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회원)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4월 회원교육 프로그램 ‘출발! 장애인권여행’이 지난 4월 3일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장애당사자 삶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장애인 인권과 우리 모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성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필자의 관심을 그저 관심에만 머무르지 않게 할 첫 발걸음이 될 행사라고 생각했기에 그만큼 반갑고 기대도 컸다. 교육에 앞서 나 스스로가 장애인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나의 가장 주된 고민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배려의 경계는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장애인을 마주할 때마다 장애인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의식적으로 떠오르면서 그저 장애인을 보는 행위를 할 뿐인데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동정의 눈빛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자기검열 비슷한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장애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정민구 활동가는 소수자들이 함께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대체로 이 속담이 쉽게 통용되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흔한 집단 내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순간,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나타나는 순간, 정신장애가 있음을 밝히는 순간 이내 배제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별 이전에 아예 존재 자체를 배제 당하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장애인과 성소수자는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여기에 사람이 있다’, ‘같이 살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장애당사자인 동림은 “길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불쌍하다고 하며 심지어 구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쥐어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민구 활동가는 “도와줘야 한다, 불쌍하다,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은 분명 선의일 것이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도와주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분명 굉장히 기분이 나쁜 일이다.” 라고 지적한다.


  강의 중간중간 다양한 영상을 통해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시선들과, 장애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이동권의 보장은 장애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체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 정류장에 도착할 버스가 저상버스인지 미리 확인해야 하고, 그마저도 타고 내리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동안 승객들의 불만 섞인 시선을 받기 일쑤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 리프트를 이용해서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직원의 도움이 필요함은 물론, 타고자 하는 곳의 정 반대에 리프트가 위치하고 있다던지, 두 명 이상의 장애인이 연달아 이용해야 할 경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비장애인의 리프트 접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주의하도록 하는 커다란 벨소리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이동 중 리프트의 고장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는 일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대중교통 말고도 건축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턱은 장애인의 시설 이용을 제한하고, 심지어 흡연권을 행사하는 것에 있어서도 비장애인에게 담배구입을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위축을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장애인의 이동권을 더욱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선진국에 살다 온 외국인이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가 어려운 한국의 모습에 의아해 했다는 이야기도 있듯, 이동권의 제약은 결국 장애인 존재의 비가시화를 부추기고 차별과 선입견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장애 인권침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본 장애인권투쟁의 모습들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절박하게 요구되었던 것이 이동권 보장이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선 가족이나 친지 등과 함께 거주하는 재가장애인 또는 시설장애인이 대부분이다. 비장애인에게는 성인이 되면 자립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장애인의 자립생활에는 비장애인의 그것보다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다. 하지만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경제여건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재가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시설장애인이 되는 것뿐이다.

  장애인시설들은 이른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시설들이 대부분 지가가 저렴한 외진 곳에 지어지기 때문이다. 동림이 있던 시설의 경우도 김포 외곽에 있는, 하루에 버스가 4대 밖에 다니지 않는 곳에 있었다.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잘 수 있는 권리는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권리지만 시설장애인들은 자고 일어나는 것과 식사조차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없다. 저녁식사는 무려 오후 4시반에 이루어진다. 시설종사자들이 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출 또한 반드시 목적지와 돌아오는 시간을 기입해야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09년 6월 4일 8명의 시설장애인이 자립을 선언, 이삿짐을 싸고 거리로 나와 숙식을 하며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고, 길고 긴 싸움으로 국가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마련되는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지금도 투쟁 중이다. 밥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정해져있던 생활에서 내가 먹고 자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권의 실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장애인권교육을 통해서 내가 가졌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과 동정의 기준은 바로 ‘낙인’이라는 것.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낙인 말이다. 물론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배려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그러하듯 장애인에게도 당사자의 의지를 존중하는 태도의 기반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동정의 시선에 의해서 자주 잊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취약한 장애인 이동권으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장애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실 (2013년 기준 등록된 장애인만 250만 명 이상이다.) 그리고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며 시혜적 관점으로 보게 하는 잘못된 교육의 폐해 때문이 아닐까?

  강의 중 영상에서 나왔던 한 장애인의 목소리로 후기를 끝맺을까 한다.


“우리 같은 장애인이 사회로 많이 나가야 아이들이 장애인을 보고도 무섭게 느끼지 않고, 장애인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배우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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