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중에도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성경에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목사님과 신부님이 죄악이라고 말하는데도 그들이 신앙심을 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은 퀴어 기독인들과 함께 그 ‘고민’과 ‘화해’의 경험을 이야기 나눠 보았다.
‘하나’는 기독교인이자 레즈비언이다. 성경에 적힌 동성애자에 대한 말은 항상 “짐이었고 아픔이었다.” 신도가 여섯 명인 개척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목사님에게도 커밍아웃했다. 목사님은 하나를 받아들였고, 신도들과 함께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성애자가 너희 주변에 없겠느냐, 분명 있다. 그런데 왜 커밍아웃을 안 하겠느냐, 그건 너희가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죄일까.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설교를 들은 신도들은 당황했고, 한 신도는 “목사님 그 말에 책임지실 수 있으세요?”하고 묻기도 했지만, 많은 신도들은 더 공부해보려고 했다.
하나는 신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복음이란 건 내가 알기로는, 차별이 없는 거에요.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근데 동성애자는 빼고.’ 이럴 수 없잖아요. 세상의 모든 걸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형태’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는 망설이지만, 신앙 공동체의 소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형태는 맛있는 걸 많이 주는 교회에 놀러 갔고, 그렇게 교회에서 자라났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다닌 한 교회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성에 눈을 뜨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었다. 기도나눔 시간에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친구들의 걱정에 함께 기도했지만, 형태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유령처럼”,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교회에 다녔다. “보여도 안 보이는 척, 들려도 모르는 척, 말 못하는 척, 없는 척” 교회를 다녔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계속 있었던 건, 교회의 따뜻함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내보이지 않으면”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 속에 계속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위로도 받고 기운도 얻고 오는 곳이다. 형태는 커밍아웃 하지 않은 대신 사람들이 좀 알아봐줬으면, 그만 물어봐주었으면 하고 기도했다.
교회에서 커밍아웃을 한 후, 사람들은 고민을 “숨기고 있던” 형태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난 이거 내 인생이 걸려있는 거라고!”라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를 나온 형태는 얼마간 교회를 다니지 않다가, 최근 혁명기도원 사람들을 만나,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길찾는교회에 다니고 있다.
‘민철’은 청소년이자 신을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다. 찬양팀과 학생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찬양팀 누나에게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을 때 그 누나는 “너는 동성애자니까 앞접시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전엔 같이 잘 먹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게 화가 나서 “그럼 누나도 앞접시 써”라고 말하며 앞접시를 가져다 줬다. 학생회 교육 전도사님은 수련회에서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어이 없는 일도 많이 겪었지만, 지지해주는 형이 한 명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민철은 결국 이런저런 일로 더 이상 교회에 다닐 수 없겠다고 생각해 다른 교회로 옮겼다.
‘유키’는 게이이자 기독교인이다. 일본에서 6년 간 살다가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가 없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유키는 교회에서 학자금을 받았다. 때문에 팀장도 하면서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자신과 교회의 방향이 너무 달라 상처도 많이 받고 마음도 많이 불편했다. 고민을 어디에 이야기해야 할 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같은 고민을 가진 형을 만나 서로의 고민을 공감할 수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교회에서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항상 하는 말이다’하며 그러려니 하고 있다.
‘다윗’은 청소년 동성애자이자 목사님의 아들이다. 목회자의 자녀로서 동성애자인 게 너무 힘들었다.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엄마는 계속 다윗을 “고치려고” 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요즘은 하느님을 믿고 싶지 않아진 것이 고민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걸 계속 배워오다 보니 ‘난 무조건 지옥에 가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제이’는 엄청 큰 교회인 삼일교회에 다닌 레즈비언이다. 교회에서 이것저것 역할을 맡으며 열심히 다녔지만, 교회 목사가 교인들을 성희롱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교회 공동체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 목사는 다른 교회에서 여전히 목회를 하고 있다. 성희롱하는 목사는 괜찮은데 동성애자는 안되는 걸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과연 하느님이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셨을까. 제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삶조차 하느님이 주신 거니까 분명히 이유가 있고, 그 안에서 사역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주신 시간 속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 모임을 만들어 성경을 “제대로” 읽는 스터디를 했다. 성경을 새로 읽는 과정은 그 자체로 “회복”의 시간이었다.
‘모리’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천주교 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모리를 낳기 전 ‘예수님 닮은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 때문이었는지 모리는 동성애자로 태어났다. 모리는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웃팅을 당한 모리의 애인은 고등학교 때 꿈꿨던 것처럼 다시 신부님이 되려 한다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야만이 너무 싫지만, 모리는 기독교의 근본 정신에 공감한다. 그는 고민하고 있는 성소수자 기독인들을 위해 우리를 지지하는 교회와 성당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퀴어 기독인들은 이제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다.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많아지고, 신앙적 믿음과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화해시키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동성애자인 목회자가 성직자가 되고, 교회에서 동성 커플이 결혼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런 일들이 가능해지려면 더 많은 퀴어 기독인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나눠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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