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4월 25일, 청소년 성소수자 故육우당 12주기를 맞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공동주최로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이상한(恨) 연대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상한(恨) 연대문화제>는 세가지 주제의 이야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야기 하나. 한(恨) 혐오와 차별에 한 맺히다
이야기 둘. 이상(異常) 보통과는 다른? 달라서 아름답다
이야기 셋. 이상(理想)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공동주최 단위의 회원들이 각 이야기 주제에 맞게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날 있었던 발언 몇가지를 여러분께 공유해드립니다.
(사진으로 보고 싶다면 여길 클릭해주세요! <청소년 성소수자 故육우당 12주기 추모행동> 사진 스케치 보러가기)
이야기 하나. 한(恨) 혐오와 차별에 한 맺히다
Zinn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12년 오늘, 2003년 4월 25일은 오늘같이 햇살 좋은 봄날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반전집회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들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육우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바로 12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육우당의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의 4월 8일자 일기에는 ‘파병철회 집회 때 쓸 매우 커다란 무지개’를 만드는 이야기, 인권을 유린하고 스스로 하느님이나 된 듯 설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보수 기독교를 거세게 비판하는 활동가의 분노와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차별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가 가장 사랑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혐오의 칼날을 들이댔던 세력과 부정의한 세상을 꾸짖고, 맞서기로 했습니다.
그가 밤늦게 까지 만들었다던 “Stop the war”가 쓰인 커다란 무지개를 단단히 들고 있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당시 19살이던 그는 성소수자라는 주변의 혐오와 차별에 힘겨워하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당시, 동인련)’의 문을 두드리고 이내 활동가가 됩니다. 누구나 평등한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단체의 재정을 걱정했고, 동성애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해방된 세상을 만들도록 힘을 보태며 보람과 자긍을 느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그가 두드린 문을 열어주고,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질병과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많은 수의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여전히 동성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해 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더 특별하게 여겨졌고, 때로는 죽음이라는 이별의 슬픔에 차별과 혐오의 고통을 보태는 일도 허다합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보내며 슬픔에 넋을 놓고 슬퍼도 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절망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모였던 그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찬란한 봄날. 그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바랐던, 그들이 살아 했을 이야기들을 대신하여 멈추지 않고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원한다! 권리를, 사랑을, 변화를!!”
그들이 살아있다면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점거했던 시청의 로비,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의 투쟁, 쌍용차 굴뚝 앞, 쫓겨 다니는 이주민, 처절하게 싸우는 장애인 동지들의 휠체어 옆, 세월호 참사 피해자 추모의 자리… 거리의 곳곳에서 함께 구호를 외쳤을 것입니다.
육우당이 떠난 지난 12년. 그가 늘 걱정했던 것처럼 혐오세력들은 그들만의 하나님, 그들만의 경전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협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더 볼썽사나워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성소수자들의 운동은 더 뜨겁고, 강하고, 더 단단하게 넓게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슬픔에는 또 다른, 더 커다란 희망이 있습니다.
진희 (장애여성공감)
참 이상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데, 왜 세상은 우리를 이상하다고 할까요? 도대체 보통의 기준이 뭘까요? 정말 이상합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과 죽음으로 내몰며 위협해온 사람들이 사과와 반성은 커녕 탈동성애, 중독치유, 동성애탈출을 내세우며 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탈’개념은 장애인 운동에서의 ‘탈시설운동’으로 의미있고 중요하게 다가오는데요. 오랜기간 장애를 이유로 사회와 분리되어 대규모 생활시설에서 살아가야 했던 장애인들이 시설밖으로 나와 이전과 다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권리, 사회 전체가 장애인을 배재하고 분리했던 거대한 시설이었음을 폭로하고 변화시키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탈’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치료받으란 이야기일까요? 간섭받지 말고, 존중받아야할 나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라니 이건 강요와 폭력이 아닙니까? 사실은 이상하니 보고 싶지 않고 밀어내고 싶다 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 당장 숨줄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한 모금의 공기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인권은 생명과 같은 절실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여기에 있는 이상한 우리를 위해주지 말고 존중해 줄래?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정말 본격적으로 이상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보통과 다르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치료와 보호,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손쉽게 놓여지는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스물여덟에 처음 집밖 세상을 만난 장애여성, 동성애자의 인권을 요구하며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고육우당님, 서른 다섯에 처음 내 방을 가져본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자유로운 삶을 다 누릴 세도 없이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화마로 떠난 고 송국현님, 폭력에 저항하며 인권을 외친다고 종북으로 몰리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때마다 위험한 사람취급받는 발달장애인, 노동차별을 하지 말라고 싸우는 사람들,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치는 유가족들, 뇌병변장애로 말할 때 마다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장애인, ....... 바로 여기 모인 우리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몸과 경험, 다른 정체성과 지향을 가지고, 다른 일상과 삶을꿈꾼다고 그것을 보통이 아닌 이상이라고 규정한다면 기꺼이 이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사회의 규정을 우리가 새롭게 정의해 봅시다. 이상해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 폭력적인 운명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이상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아, 그래도 우리 너무 심각해지지는 말아요. 우리들의 차이를 너무 멀다고 생각하거나 그 무게에 짓눌려 친해질 수 있는 시간들을 놓치지 말아요. 그리고 즐겁게 정상이라는 사회적 규범의 견고함에 이상한 틈을 더 많이 냅시다. 그래서 더 다양한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싸움과 축제를 벌입시다. 틈을 내고 또 내어 더 많은 이상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저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경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 모습을 보시면 하나님도 ‘보시기에 좋더라. 다르니 더욱 아름답구나’ 하실 겁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수사보다, 분노와 슬픔이 더 가득찬 우리들의 4월을 이상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로 모아내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달라서 이상한 모든 사람을 지지합니다!
낙원가
- 육우당
어서오라 어서오라 /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세계 / 잡아먹고 어서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 꽃잎타고 흘러오라
평등 평화 아름다운 / 세상이여 어서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또한 사람대접 / 받는세상 낙원이여
그런날이 온다면은 / 모든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 기뻐할 것이다.
이야기 셋. 이상(理想)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박에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안녕하세요! 띵동의 얼굴 마담, 국민티지! 갖고싶은 려성! 상임활동가 박에디입니다.
“차별과 혐오없는 세상을 향한 꿈” 이란 주제로 글을 쓰기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혐오하는 데 앞장서는 저로썬 조심스러워집니다. “못생겼다고 놀리던 나보다 못생긴 고등학교 여자생물동창생”, “가슴 없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동네 CD오빠”, “작년에 7만원 빌렸놓고 아직도 안갚은 친언니”, “우리 집앞에 몰래 분리수거 안 하고 쓰레기 버리는 터키 아저씨”까지.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앞서 말한 예들과는 다르게 우리가 느끼는 혐오는 빡세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당연히 그들의 혐오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취급당하곤 합니다. 정당성 없는 그들의 차별과 혐오에 완숙미 넘치는 트랜스젠더 3년차인 저 역시도 주눅이 들거나 덜컥 겁을 먹을 때가 있으니까요.
제 과거를 돌이켜보면 주위에서 꿈이 뭐냐? 직업이 뭐냐? 라는 질문에 그리고 만만친 않았지만 어렵게 얻은 일터나 취미 생활로 가졌던 동아리까지 항상 가장 먼저 신경썼던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 아니였나 생각을 해요. “내가 가진 정체성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지 말이죠.
그렇게 한발 한발 이어가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저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저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이렇게 당당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믿어요.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이어가는 그 순간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는 우리를 혐오하는 세력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알고 싶어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는 걸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게이 성향을 가진 제자를 둔 담임 선생님의 관심을, 레즈비언 성향을 가진 자녀를 알고 싶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어떤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냐며 묻는 청소년 기관 선생님의 애정을, 너는 여잔데 생리도 안 해서 좋겠다며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7만원 아직도 안갚은 친언니의 마음을 저는 직접 보고 들었고 느낄 수 있었지요.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이런 날도 오겠죠?
아들 "엄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게이예요.",
엄마 "며느리랑 싸울 일은 없겠구나. 이따 가면서 종로에 떨궈줄게."
딸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레즈비언이에요."
아빠 "그럼 너는 FX의 크리스탈이 좋니? 엠버가 좋니?"
이런 날도 올지 모르죠.
아직은 잘 보이진 않겠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의 지금 이 행동들이 씨앗이 되고 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뿜게 되면 앞으로 이 자리에 서있을 성소수자 친구들에겐 “정체성은 흠이 아니라 장점인 세상”을 줄 거라 믿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임보라 목사님의 말씀처럼 “충만하고 번성하셨음” 좋겠습니다.
이상 띵동의 상임활동가 박에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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