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 주의!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따돌림
모든 나라의 모든 주교가 성공회 총회인 ‘램버스 회의’에 초대받는다. 단 한 사람, 진 로빈슨 주교만이 초대받지 못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 성공회는 게이 주교를 인정했을지 몰라도, 세계 성공회는 진 로빈슨을 주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총회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영국 성공회 교회 내 설교와 다른 주교들과의 식사와 사진 촬영도 금지당한다. 시쳇말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질시를 피해 물을 길으려 햇볕 뜨거운 정오에 우물가를 배회했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진 주교도 램버스 회의가 열리는 런던을 속절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런 그를 맞아 주는 것은 에이즈 환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에이즈 환자들과 함께 나누는 식탁 위의 친교 속에서, 진 주교는 비로소 환하게 웃는다.
반대자들
세계 성공회는 회의 기간에 영국 성공회 교회에서 진 주교가 설교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런던의 한 성공회 교회가 그를 설교대 앞으로 초대한다. 떨리는 목소리, 그러나 입가엔 미소를 띠어본다. 진 주교가 첫 마디를 뗀다.
사랑의 반대말은 두려움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그때 누군가 벌떡 일어난다. 금발 머리, 다부진 어깨를 가진 그는 진 주교를 향해 삿대질을 시작한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이야!
사람들이 웅성대지만 남자는 고함 섞인 호통을 멈추지 않는다.
사탄! 교회의 분열자!
그는 끌려나가면서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설교가 끝나고 영화 카메라 앞에 선 진 주교는 애써 자신을 추스르며 말을 이어가지만, 끝내 울먹거림을 참을 수 없다.
진 주교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 그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게이 주교의 서품은 큰 도전이다. 영화는 램버스 회의 6개월 전, 진 주교가 서품되기 직전의 미국 성공회 총회로 시선을 돌린다. 지난 2000년간 성공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동성애자들의 교회 내 결혼식을 금지함은 물론, 어떤 종류의 직책에도 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 로빈슨은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혔을 뿐 아니라, 주교로 서품되려 한다. 게이 신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신부들을 대표하는 주교라.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어려운 질문이다.
카메라는 진 로빈슨의 친구들을 담는다. 신학교 시절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울고 웃어온 친구.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진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공회 주교로서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나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다른 여자 신부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동성애자들이 배척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동성애자가 주교로 서품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녀는 발언하는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테이블 토론과 전체 발언이 번갈아 이어지고, 안건은 표결에 부쳐진다.
투표 결과 70%의 찬성으로 미국 성공회 내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신부 혹은 주교의 서품이 허용된다.
침묵, 그리고….
표결이 끝나고,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모두 말이 없다. 회의가 끝났지만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10분간의 긴 침묵이 이어진다.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 저마다 깊은 기도에 잠긴다.
영화 끝 무렵, 진 주교는 시원한 물을 가득 챙겨 게이 퍼레이드로 향한다. 진 주교의 물컵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와 물을 나누며 위로를 받았듯이, 지금도 여러 이유 때문에 배척당하는 동성애자들과 함께하자는 호소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깊게 남았다. 진 주교와 그의 파트너 마크가 다정하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모습, 동성애 주교 서품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진실한 고백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조만간 정식 개봉하는 영화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원제:Love free or die)」은 다가오는 11월 14일에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4층에 있는 KU시네마트랩(http://cafe.naver.com/kucinematrap)에서도 상영한다. 이외에 이화여대를 비롯해 각 대학교와 지역에서 소규모 상영을 준비 중이다. 자세한 문의는 레인보우 팩토리(트위터@rainbowcine)로.
로빈슨 주교와 그의 동반자 마크가 서로를 보며 웃고있다.
'성소수자와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근데 동성애자는 빼고.’ 이럴 수 없잖아요" - 퀴어한 기독인들 이야기 (9) | 2013.11.07 |
---|---|
영원한 짝사랑 (6) | 2013.11.06 |
한기연 월례포럼 인문학적 성서읽기 <성서와 동성애> 후기 (0) | 2013.07.18 |
“성평등한 교회 상상하기” (0) | 2011.10.14 |
교회가 동성애를 혐오해야 하는 이유? - ‘혐오반대’가 새해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할 이유! - (1) | 2011.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