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회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노동하는 유령들

 

동성에게 끌리고 동성과 연애를 하며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 태어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살아가는 사람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몸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오랫동안 그런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특별히 구별되는 인간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그런 사람들 또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간 사랑을 고귀하게 여겼고, 여러 지역의 원주민 사회에서는 성별을 바꿔 살아가는 사람들을 신성하게 여겼다.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인식보다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죄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이 땅의 역사 기록에도 성적 다양성의 증거들이 있다. 신라 혜공왕은 여자 모습을 하기를 즐겼다고 하고, 고려 공민왕의 동성애 이야기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산업과 도시가 발달하고 전통적인 가족과 삶의 모습이 변화했다. 도시에는 새로운 성적 실천을 위한 익명성과 공간이 있었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용어들이 생겨났고, 성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이 구별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한편에서 가족제도를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체제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국가를 통한 성 통제도 강화했다. 동성애는 ‘비정상’으로 낙인 찍혔다. 과거의 다양한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체계적인 성소수자 억압이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은 많은 사회에서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성소수자 억압은 성별 고정관념, 여성차별, 인간의 성을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위선적인 성도덕, (이성애)결혼과 출산, 양육, 단란한 가정생활이 행복한 삶의 길이라는 보수적 가족주의와 관련 있다.    

 

현대사회에서 성소수자 억압은 성소수자들을 유령으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생계가 달려있는 일터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다. 이런 비가시성은 편견과 혐오를 강화한다. 성소수자들은 오랫동안 배제와 비난, 조롱의 대상이었다.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학교에서 괴롭힘당할뿐 아니라, 때때로 국가 탄압의 희생양이 됐다. 인류 최악의 재앙이었던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때 수만 명의 성소수자들이 학살당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성소수자들이 수동적인 희생자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19세기 말부터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있었다. 민주주의 혁명과 계몽주의는 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상을 싹틔우기도 했다. 당시 세계 최대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률을 폐지하는 운동을 지지했고,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성을 바라보려고 시도했다. 사민당 당원이자 성소수자 운동의 선구자인 마그누스 히르슈펠트는 노동조합의 협력을 얻어 공장 노동자와 학생 수 천명이 참여한 성행동 연구를 진행했는데 적어도 당시 독일 인구의 2퍼센트 이상이 양성애자나 동성애자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암흑기를 지나 60년대 전세계에서 새로운 급진화의 물결이 일었을 때 성소수자들은 다시 한 번 해방의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에서 당시에도 일상적이었던 경찰의 괴롭힘과 단속에 저항하며 성소수자들이 일으킨 스톤월(뉴욕에서 성소수자들이 드나들던 술집의 이름) 항쟁은 세계 각지 성소수자들로 하여금 자긍심과 성해방을 외치게 했던 기폭제였다. 흑인 민권 운동, 여성운동, 반전운동의 여파 속에서 새로운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했다. 뿌리 깊은 억압 속에서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던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제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나보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체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이 세계 곳곳에서 시작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수십 년 사이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고, 차별 금지와 권리 보장을 위한 운동을 증신시켰다. 오늘날 일부 국가의 성소수자들은 법적인 평등에 거의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는 결코 옛말이 아니다. 동성 결혼이 법제화된 국가들에서도 차별과 혐오범죄가 빈번히 일어난다.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라고 해서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일소되지 않았듯이 변화는 모순적이다.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오늘날 성소수자혐오는 주목받는 국제이슈다. 러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권력의 통치 수단으로 성소수자 탄압이 활용되고 있다. 지난 수년 사이 여러 국가에서 동성애자 또는 성소수자 옹호 활동을 처벌하는 법률들이 도입됐다. 여성인권처럼 성소수자인권이 국제 정치에 이용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속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가중되고 있다. 단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폭행, 고문, 살해당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몰이해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존엄하게 존중받지 못한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삭제한 날인 5월 17일을 기념해 세계 각지에서 성소수자혐오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도 위험하다. 1990년대부터 성소수자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고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하면서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간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들이 대중에게 사랑받기도 하고,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큰 폭으로 늘고 있기도 하다. 국가인권위법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명시되는 등 몇몇 제도적 개선도 있었다. 국제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은 동성애 수용도가 2007년 18퍼센트에서 2013년 39퍼센트로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우호적으로 변한 국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인식과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군형법에는 동성애자혐오를 조장하는 동성간 성관계 처벌 조항이 유지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에 소극적인 기업주들과 성소수자 혐오세력에 의해 제정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 이후 성소수자혐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조직화, 세력화하고 있다. 

 

성소수자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은 한국의 보수개신교, 우익 정치집단들과 관련이 깊다. 보수개신교는 성소수자에 대한 반대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지만 특히 이명박 정권 이후 성소수자혐오 조장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성애가 ‘비윤리적 행위’임을 강조하며 에이즈 공포와 연관시켜 편견을 조장한다.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가로막고,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차별금지 원칙을 격렬히 반대하는데, 이들의 압력에 밀려 2013년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차별금지법 발의 자체를 철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표현도 ‘의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차별과 편견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소수자와 약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기득권 논리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성소수자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은 더욱 자신감을 얻어 활개를 치고 있다. 박근혜 측근이라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꾸준히 성소수자 혐오세력을 후원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인사가 국가인권위원으로 임명됐다. 혐오세력의 압력이 국립국어원이 정의한 사랑을 차별적인 과거 표현으로 후퇴시켰고, 교육부는 학교에서 동성애에 대해 가르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들은 차별금지법과 각종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원칙을 삭제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 성소수자를 모욕하고 비방하는 ‘의견광고’가 버젓이 실린다.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한 것으로 잘 알려진 엄마부대봉사단 같은 우익 단체와 보수개신교 단체들이 성소수자들의 행진을 물리적으로 가로막는 일도 벌어졌다. 우익 단체들은 어제는 종북 척결 집회에 갔다가 오늘은 성소수자 인권 반대 집회에 간다. 극도로 우경화된 기성 정치 지형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고 혐오에 맞서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긴 불황과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 사회적 불만을 소수자들과 저항운동에 돌리는 ‘혐오’의 시대에 성소수자는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된 듯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지난 해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부정하고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진보 성향 정치인인 박원순 시장이 보인 태도는 변화를 바라는 성소수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성소수자 인권이 단지 인식 개선과 관용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임을 느끼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성소수자들은 계속해서 ‘사회적 합의’ ‘여론’을 빌미로 인권을 유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성소수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항의 표시로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투쟁 속에 희망이 있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부터 장애인 운동, 진보적 기독교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을 지지를 보냈다. 서울시청 점거 무지개농성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요구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든든한 연대를 확인했고 시장 면담과 사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변화를 위한 저항과 연대

 

하지만 여전히 한줌에 불과한 목청 큰 이들이 보수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해 성소수자 인권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는 인권헌장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성북구청장은 교회들의 압력을 빌미로 주민참여예산제 사업으로 당선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사업을 내쳤다. 드라마에 등장한 동성 키스 장면에 대한 방심위의 처벌 시도, 교육부의 성소수자 차별적인 성교육 지침, 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대한 거센 반대 목소리 등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공세가 거세다.

 

혐오에 맞선 저항과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사회 정의와 진보적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 차별에 맞서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성소수자 혐오는 여성억압, 이주민 차별, 노동자 탄압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희생을 떠넘기려는 자들에게 이득이 되고, 성소수자 인권의 실현은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노동자 투쟁과 세월호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대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참모습을 확인하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혐오에 맞선 저항과 연대를 모아내고자 한다. 5월 16일에 있을 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을 지지하고 참여하자. 전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무지개버스가 서울로 향할 수 있도록 연대하자.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혐오를 멈추고 광장에서 만나자.

 

 


 

 

 


  1. 수요일
    2015.05.11 12:55 [Edit/Del] [Reply]
    정치적으로 얽히지는 않기를 바랬는데 제가 무지했다는 걸 깨닫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광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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