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 산 - 그래, come

2014. 11. 16. 20:56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長篇小說

 


金 飛



 

1. - 그래, come 

 

  

  우리를 가로막은 건, 가루로 그려진 하얀 선이었다. 옆에 사람을 곁눈질하면서도 서로를 마주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결승선만 바라보았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지만,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선 가까이 발을 딛기 위해 모두 안간힘 썼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과장된 웃는 모습뿐이었는데, 나는 그때의 내가 겁에 질렸다는 걸 스물이 훨씬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말대로 항상 어깨를 활짝 편 채 걸었고, 선생님의 질문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 대답했고, 답을 모르더라도 일단 손부터 들고 생각했다. 맞고 틀리고는 나중 일이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준비물들을 두 개씩 챙겼고, 착한 학생이 되려고 항상 선생님 가까이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게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은 윤후산, 나는 그때 하얀 선 앞에 늘어선 열 살짜리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일등상은 겨우 노트 다섯 권이었지만, 팔목에 찍힌 보라색 도장을 엄마 앞에 내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멋지다, 우리 아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교사가 호루라기를 입에서 빼내 화약총을 머리 위로 올리면 총소리가 울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온 힘을 다 해 결승선을 향해 뛰어야한다. 밴드부 음악 소리가 하늘을 채웠고, 응원으로 갈라진 아이들의 목소리는 구호처럼 울려 퍼졌다. 이제 나는 우승 깃발만을 생각하며 트랙 위로 몸을 내밀어야한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길고 긴 찰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지워지는가 싶더니 !’ 화약총이 터졌다

  온 힘을 다해 나는 다리를 뻗었다. 친구 놈의 충고대로 이를 악물고 턱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모가지를 길게 빼며 흙바닥을 찼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몸짓으로 턱 밑이 덜그럭댔다. 호흡이 턱 밑까지 찼고, 내 숨소리가 내 귓속을 채웠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힘을 주고서 눈을 부릅떴는데, 하늘이 보였다

 

 빨간 하늘이었다. 으깨어진 복숭아처럼 연분홍의

 

 저녁노을이 번졌거나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이 비췄던 건지도 모른다. 호흡이 가빠진 내 허약한 두 눈이 세상의 색을 잃었던 건지도 모르고, 여기 이곳이 나를 향해 종용하던 포기의 빛깔이었는지도 모른다. 빨개진 하늘을 보며 뭐지?’ 그랬는데, 달음박질 하던 두 다리가 조금씩 느려졌다. 나는 그대로 트랙 중간 즈음에 멈춰서고 말았다. 육십 미터 근처였을 것이다

 응원석에서 고함과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따라 뛰던 담임이 빨리 뛰라고 소리 질렀다. 그의 얼굴도 하늘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서서 멀어져가는 다른 아이들의 등짝만 바라보았다. 열심히 씰룩이는 그들의 엉덩이를 세었고, 한 놈씩 결승선으로 뛰어드는 몸짓을 봤다. 두 팔을 높이 올려 환호하기도 했고 주저앉기도 했으며, 쓰러지기도 했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나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참지 못한 선생이 트랙 안으로 뛰어들어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왜 뛰어야 하는 지조차 나는 제대로 들은 적 없었다. 갑자기 슬퍼졌다. 슬퍼서 슬픈 건지 무서워서 슬픈 건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깔깔대며 웃는 얼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이 내 목덜미를 잡아 끌어 내렸고, 나는 트랙에서 끌려 내려온 후에도 한참이나 구석에 서서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나에게 이제 엄마와 둘이 살자고 했다. 물론 그때에도 아무도 내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결국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약은 먹었고?” 

 

 나는 더 이상 그녀 앞에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 먹었어요.” 

 

 그녀에게 건네받는 약을 먹지 않은지 벌써 여러 해 째였다. 달리기를 끝내지 못한 나 때문에 그녀는 여러 의사들을 찾았다.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달리기를 완주하지 못하고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학교에 가더라도 수업을 듣지 않았고, 수업을 듣더라도 고개만 숙인 채였다. 고개를 들고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갑자기 눈물을 쏟곤 했다

 중학교 삼 년 고등학교 삼 년을 마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출근하는 길에 나를 깨워 학교에 내려다 놓았고, 퇴근하는 길에 학교까지 찾아와 나를 수거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가 내미는 밥을 열심히 먹고 잤고, 먹고 잤고, 먹고 잤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위를 했다. 그때 나에게 유일하게 살아있던 건 발기한 성기뿐이었다

 ‘대학교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가 말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언어들이 나를 새롭게 만들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건 자유란다, 그건 즐거움이란다, 그녀가 말해준 자유와 즐거움을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공부가 쓸모 있긴 했다. 대학 시절 내 동기들은 나를 말할 때 즐겁고 자유롭다고 했다. 즐겁고 자유로운 놈이라고 해놓고 친구들은 멀어졌다. ‘너 때문이잖아.’ 나는 나에게 말했다. ‘내 탓이라고?’ 너는 너에게 말했다. 시발, 존나 비겁한 새끼. 도저히 그 모욕을 견딜 수 없어, 그 놈을 부여잡고, 나뒹굴고, 그 새끼를 향해 커터 칼을 꺼내 휘둘렀는데, 사람들은 그걸 자살 시도라고 말했다

 스무 살이 되었고, 어른이 되었고, 스물아홉이 된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말했는데, 나를 위해 하는 말인지 스스로를 위해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들끼리 말하고, 자기들끼리 즐겁고, 자기들끼리 병이었다. 약을 먹어야하는 건 나였다.  

 

 “어디 가는데?” 

 

 걱정과 불안이 뒤엉킨 그 목소리가 나는 싫었다. 미안해서 싫은지도 몰랐다. 그때 달리기를 끝까지 끝내지 못해 미안했기 때문에

 

 “어디 가나?” 

 “서울요.” 

 “친구 만나나?” 

 

 친구는 그녀의 바람이었다. 친구를 가질 수 없는 나를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오는데?” 

 

 대답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나섰다. 슬리퍼도 신지 못하고 그녀가 나를 따라 나왔다

 

 “우산은 가지고 가나? 비 온다는데약도 가지고 가지? 자기 전에 전화할 거고?” 

 

 모두 그녀의 바람들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그렇게 내게 듣고 싶은 말이나 바람들을 혼자서 길게 늘어놓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문 안 쪽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다. 올해로 벌써 19년째였다



 책은 나에게 피난처였다. 문을 잠그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혼자 있으면 나는 불안이고 걱정이었지만, 책을 보고 있다고 말하면 모두 안심했다. 엄마에게 미안해서 시작한 책 읽기였지만, 지금은 책이 없으면 숨을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아 불안했다. 책을 든 나는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지금은 그 어떤 이유로도 나에게 출입 금지.’ 

 

 “, 누나. 지금 기차 타고 가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같은 곳으로 도망친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았다. 갇힌 사람들이 갇힌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함께 하는 가치. 사람들은 책이 그런 걸 깨우치게 해준다고 말했지만, 나는 거기까지 동의가 되진 않았다.  

 

 “괜찮아요. 찾아가보죠, . 서울엔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찾아가 볼게요.” 

 

 모두가 다른 이유였겠지만, 비슷한 모양의 것을 들고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걸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숨어있으니 나는 조금이나마 안전해졌다고 믿었다.   

 

 “? 그래요?” 

 

 휴대폰 건너편 목소리는 급하게 문제가 생겨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이미 기차는 출발했고, 나는 5번 객차 1번 자리에 막 책을 폈던 참이었다

 

 “하는 수 없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그냥 다녀오죠, .” 

 

 그녀의 블로그 아이디는 참좋다였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던 건지, 아니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그 역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아이디를 볼 때마다 참좋다는 세 글자가 나는 참 좋았다

 

 “괜찮아요. , 그럼 다음에 봬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책 너머에 숨어 창밖을 봤다. 기차는 벌써 대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아가기에도 끝까지 가기에도 망설여지는 어정쩡한 자리. 왜 나는 항상 그런 자리에 버려졌던 건가 궁금해 하는 사이, 기차는 이미 천안아산 역을 지나 다음 역이 광명이라고 알려주었다. 이토록 속도를 높여 달리는 초고속 세계를 살기엔, 나도 내 생각도 너무 느렸다.  

 

 

김비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