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휘아 (동성애자인권연대)
봄이 왔다. (왔겠지. 안 왔음 말고) 뭔가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날씨는 참 좋은데 어딜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막상 할 일 없이 늘어질 때, 이 사람의 음악을 만나보면 어떨까. 충분히 당신을 꿈의 세계로 데리고 갈 수 있다.
오늘은 아이슬란드 출신 밴드 Sigur ros(시규어 로스)의 보컬인 Jon Thor Birgisson(욘 쏘르 비르기손)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어휴, 이름이 길다고 투정 부리지 마라. 이 남자 이래뵈도 별명 있다. ‘Jonsi’(욘시)다. 참고로 이름에 관한 썰을 좀 풀어주고 싶은데 ‘Sigur ros’라는 이름도 사실 영문 표기이며 원어민 발음은 각자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자. 참고로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이름 짓는 방법이 참 웃긴데 사람 이름을 보면 거의 대부분 남자는 "손(son)", 여자는 "도티르(dóttir)"라고 끝난다. 그 이유는 성(姓)이 대대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남자면 ~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son, 여자면 ~의 딸이라는 의미의 dóttir가 붙기 때문에 이렇다. 이거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잖아!
밴드 보컬이니까 일단은 밴드 이야기부터 하자. (어째 지난번과 레파토리가 비슷하다고 느껴지겠지만 그건 기분탓입니다가 아니라 맞음.) 시규어 로스는 1994년에 결성됐고, 1997년에 [von]이라는 앨범으로 세상에 나왔다. 몇 번의 멤버 교체는 있었지만 현재는 보컬/기타/키보드/하모니카/밴조의 욘 쏘르 비르기손(Jon Por Birgisson), 베이스기타/글로켄슈필의 기오르크 홀름(Georg Holm), 드럼/전자키보드의 오리 포들 디러손(Orri Pall Dyrason)으로 구성되어있다. 밴드 이름을 당시에 어떻게 정했냐면 밴드가 결성된 날에 태어난 욘시의 여동생 이름인 Sigurrós에서 유래하였다. Sigurrós의 뜻은 바로 ‘승리의 장미’다.
(이건 2012년 사진이고 탈퇴한 멤버가 포함된 사진이니 알아서들 보자. 헤헤.
여기에서 욘시가 누구냐면... 이따 알려줘야겠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6&aid=0002110443)
시규어 로스는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준다. 영국 밴드 Radiohead(라디오헤드)도 그들의 음악을 듣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한 바 있으며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Bjork(비요크), Cold play(콜드 플레이)의 크리스 마틴, Beck(벡), David Bowie(데이비드 보위)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자 이렇게 극찬이 쏟아지니 이쯤에서 음악 하나 들어보자. 참고로 이 곡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각종 CF에서 종종 쓰였다. 필자의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이며 4년째 쓰고 있다.
Sigur Rós – Hoppípolla <4집 앨범 ‘Takk...’ (Takk...는 아이슬란드어로 ‘고맙다.’ 정도의 뜻이 되겠다. 영어로는 Thanks 정도로?)>
Sigur Rós – Sæglópur <역시 4집 앨범 ‘Takk...’>
이쯤되면 알겠지만 라이브가 엄청 기대되는 밴드다. 필자는 2013년 5월 19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내한공연을 가서 봤는데 Hoppípolla 부를 때 눈물 찔끔 흘렸다. 무대 연출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니 다음에 혹시라도 시규어 로스가 내한하면 꼭 가보길 추천한다. Sæglópur 부를 땐 해저를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었으니. 꺄하하하하! 그 갈증이 느껴진다면 이걸 보도록.
위 영상은 Heima(헤이마)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라이브 영상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7년에 감독인 딘 데블로이스가 만들었다. ‘집으로’ 혹은 ‘집에서’의 의미인 ‘헤이마(Heima)’는 2006년 『Takk…』의 월드 투어를 마치고 아이슬란드에서 가졌던 시규어 로스의 투어 필름이다. 세계투어를 마친 시규어 로스가 아이슬란드 최북단에 가까운 아우스비르기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아이슬랜드 각지에서 오직 입소문을 통해서만 관객을 받아 진행된 무료 열린 음악회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이 영상 보다가 부러워서 모니터를 부수진 말자.
(출처: 다음 영화정보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4886
아무튼! 오늘의 주인공인 욘시에 대해 알아보자. 1975년에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몸이 아파서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그는 채식주의자이며 2009년에 공식홈페이지 Q&A 게시판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사실 이 소식을 듣고 난 조금 의아했던 게 커밍아웃이라는 게 엄청나게 큰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욘시 정도 되는 스타라면 공식석상에서 기자들 앞에서 할 줄 알았는데 너무 깔끔하게 Q&A 게시판에서 해버렸으니... 또르르. 뭔가 나에게 커밍아웃의 정석과도 그런 광경을 깬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이글루스 블로그 http://myloxyloto.egloos.com/v/1114703)
사진에서 보다시피 기타에 첼로 활로 활을 긁는 연주를 하는걸로도 유명하다. 그의 독특한 창법도 한 몫 하지만 독특한 연주방식, 다양한 악기 사용 그리고 ‘희망어’라고 하는 걸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 희망어의 탄생 배경은 욘시가 시규어 로스 라이브 공연 리허설 도중에 가사 종이를 잃어버려서 아무렇게나 부르게 된 게 시초다. 위에 세 영상을 보여줬는데 그게 희망어다! 희망어라는 게 딱히 문법에 맞게 단어로 나열된 문장이 아니라 그냥 흥얼흥얼 거리는 정도라고 이해하는 게 좋다. JAZZ에서 말하는 스켓(뚭뚜루루루 스밥바 이런거...)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2002년에 나온 정규 앨범 < ( ) >은 모두 희망어로 불렀다. (아, 참고로 앨범명이 그냥 괄호다.)
욘시는 시규어 로스 활동 외에, 시규어 로스의 앨범 디자인을 맡았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그의 파트너인 알렉스 소머스(Alex Somers)와 함께 아트북 한정본을 발간하고, 2009년에는 ‘욘시 앤 알렉스(Jonsi & Alex)’라는 이름으로 앨범 [Riceboy Sleeps]를 발표했다.
(대표곡 ‘Happiness’)
이 둘의 러브스토리 썰을 잠깐 풀자면, 욘시의 미국 순회 공연 중 둘이 만나게 됐는데 원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알렉스의 형이 욘시에게 자기가 만든 씨디를 줬고 그걸로 에프터 파티에서 욘시가 알렉스 형에게 말을 걸었는데... 멋진 알렉스가 옆에 있었다. 욘시는 그 자리에서 알렉스에게 한눈에 반하게 됐고 나중에 인터뷰에선 “내가 본 남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라고 까지 했다. 하지만 욘시는 알렉스가 이성애자인 줄 알고 다가가기를 망설였고 욘시가 알렉스보다 9살 연상이라는 것도 한 몫 했을거다. 결국 우물쭈물 하다가 미국 투어를 끝내고 다른 나라로 갔다. 그 뒤로 알렉스를 잊지 못해 욘시는 알렉스의 형을 계속 컨텍하기에 이르렀고 욘시는 “어차피 이왕 이렇게 된거 미국으로 가자!” 해서 알렉스를 낚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갔고 근처 괜찮은 술집에서 술김에 말해볼까 했지만 알렉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욘시가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갔던 것. 그렇게 그 둘은 호텔에서 나오지 않았다. 상상은 알아서 하길.
(욘시와 알렉스의 본격 염장샷 되겠다. 사진 출처: http://mellamolaon.blog.me/20201264981)
욘시는 밴드 멤버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각자의 개인생활로 잠시 돌아갈 것을 결정, 시규어 로스는 잠정적인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욘시는 밴드가 잠시 쉬는 동안 본인의 창작활동에 눈을 돌리게 되고, 틈틈이 작업하였던 곡들로 본인의 솔로앨범 [Go]를 2010년 4월, 전세계에 선보였다. 한국에도 내한했지만 필자는 아쉽게도 가질 못했... 비요크(Bjork),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 등과의 작업으로 잘 알려진 니코(Nico Muhly)가 사운드 메이킹을 맡고, 인터폴(Interpol)과 머큐리 레브(Mercury Rev)의 앨범에 참여했던 피터 케이티스(Peter Katis)가 욘시, 알렉스 소머스와 더불어 앨범의 프로듀스를 맡았다. 앨범 [Go]는 타임즈 紙, 스핀 매거진와 각종 음악 사이트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으면서, 그의 천재성과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을 증명하였다. (부분 출처: 스핀 매거진)
(앨범 ‘Go’의 타이틀곡인 Go Do)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Go’에 담겨있는 음악 중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는 Boy lilikoi)
어떠한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악 또한 무엇으로 설명하기 힘든 건 아무래도 긴 겨울을 지나 피는 새싹과 꽃과 같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까지 그 힘듦을 욘시는 잘 아는 것 같다. 단순하게 희망 팔이 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 속에 있는 희망을 노래하는 건 아닐까하며 욘시에 대한 정신없는 소개를 마친다.
Ps: 필자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기간 내내 들었던 앨범이 바로 시규어 로스다. 이렇게 3월의 따뜻한 봄날에 보냈을 때를 떠올리며 시규어 로스 앨범을 추천하고 싶은데 그게 바로 <Takk...> 와 <VON>, <Ágætis Byrjun>가 있다. 앨범 통째로 들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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