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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가족/성소수자 부모모임

게이 아들을 둔 엄마가 성소수자 부모님과 자녀에게 드리는 글

by 행성인 2014. 7. 17.

지인(18살 동성애자 아들의 어머니, 성소수자 부모모임)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을 때.


아들은 해피보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항상 미소짓는 밝은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엄마를 웃게 해주던 아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습니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힘들어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저는 학교를 옮겨 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 아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마음이 여리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년 반 전 16살의 해를 넘길 무렵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머릿속이 멍한 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아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마음에 조급해졌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고, 남자애들과 친하고 싶은 마음을 착각한 거라고, 아이의 친구 탓도 했다가, 어릴 때 얼마나 씩씩했는지 사진도 보여주고,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저는 아이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세상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막아야 된다는 생각만 할 뿐, 우리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들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이었습니다.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여자의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닌지,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힘들게 다닐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힘들게 한 녀석들을 혼내주었어야 한 건 아닌지, 남자다운 스포츠를 더 시켰어야 했던 건 아닌지. 이후, 전 동성애에 관한 영화와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동성애자로서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또 다른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아들이 혼자 괴롭게 보냈을 세월들을 엄마로서 알아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들을 고치려는 마음에, 결국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말로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그 두 번째 죄책감으로 앞으로도 평생 미안해할 것입니다. 이러한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던 저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찾아갔고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었습니다. 매달 저와 같은 부모님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항상 힘을 얻습니다. 또한 우리 아이와 비슷한 동인련 회원들을 보면 친근감이 느껴지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 희망도 생깁니다. 저는 저의 부모님과 형제와 친구들에게 모두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말했고, 여전히 제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전 아들이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 성소수자 부모님들께 - 우리가 걱정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고통보다, 우리 아이들이 갖는 더 큰 고통은 부모와 가족들이 주는 상처와 편견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막아야 된다는 착각들이 정작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옥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모님들이 저의 두 번째 죄책감을 갖게 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결코 어리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도 부인하며 괴로움으로 수많은 세월을 홀로 감당해내었고, 마침내 자신을 인정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며 살아가려고 하는 용기 있는 자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 성소수자 자녀분들께 - 부모님들이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고 막으려고만 하더라도, 그건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만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혐오하는 말들, 상처가 되는 말들, 모두 새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동안 자녀가 혼자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왔고 고민해왔는지 부모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젠간 인정해주고 북돋아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힘을 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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