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련 칼럼을 준비하고 막 넘기려는 찰나에 용산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1명이 극한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금 한국은 제3공화국이나 제5공화국에서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성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더 큰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언제 지배 권력이 주류의 잣대를 들이밀며 우리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위협을 가할지 모를 일이다.
나는 조용히 이번 칼럼을 덮고 이번에는 공란으로 비워둘까.. 아니면 소설 한편을 쓰고도 남을 이 시대의 작태를 다시금 되짚어 카타르시스가 흐드러지도록 욕지거리를 해볼까.. 심히 고민을 해보다가 2009년을 시작하는 칼럼만큼은 그 테마를 사랑으로 잡아 보려한 처음의 글을 그냥 싣기로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사랑이란 감정 앞에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은 이유기도 하겠지만, 이 먹먹한 시절 사랑이란 힘으로라도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맘이 간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칼럼은 인생선배로서의 어드바이스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태성
나는 언제나 떠나가는 것, 영원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닫아걸고 지내왔다.
대여섯 살 무렵, 철부지 나이에 어머니는 친척집과 갓 새댁이 된 누나네에 두세 달씩 돌아가며 나를 두고 일을 하셨다.
하루 온종일 어머니가 보고 싶어 마음이 에여서는 외숙모나 이모.. 혹은 갓 새댁인 둘째누나에게 어머니가 언제쯤 내게 나타나 줄까를 묻고 또 묻곤 했다.
그렇게 한두 달은 여기서, 또 서너 달은 저기서 나를 두고 떠나던 엄마의 뒷모습은 처연한 저녁놀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언제나 떠나갈 엄마에게 하룻밤만이라도 내 곁에 머물길 빌고 또 빌었지만.. 자고 일어난 새벽녘이나 아침햇살에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떠나간다는 것...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영원히 내 곁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너 살부터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담을 쌓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에 벽을 쌓았다.
이 벽이 허물어지면 아마도 나는 저 끝 심연의 허무 속으로 사라지리라..
딱 이만큼만 나를 보여주고, 딱 이만큼만 내 슬픔을 이야기하고, 딱 이만큼만 내 거짓과 내 진실을 드러내고. 딱 이만큼..더 이상은 안돼..그래야 상처받지 않거든..
그렇게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언제나 기어이 쌓았던 벽이 무너지는 일 하나가 내게도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의 감정...
사랑을 할 때 나는 벽을 쌓아야 한다는 내 인생의 명제를 잊고 또 잊었다.
나는 내 모든 걸 걸고 사랑을 했다.
전력을 다해. 내 목숨을 걸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손찌검을 하고. 목 놓아 울고...
나는 없었다.
사랑을 하면서부터는 그렇게 견고히 쌓아두려 했던 벽속의 나는 온데간데없어 졌다.
그렇게 사랑하지 않기를.. 또 그렇게 부서져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내 모든 걸 소모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언제나 사랑 앞에서 나는 나를 잃고 휘청거렸다.
거의 20대 중반이 다 되서야 찾은 정체성.. 그래서 더 절실했을까?.. 다른 이들이 적금과 보험료와 퇴직금을 칼처럼 갈아놓을 시간.. 그렇게 20대 중후반과 서른 초반의 시간이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꿈을 찾아 꿈을 꾸듯 사라져 버렸다.
사랑은 없어..
서른이 지나 나는 말했다. 내가 모든 걸 걸었던 사랑이란 허무한 가치의 부질없음을.
그리곤 다시는 그렇게 치열하고 부대끼고 질퍽대는 사랑은 하지 않겠노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서른 대를 넘어갔다.
하지만
서른이 지나고도 여섯 살에 사랑을 시작했다. 누구도 참지 못했던 나를 참아주고 감싸주는 사랑 앞에서 나는 다시 흔들리며 불안한 심연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인생의 진실이 있을까.. 있다면 사랑은 과연 어떤 진실일까..
나는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그리고 감사드린다. 아직도 내게 다시 모두를 걸 열정이 남아있음을...
그리고 조용히 되뇌어 본다. 이 힘든 삶이란 시간의 이름을 그래도 버텨낼 수 있는 건 사랑이란 감정이라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 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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