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8월24일부터 30일까지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AIDS in Asia and the Pacific)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다. 아‧태 에이즈 대회는 격년마다 개최되는 지역대회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정부관계자, 보건의료관계자, NGO활동가, 감염인 당사자들이 모여 에이즈와 연관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학술대회다. 이번 개최지가 한국으로 결정된 것은 정부의 의지라기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하 연맹)의 로비 덕분이었다. 부산광역시와 정부가 재정지원을 약속한 상태에서 연맹은 본 대회의 안정된 개최를 위해 동성애자인권연대와 같이 커뮤니티 레벨에 있는 각 단체 활동가들을 소집했다. 대회명도 생소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참여를 설득하기 위한 몇 차례의 워크숍이 계속 진행되었다. 나는 아‧태 에이즈 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HIV/AIDS 감염인들의 의견을 듣는 형식적 절차도 밟지 않았던 이 대회가 과연 성공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이 국제대회를 유치할 정도의 수준이 될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감염인 인권증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참여자체에 대한 의의를 둘 수 있어도 열심히 준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프로그램도 구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유할 내용조차도 없었다.


얼마 못 가 한국 정부는 한국도 모자라 해외의 HIV감염인들까지 한국으로 입국시켜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부산시도 재정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대회를 주관했던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은 대회준비를 중단했다.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개최하기까지 절차적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 중단 사유도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했다. 감염인의 참여의지를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악할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연맹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태 에이즈 대회를 개최한다고 불러 모았을 때처럼, 취소한다고 통보했을 때에도 최소한의 동의절차가 없이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 되었다.


다시 개최하기로 결정된 건 불과 몇 개월 되지 않는다. 변한 건 없었다. 준비주체에서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은 공식적으로 빠졌고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소속의) 개인 활동가 3명이 급히 실무팀에 결합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와 동성애자인권연대, 그 외 워크숍에 지속적으로 초청받아왔던 단체와 개인들이 참여 논의를 재개했지만 충분한 논의를 할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아‧태 에이즈 대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전과 달리 깊이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가 참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태 에이즈 대회를 통해 에이즈에 취약한 그룹들(청소년들, 성노동자들, 성소수자들)과 HIV/AIDS 감염인들과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국제대회인 만큼 해외활동가들과의 교류를 통한 성과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몇 번의 국제 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소통의 한계를 핑계로 현재까지 온전히 이어 내려온 것은 거의 없다.


정부의 무관심과 재정지원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현재까지 한국 참가단만 100명이 넘는다. HIV감염인 당사자는 물론 성소수자로서, 성노동자로서, 이주민으로서, 청소년으로서, 종교인으로서, NGO활동가로서 이 대회를 참여한다. 특히 감염인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고무적이다. 나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이들과 함께 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참여이유는 각기 다르다. 휴가를 대신해서 편하게 가보려고 하는 이들도 있고 국제 활동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성해보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힌 이들도 있다. 게이번개를 계획하고 있거나 부산 맛 집 위치를 확인하는 이들도 있다. 뭐 이유야 어떻든 부산에서 우린 만날 것이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올라올 것이다. 기대와 다른 분위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굉장히 큰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20명이 넘는 가까운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이 참여하는 만큼 단순참여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빈곤, 차별, 의약품접근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해 함께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리 그려보는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


본 대회 개막은 26일 오후에 열리지만 24, 25, 26일 오전까지 커뮤니티포럼이 벡스코에서 진행된다. 아·태 에이즈대회 커뮤니티위원회에는 10개 분과위원회(PL, PL라운지, 성노동자, 청소년, 여성, 종교, NGO, 성소수자, 마약사용자, 의료)가 구성되어 있다. 커뮤니티위원회 중심으로 개막 전 3일간 분과 토론이 진행된다. 그래서 24일이면 한국 참가단들이 대부분 부산에 도착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LGBT(성소수자) 소위원회는 25일 진행될 LGBT포럼 프로그램 주제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 외 LGBT 차별사례와 성공적인 에이즈 예방사례/프로그램을 공유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26일 개막식 전 아·태 에이즈 대회 참여단체들은 개막식장 앞에서 참가 선언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폐막 전 29일에는 해외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결의대회로 마무리 할 예정이다. 27일은 FTA반대, 의약품접근권의 날로 정하고 현재 해외활동가들과 공동행동을 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28일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날로 정해 에이즈에 취약한 소수자들과 인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제10회 아·태 에이즈대회의 표어인 ‘다양한 목소리 하나된 행동’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같이 한국 참가단 활동소식을 담은 데일리가 발행될 것이고 27일부터 3일간 아시아 태평양 빌리지가 운영될 것이며 한국의 에이즈 현황을 알리는 다양한 발표도 이뤄질 것이다. 벌써부터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고 이 대회가 과연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적극 알릴 예정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아·태 에이즈대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큰 규모의 국제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지 않아도,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국제 활동가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잘 찾아야 하고, 대회 이후 혁신적인 활동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대회 이후다. 무엇보다 대회를 준비하며 만나게 된 참여단체 활동가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 에이즈를 중점에 두고 활동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유지되고 있는 네트워크가 쉽게 흐지부지될 수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여성의 이슈에 대해, 성노동자의 이슈에 대해, 이주민의 이슈에 대해, 청소년의 이슈에 대해, 그리고 의약품접근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는 만큼 에이즈라는 질병이 미치는 영향과 감염인으로서 놓인 차별적 현실을 그 누구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으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값비싼 정보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과 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가 가지고 있는 모순된 지점을 찾고 해결해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그런 과정 없이는 HIV/AIDS 인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활동할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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