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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학교놀토반’을 바라보는 성소수자로서, 혹은 기획자의 한명으로서

청소년성소수자

by 행성인 2011. 8. 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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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학교놀토반’을 바라보는 성소수자로서, 혹은 기획자의 한명으로서


1.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이후 지난 2년, 그 중에서 동인련이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로 반 년 남짓. 나름대로 격렬했던 그간을 돌아봤을 때, 청소년기라는 인생의 1막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남았을까요. 물론 행복할수록 좋은 것이겠지요. 그리고 지금 와서 되돌아볼 때, 저는 제 지난 2년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유의 정점에는 어떤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라는 곳은 특정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와중에는 더 이상 방패를 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혹은 더 이상 옷장으로 숨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그곳은 다른 모든 ‘이성애적인’ 일상과 구분되는 어떤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편했습니다. 말 그대로 편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곳을 쉼터라고 부르는 편이 가장 좋겠군요. 쉼터. 쉴 수 있는 공간. 덕분에 저는 성 정체성 갈등이라는 혼란 속에서 나름대로 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개학교 놀토반은 그 자체로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확실히 기성 사회와는 다른 공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뭔가 다른 곳인, 제가 힘들 때면 들어와 쉬던 쉼터의 흔적을 무학놀에서 보았습니다. 무학놀은 청소년인 우리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리고 우리가 성 정체성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곳이 참석했던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 있는 새로움으로 다가갔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이성애적인 일상과 다른 공간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어떤 새로운 영감을 가지고 가셨다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에게 무학놀이 어떤 의지할 만한 기억으로서 ‘아 나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구나’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우셨더라도 용기를 내신 것 자체로 여러분께서는 큰 도약을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이 그런 대단한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으로 여러분의 실천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러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보다 분명히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일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기획자로서 이번 무지개학교 놀토반은 동인련에서 활동하면서 기획에서부터 참석까지 모두 참여한 첫 번째 무학놀이었던 만큼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무학놀의 주요한 테마였던 미니장터를 포함한 프로그램들이 시작에서부터 종결까지 무난하게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청소년자긍심팀 여러분들이 행사의 전체적인 큰 틀을 잘 잡아낸 성과를 거뒀습니다. ‘자기소개 -> 미니게임 -> 미니장터’로 연결되는 형태 자체는 일견 간결해 보이지만, 기획단계에서 나온 여러 구상들을 보완하고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택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세부적인 조율이 그다지 정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행사 장소가 완벽하게 섭외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 인원을 잡고, 그에 맞춘 규모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실제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될 공간의 규모나 내부 분위기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당일 참석자들이 모이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될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을 실패했다고 봅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이었던 미니게임 중 짝짓기 게임에서 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뛰어 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미니장터 또한 타로점의 경우에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음식물 파트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는 과자가 전혀 팔리지 않다시피 해서 그대로 적자로 연결된 것, 그리고 반대의 경우로 샌드위치는 인기가 높았지만 준비한 여러 재료에 비해 빵이 부족해서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단점은 주변 환경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분위기를 예상하는 데에 실패한 것은 프로그램이 열릴 공간이 불명확했다는 점과 관련이 깊고, 음식 준비의 경우에는 무학놀에서 판매를 염두 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참작했을 때, 음식 수요를 대체로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것을 오히려 높게 사야 할 것입니다. 즉, 다음 무학놀을 더 완성도 있게 기획하기 위해서는 무학놀 행사를 둘러싼 내/외부의 환경 문제를 선결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무학놀 기획 초기에 행사 장소를 결정한 뒤 그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획을 정확한 장소와 연계해서 진행할 수 있다면 행사 당일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무학놀에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기 때문이며 동시에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스텝으로 참석해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타로점을 봐주신 유령님. 마쯔님. 매미님. 덕분에 미니장터가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상에서 벗어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니게임을 큰 무리 없이 진행해 준 루소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기획에 창의력과 재기발랄함을 더했던 동인련 청소년자긍심팀 여러분 모두들 잘 해 주셨습니다.


이번 무학놀은 좋았고 그만큼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프로그램과, 더 재미있는 분위기를 가진 새로운 무학놀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무학놀이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성 소수자들을 위한 놀이터이기 때문입니다. 무학놀은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학놀이 이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버팀목이 되고, 더 나아가서 의지와 자긍심을 갖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학놀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 한 사람의 어린 성 소수자에게 긍정적인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_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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