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태성의 Melancholy

하늘로 오르다

by 행성인 2008. 7. 30.




  길지 않은 시간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갔고 이제는 죽음이란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이 별다른 감흥과 놀라움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C군의 부음 앞에서 적잖이 놀랐고 가슴이 아렸다.


  작고 여린,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던 소년은 끝내 완벽한 소녀가 되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
히 스물 몇 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타살이란 점과 그것이 일하던 술집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손님에 의해서였다는 점, 그리고 살해를 당한 후 불에 타 시신이 훼손되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기억하는 C군와의 만남은 몇 해 전 인권캠프를 준비하면서였다.

  조그마한 키에 무척이나 말랐고 눈이 예쁜, 말수가 별로 없던 눈에 띄는 아이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나는 그가 감염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그의 스무 살 남짓의 나이가 무척이나 마음 아팠고, 감염인으로 살아가야 할 그의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C군의 성지향이 트랜스젠더였다는 건 이번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남성에서 여성이 되고자 하는 여느 트랜스젠더들처럼 그는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유흥업소 일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트랜스젠더의 현실은 생산과 소비에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외면 받는다. 노동을 할 수 없는 현실은 그들을 자연스레 유흥업소 등지로 흘러들게 만들고 음성적인 그곳에서 그들의 인권은 다시 상처받고 마음껏 유린당한다.


  거기에 더해 C군는 이 사회에서 감염인이라는 또 다른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성소수자 감염인이라는 편견과 소외의 정점에서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은 힘없는 작은 소년이 감당해야 했을 수많은 아픔과 상처에 나는 숨이 막힌다.


   C군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은 일본이었다.

  한국에서 성전환 수술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C군은 성기 성형비용만 1,000만원, 거기에 가슴과 기타 여성이 되는 의료비용을 합쳐 3,000만원 가까이 되는 비용을 혼자 마련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하고 싶던 메이크업 공부까지 포기해야했던 C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본행을 결심한 것은 어쩌면 그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취업비자 없는 나이어린 한국인 트랜스젠더라는 신분은 이미 범죄의 대상으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차를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점을 이용했던 것도 C군처럼 수술비로 한 푼이 아쉬운 트랜스젠더들에게는 빠져들기 쉬운 유혹이 되고 남았을 것이다.

  C군의 죽음 이후,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일본정부의 태도와 자국민이 죽었는데도 아무런 열의도 해결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한국정부의 태도는 그런 C군의 처참했던 상황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C군의 천도제때에는 많은 친구들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소외 받았던 그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장소에는 절과 성당이 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부처님과 예수님까지 함께 하다니.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참았던 슬픔이 복받치며 올라왔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외로울 일도 힘겨울 일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가길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애도였다.


  어두운 저녁, 을씨년스런 수많은 검정색의 상복들 사이로 C군의 영정과 소지품들이 붉은 불꽃을 보이며 타 올랐을 때 슬픔은 최고조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친구들의 울음소리와 가브리엘 형을 부축하며 따라오신 연로한 수녀님의 눈물을 보며 나는 C군을 죽인 범인이 과연 그 일본인인지, 아니면 이 한없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의 모순과 편견인지 묻고 또 물었다.

  의미 없는 가정이겠지만 유흥업소외에 돈을 벌수 있는 곳이 있었더라면, 개인의 성 지향으로 인한 차별의 무게가 그 개인에게만 떠 넘겨지지 않고 국가적인 이해와 지원이 병행되었더라면, 오직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하는 현실의 편견과 소외의 벽이 없었더라면, 경제적인 불안감이 그에게 없었더라면 C군은 그렇게 쓸쓸히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슬픔은 지나가고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다.

  감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죽어서까지 손가락질 받을 하등의 이유는 없다. 모든 이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인 면이 있고 그것은 논의 될 수도 또 질타를 받아서도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감염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굴레를 씌우는 일인지, 또 얼마나 높은 벽과 깊은 상처를 남기는 편견인지, 아직까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차갑고 두렵다.

  나는 C군 만큼 예쁘고 어린 친구들에게 슬픔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들에게는 편견이 가져오는 유, 무형의 폭력과 몰이해가 결코 죽음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기를, 살아남아 자신들이 세상에 온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고 만들어 가기를, 더불어 세상의 모든 치기어린 편견들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성소수자를 다룬 얼마 되지 않는 한국영화 중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중 한 장면의 대사를 인용하며 C군에 대한 애도의 글을 끝맺으려 한다.


 여자가 되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 남자들과 맨살을 부대끼며 씨름을 하는 주인공 동구는 그
렇게 까지 여자가 되고 싶은지 물어오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열심히 살아보려 자신안의 여성을 찾아 노력했던,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C군에게 마음속 깊고 깊은 진심의 애도를 보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C군... 육우당과 오세인씨와 함께 그곳에서 행복하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성 _ 동성애자인권연대 걸음[거:름] 활동가



닉네임을 C군으로 바꾸기까지

 

웹진이 홍보된 후 많은 사람들이 동인련 웹진 ‘랑’을 찾아주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동인련 한 회원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오르다’ 칼럼 내용에 언급된 닉네임이 커뮤니티에 너무 많이 알려진 상황이고, 그 친구가 현재 산 사람은 아니지만 죽기 전 HIV 양성이었고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던 친구들이 연락이 온 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있었지만 C군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먼저 죽어서도 HIV양성이라는 사실과 트랜스젠더라는 사실 때문에 C군의 닉네임조차 언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C군이 HIV양성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이 사회가 높게 쌓은 HIV/AIDS의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칼럼을 쓴 태성님과 의견을 나누었고 최종 이니셜 처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C군의 삶을 조금이나마 아는 분들이라면 이니셜 처리에도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망자가 바라는 사실이 무엇이었는지는 친구들이나, 동인련이나 감히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성소수자 HIV감염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커뮤니티에서 배제될 이유가 전혀없고, 오히려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칼럼은 C군이 죽기 전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C군의 삶의 조건과 죽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고, 얼마나 분노스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를 순수하게 추모하는 의미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친구 분들의 불필요한 오해가 없길 바라며. 앞으로 더 좋은 내용으로 보답드릴 수 있는 웹진 ‘랑’이 되겠습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랑’

 

* 칼럼 해당 칼럼, 웹진 메인 글, 홍보 글 등을 수정하였습니다.
* 해당 칼럼 댓글도 수정하였습니다.  작성해 주신 분들의 이해 부탁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원 이야기 > 태성의 Melancho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쥐 존재의 갈증  (6) 2009.06.01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 2009.01.30
봄날은 간다  (5) 200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