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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버스4

퀴어라서 다행이다 - 울산성소수자모임 THISWAY 엔진 (울산성소수자모임 THISWAY ) 7월 15일 퀴어의 명절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나를 포함한 우리 디스웨이 회원도 그날만을 기다려왔다. 게다가 이번 퀴퍼는 더욱 우리를 설레게 한다. 바로 퀴어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퀴어버스를 타고간다. 디스웨이가 생긴지 이제 2년, 회원은 30명 남짓한 단체에서 준비금만 100만원이 넘는 큰 사업을 할 거라 상상도 못했다. 이것은 연대의 힘이다. 울산은 성소수자인권의 불모지였다. 한국노동운동사의 1번지인 반면에 장애인, 여성, 청소년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출발이 늦었다. 그 가운데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가장 짧다. 울산 퀴어들은 디스웨이가 생기기 이전에는 알음알음 알고 지냈을 뿐 지역사회에 드러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명의 용기있.. 2017. 7. 6.
희망 한 조각 - 퀴어버스 이야기 희망 한 조각 - 퀴어버스 이야기 희망버스. 퀴어버스. 희망을 싣고 달리는 버스. 그 단어가 들릴 때 마다 나는 생각하고 따질 겨를도 없이 되묻는다. “가야지. 언제냐?” 기억 한 덩이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IMF가 터졌다. 한진에서 10년 넘게 일하신 아버지는 팀 규모보다도 작은 중소기업에 버려지듯 내던져졌다. 팀의 2/3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잘려나갔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의 월급은 1/3이 뭉텅 깎였나갔다. 대학생인 두 남매를 둔 아버지에겐, 단지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 외엔 선택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어도 블루칼라로 살지 말기를 당부하던 아버지가 마음에 지금도 박혀있는 나는 주류사회에 편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꽤나 인정받던 IT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나는 만 2년간 꼬.. 2011. 10. 14.
희망의 버스와 함께한 성소수자 퀴어버스 이야기 첫 번째 퀴어버스 그리고 두 번째 퀴어버스에 오르기 전에 7월 3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청 광장 한 켠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3차 희망의 버스와 함께하는 퀴어버스는 탑승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지개 깃발을 펼쳤습니다. 희망의 승차권을 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7월 9일 2차 희망의 버스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던 퀴어버스가 두 번째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7월 9일 당시 퀴어버스에 탄 60여명과 희망의 버스에 오른 1만이 넘는 탑승객들은 부산에서 1박 2일 노숙을 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근처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85호 크레인을 만날 수 있었지만 경찰은 평화적 행진에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막아섰고.. 2011. 8. 8.
85호 슈퍼크레인 위에 띄우는 희망의 무지개, 희망의 무지개 버스가 간다! * 아래는 7월 30일 3차 희망의 버스와 함께한 장애인, 청소년,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 회원, 활동가들의 무지개 버스 그리고 성소수자 퀴어버스 참가자들이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에게 전한 유인물입니다. 성소수자들이 '퀴어버스'를 타고 온 이유 - 우리의 '삶'을 지키러 왔습니다. 우리는 버스타고 온 성소수자들입니다. 생소할지도 모르지만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희망버스를 한 대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퀴어버스’랍니다. 성소수자들도 대부분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자동차공장의 게이노동자도 있고, 트랜스젠더 우체부나 레즈비언 교사도 있는게 당연하죠. 우리는 일터 어디에나 있습니다. 다만 아무도 모를 뿐이죠.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여기.. 2011.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