스젠더 일터 다양성’에 관련한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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