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공회신학대학원 총장 캐서린 랙스데일(Katherine Ragsdale)



김종서 (‘13, 석사과정 1학년)



성공회신학대학원(EDS : Episcopal Divinity School)은 미국 내 성공회 계열 신학교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학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성 소수자 이슈와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인 대응을 벌이고 있는 학교로도 유명하다. 퀴어 신학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패트릭 쳉(Patrick S. Cheng) 교수가 재직 중이며, 다양한 학생들이 LGBT 이슈와 관련한 학문적, 실천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본교의 총장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2010년 자신의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린 캐서린 랙스데일 박사인데, 그녀는 흔쾌히 본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녀의 결혼에 대한 기사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할 것. http://www.advocate.com/news/daily-news/2011/01/06/two-lesbian-priests-tie-knot)




종서: 한국의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대신하여 이번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총장: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내가 종서 씨 연령대였을 때만 해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죠. 결혼은 고사하고, LGBT들은 집에서 쫓겨나거나 직장을 구할 수 없는 등 대단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들이 참 급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사실 제가 학교의 총장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교회의 공식적인 축복 속에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놀랍기만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국제적인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건 분명히 몇 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빠른 변화입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보자면, 이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스토리 텔링’ 덕분이었어요. 수년에 걸쳐서 교회와 직장, 친구 관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 스토리 텔링이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텔레비전입니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게이 캐릭터들이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어가기 시작했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드라마 ‘윌과 그레이스(Will and Grace)’입니다. 게이 캐릭터가 텔레비전에 등장할 수록 사람들은 우리를 외계인 보듯 하던 습관을 점점 버리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정적인 동조가 생기면서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것이 빠른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미국 사람들은 텔레비전 없이 못 사는 부류거든요.



종서: 한국에서도 2010년도에 게이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냈지요. 하지만 다수의 보수 단체에서 ‘며느리가 남자라니!’ 라는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워 드라마에 반대했었죠.


총장: 이곳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이제는 많이 안전해졌지만, 몇 달 전 미국 프로 스포츠계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미식축구 선수의 경우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고, 아직도 농촌 지역이나 미국 남부(소위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 불리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근거지)에서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종서: 미국에서도 LGBT 인권 향상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군요. 그렇다면 미국 성공회의 상황은 어떤가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단 중의 하나이니만큼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총장: 사실은, 소수의 교구(diocese)가 불과 몇 년 전에 여성 사제 서품을 허가했고, 또한 소수의 교구는 아직도 LGBT 사제 서품을 거부하고 있지요. 사실 1976년에 열린 제65차 교단 총회(the 65th General Convention)에서 여성의 서품이 통과되었고, 교회 안에는 아직도 그러한 합의를 거스르려고 하는 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제가 사제 서품 과정을 밟고 있었던 80년대, 제가 속한 교구에서는 여성 사제 서품을 놓고 그들이 여성이라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 지원자들이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를 둘러대었죠.

  마찬가지로 1976년 총회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항목을 통과시켰음에도, 아직도 LGBT가 사제로 서품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는 지역들이 존재하고,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강한 반대를 표시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인 측면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지지하지만, 교회 내의 도덕적 측면에서는 그들의 서품이나 결혼을 용납할 수 없는 이중성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죠.

  사실 많은 이들이 여성 서품과 LGBT 사안에 관련한 교회(미국 성공회)의 미온적인 자세에 반발하여 교회를 떠났습니다. 미국 성공회는 어찌 보면 일정한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행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나 감리교, 그리스도의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 등에서 이미 20세기 초반에 실시한 여성 성직자 안수는 그들에 비해 40년이나 뒤에 시작하였고, 정치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성공회보다 더욱 진보적인 교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BT 이슈에 있어서 선도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많은 투쟁들이 대단히 힘든 과정을 거쳐 성취되었고, 그를 통해 여러가지 전략과 대응방법들을 숙지해 두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사제 서품도 교회의 허락을 받고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고, 1974년에 열한 명의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행동을 취한 이후에 공식화되었거든요.

  동성애자 서품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주교로 선출된 진 로빈슨이 있기까지 이미 많은 이들이 교회의 승인과 상관없이 (비)공식적으로 일반 사제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어떠한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기 전에 일단 일을 시작했던 이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를 교회가 그 이후에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종서: 그런데 제 생각에, 한국에서 특히 동성애자 이슈와 관련하여 누군가가 교회에 도전한다면, 그는 제명이나 출교를 당하지 교회에서 고려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아요.


총장: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여성 사제/동성애자 관련 사안은 많은 이들이 수많은 시간에 걸쳐 압력을 넣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결국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개인사에 따르면, 80년대에는 제가 여성이라서 서품이 불가능했고, 90년대 초까지는 제가 동성애자라서 서품이 ‘여러 번’ 거부당했죠. 그런데 저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속에서 성 정체성을 불문하고 저와 연대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았고, 여러가지 압력과 질문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는 당신들의 집이기도 하지만, 나의 집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나를 내쫓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을 그저 고집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요? 이러한 내부적인 움직임과 투쟁들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교회와의 타협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종서: 총장님은 방금 전에 교회 내부적인 “연대”를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성공회 안에 자신의 독특한 (queer)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인가요?


총장: 미국 천주교회에서 제일 먼저 디그니티(Dignity)라는 LGBTQ 연대가 생겨났고, 성공회에서도 1974년 인테그리티(Integrity)라는 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지금은 성공회 내부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동성애자 이슈가 당연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관계로 이 단체의 위상이 약간 흔들리는 것 같지만, 이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수많은 곳으로부터 자금과 인원이 모였고, 많은 일을 했죠.



종서: 교회 내의 비공식적 단체였는데, 성공회 지도부로부터 해체 압력이나 파면의 위협은 없었나요?


총장: 교회가 권위를 내세워 그러한 일을 저지를 방법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직접 만든 단체도 아니고,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결사의 자유’ 자체를 막을 수는 없죠. 또한 이건 일종의 문화적 유산일지도 모르겠는데요, 미국인들은 양당 체제에서 자라나고, (물론 다음의 생각이 붕괴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공동체가 자신의 신념에 근거하여 하나의 대의(국가, 교회 등)를 추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작정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편을 쫓아내 버리지는 못하는 거죠.



종서: 그럼 성직자가 되고 난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총장: 아마 제가 EDS에 오기 전에 14년 동안 있었던 성 다윗 교회에서의 경험을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교회는 시골에 있었는데, 보수적인 성향을 띨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많은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모였어요. 그리고 신자들은 의심이나 선입견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고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한 번은 여자 아이를 입양한 레즈비언 커플이 왔었어요. 그런데 어떤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이건 불공평해! 왜 쟤만 엄마가 두 명이야!”

  하지만 그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는 내가 과연 교회에서 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사실 성공회 내부에서는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선 ‘Don’t ask, don’t tell’ 식의 관념이 지배적이었고,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 87년 이후 6년 동안 저는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없었어요. 졸업하고 나서 저는 커밍아웃을 했고, 저의 서품을 담당하는 주교님이 저의 성적 지향을 문제시했기 때문이었죠.



종서: 사실 한국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단체와 인사들이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을 고쳐야 한다는 ‘치료적인’ 접근을 추구하기도 하는데요.


총장: 물론 지금은 그러한 입장이 거의 수그러들긴 했지만, 미국에서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러한 목소리가 많이 울려 퍼졌습니다. 사실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려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대단히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와 동성애자로 몰려 사회적으로 처단당했고,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죠.



종서: 바로 그것이 이번에 부산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에 대하여서는 물론이고 기독교계의 많은 보수적인 단체가 LGBT 이슈에 반대하는 방식입니다. 공산주의와 동성애를 연결시키는 것과 같이 말도 안 되는 논리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무분별한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극복되어 왔습니까?


총장: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상황에서는 사회의 현실에 철저히 기반하여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이니만큼 ‘자본주의’의 맹점을 전략적으로 사용했던 것이죠. 많은 게이 남성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다른 기혼 남성에 비해 돈이 나가는 경우의 수는 적고, 반대로 자신에게 투자할 기회를 더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게이 남성이 집단화되었들 때, 이들은 기업에게 무시하지 못하는 소비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의 동성애자 커뮤니티들은 반동성애적 성향을 보이거나 차별적인 시류에 영합하는 기업들의 제품들에 대한 구매 거부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업들은 발빠르게 자신들의 상품들과 판매 전략을 중립적이거나 혹은 LGBT 친화적으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가 사회적인 시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아예 동성애자들을 타겟으로 한 상품들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또한 이러한 기업의 소비자 인식은 기업 내부의 노동자 인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LGBT들을 자신들의 소비자로서 인정한다는 것은, 곧 기업 내 근로자들의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모든 LGBT 근로자들을 쫓아내 버리겠다고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겠지요? 따라서 기업들에서는 성 정체성과 상관 없이 모든 근로자의 파트너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가족에게도 이성애자 근로자 가족에게만 주어졌던 복지 혜택을 확대 적용하는 등의 조치가 계속해서 취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인권적인 측면에서도 당연한 처사이지만, 현실적으로 따져 봤을 때도 기업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 걸쳐 경제적인 활력을 주는 길이기에 계속 진행되어 왔던 것이고, 결론적으로 전반적인 변화의 물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종서: 그럼 마지막으로, 한국의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 드립니다.


총장: 처음에 말했지만, 저 역시도 지금 제가 맞이하고 있는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변화는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상황에 맞는 완벽한 처방전을 제가 콕 집어서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함께하심을 기억할 때, 분명히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일단, 제도와 권위의 이름으로 LGBT를 심판하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이것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아는 것’, 그 깨달음의 시작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너무 큰 장애물들을 바라보고 지레 절망하지 마세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만큼 한 걸음씩 내딛다보면, 분명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아, 내가 이만큼 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서: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1. 서연
    2013.11.07 17:10 [Edit/Del] [Reply]
    로빈슨 주교 다큐에서 이 분 결혼식 장면 본 것 같네요~:)
    이번 웹진 기획도 아주 훌륭!!

  2. 여정훈
    2013.11.17 20:31 [Edit/Del] [Reply]
    "주교 관구"는 자연스럽지 않은 번역이네요. Province는 관구, Diocese는 교구가 실제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 김종서
      2013.11.18 02:54 [Edit/Del]
      여정훈 님, 지적 감사드립니다!
      제가 장로교회 출신인지라 한국 개신교 세팅에서 교구로 번역되는 'parish'와 주교가 착좌한 'diocese'를 어떻게 구분할지 몰라 저런 어색한 번역을 만들어 냈네요. 편집진 측에 수정 부탁했습니다. :)
  3. 여정훈
    2013.11.22 16:48 [Edit/Del] [Reply]
    수정 감사합니다! parish는 지역교회를 의미하는 단어로, 천주교에서는 '본당', 성공회 에서는 '전도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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