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기획팀)
30살. 서른. 서른을 앞둔 사람에게 세상은 참 짓궂다. 청춘을 그리워하는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부터 3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작가와 독자가 같이 고민하는 자기계발서까지.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래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나이다.
나도 곧 서른이 된다.
나는 서른이 두렵다
나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집에서는 평범한 이성애자로 살고 있다.
회사 선배들은 결혼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회사에서 유일한 ‘처녀’인 나에게 결혼적령기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남자친구 있니’라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없다고 하면 자연스레 총각인 선배들과 연결시켜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들을 조용하게 해 줄 ‘저는 독신주의자인데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그나마 낫다. 부모님이 얼굴도 알지 못하는 친구 딸 결혼 이야기를 하면 자는 척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내 세대를 오포세대라고 하는데 왜 나만 보면 결혼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 거짓말로 살지도 모른다. 아마 ‘노처녀’로 낙인찍힐 때쯤 그 거짓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거짓말로부터 빨리 해방되는 방법이 커밍아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렵다. 내가 존재하는 곳 중에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는 직장, 나는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연초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어렵지 않은 수술이었지만 하루정도 입원을 해야 했고, 애인에게 간병(?)을 부탁했다. 수술 전에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보호자 동의란에 서명이 필요했는데 내 애인은 할 수가 없었다. 결국엔 병원 측과 부모님과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진 후에야 수술을 할 수가 있었다. 그 때 우리가 사회로부터 소외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것은 내 거짓말로도 바꿀 수가 없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기점으로 많은 것과 싸우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는 지금, 나는 서른이 참 두렵다.
가장 두려운 것은 외로움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외로움일 것이다. 나는 어린 애인에게 가끔 평생을 약속하며 안심한다. 이 사람과 헤어지고 나이를 더 먹으면 또 다른 연애를 할 수 있을까라는 초조함, 평생 혼자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이를 먹을수록 쿨해질 수가 없다. 연애를 한번만 한 것도 아닌데 매번 이런 두려움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이 원초적인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할 때마다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20대 중후반까지 벽장으로 살아오던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애인과의 동거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애인이 학생인 것도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서른이 되면 내 집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철부지의 소망이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전셋집(그것도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신) 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인 애인을 대신해 두 사람의 생활비를 벌 자신도 없었다. 서른이 되면 폼나는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는데, 분명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서울 집값은 너무 비싸기까지 하다.
행복한 레즈비언이 되고 싶다
몇 개월 뒤에 나는 정말 서른이 된다.
20대의 나는 실수가 참 많았다. 20대에는 이성애자처럼 남자와의 결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레즈비언의 삶이 무서웠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여자가 좋았고 여자가 참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4년간 준비하던 시험에 떨어졌지만 덕분에(?) 직장도 얻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살고 있다.
나는 두려움을 안고 서른을 맞이하려 한다. 앞으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데 사회가 주는 현실적인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행복한 레즈비언이 되고 싶다. 현실적인 질문들에 제 때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대답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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