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엄마의 이야기

Posted at 2016. 7. 19. 14:56// Posted in 성소수자와 가족

 

 

본 글은 『SQ21: 21세기 싱가포르 퀴어들』(2006) 에 실린 동성애자 아들을 둔 어머니, '쿠 훈 엥'님의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허가를 구하고 번역을 거쳐 행성인 웹진에 게재합니다.

 

* SQ21은 싱가포르의 LGBTQ 15명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인터뷰에 기반해 담은 책으로, 사람들의 실명, 나이, 직업, 실제 사진 등도 실어낸 나름 최초의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문: http://safesingapore.blogspot.sg/2007/02/sq21-khoo-hoon-eng.html

 

 

쿠 훈 엥 (54세, 화학자)

 

쿠 훈 엥

 

내겐 동성애자 아들 둘이 있어요. 하나는 스물넷, 다른 하나는 스물하나에요. 네, 실명을 써도 상관 없어요. 신 밍 (Shin Ming) 과 신 엔 (Shin En) 이에요.

 

언제 알게 됐냐고요?

 

신 밍이 열다섯일 때였어요. 어느 날 밤 내 방으로 건너왔죠. 녀석의 학교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저녁에 놀러 왔었고,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난 침대에 누워서 쉬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밍이 방에 와선, “엄마, 나 동성애자야.” 그랬죠.

 

그리고 나서, 난 정말..

 

그 전에도 의구심이 없진 않았던 것 같아요. 느낌은 있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죠. 무작정 아들에게 가서, “너 동성애자니?” 할 순 없잖아요.

 

녀석이 내게 알렸을 때도 여전히 얼얼했어요.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밍이 앞으로 정말 힘들겠구나” 였어요. 내가 걱정한 건 내 자신이기보단 밍이었죠. 여전히 내 아들이니까요.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이들 아빠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였어요. 남편이 대학에 다닐 때 게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 대해 나중에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거든요. “똑똑한 놈이 불쌍해. 어쩌다 동성애자가 돼 가지고, 동성애 이슈에 목숨을 걸다가 결국 에이즈로 죽었잖아.”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죠.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부정하고 모른 체하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음, 어쩌면 밍의 여러 이상한 학교 과제들 중 하나일 지도 몰라.” 밍은 언제나 조숙한 아이였거든요. 일찍 글을 깨치고서는, 종종 소파를 무대 삼아 짧은 연극 같은 걸 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반응을 살피려고 학교 친구들과 함께 계획한 건 실험 같은 걸지도 몰라.

 

하지만 사실은 이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어. 장난이라기엔 너무 심각해.” 그리고 나선, 어떻게 녀석이 내게 커밍아웃할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아들의 커밍아웃에 대한 내 반응은 어때야 했을까요.

 

전 아이의 방으로 건나가 말을 걸었죠. 보통의 엄마 같은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잘 생각해 봐.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릴 필요 없어. 넌 아직 어리잖니. 일단은 가리지 않고 모두와 친구가 되어 봐. 그리고 아빠에겐 아직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게 밍에 대한 내 반응이었어요. 이후에 힘든 상황이 있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마지막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냥 아빠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밍은 제 말을 따랐고, 2년 후 스스로를 좀 더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아빠에겐 말하지 않더라고요.

 

물론 그 2년 동안 혼자서 이 상황을 감당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밍은 사랑하는 내 아들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론 동성애자 자녀를 둔 부모가 된다는 데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시도했죠. 당시에 인터넷은 지금처럼 편하지 않아서, 난 싱가포르 국립대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려고 했죠. 결국에 난 LGBT에게 가장 관대한 곳 중 하나로 알려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한 권의 책을 구할 수 있었어요. 케빈 제닝스와 팻 샤피로가 쓴 <언제나 내 아이 Always My Child> 라는 책이었는데,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난 밍의 미래가 너무 걱정이 돼 견딜 수 없었어요. 그는 싱가폴에서 자랐지만 말레이시아 국적을 갖고 있는데, 두 나라 다 동성애 혐오가 강한 곳들이니까요.

 

당시에 난 여전히 ‘벽장에 있는’ 부모였고,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2년 정도 지나서 친구들이 내게 계속해서 물었죠. “그래서 밍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죠. “내가 알기엔 아직 없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다행히 아무도 의심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밍은 그 때 영국에 유학을 가 있었거든요.

 

둘째인 엔의 경우는 많이 달랐어요. 그 아이는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고, 여자아이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던 형과는 달리 많은 여자아이들과 너무 잘 어울려 다녔거든요. 엔이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일 때, 그 애 만한 나이의 딸들을 둔 친구네 가족들을 종종 방문하곤 했는데, 두 자매가 엔 옆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죠. 아주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그 애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엔은 연극을 했는데, 녀석에게 관심 있는 여자아이들이 우루루 연극반에 몰려오곤 했대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자아이들에게 전화로 연락이 오곤 했죠. 어느 날 엔이 여자아이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내게 얘기하면서, 그 중 하나가 그에게 “특별한 남자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다는 거에요. 저녁을 먹으면서 엔은 그 여자아이와 사귀어야 할지 말지 나와 상의하고 싶어했고, 내 조언은 첫째에게 한 것과 비슷했어요. 아직 누구와도 ‘특별한’ 친구가 될 필요는 없고, 모두와 좋은 친구가 되면 된다고요. 나중에 엔은 그 때 나를 떠 보려 했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엔이 열다섯이던 해에 밴쿠버에 가족 여행을 갔는데, 첫째 밍이 동성애자에 관한 책들을 사서 동생에게도 읽힌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집에 돌아와선 엔이 그 책들을 읽는 걸 봤죠. 형이 게이니까 둘째도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애들 아빠가 엔이 이 책들을 읽는 걸 보고선 그 애를 몰아세웠어요. “니 형이 너도 동성애자로 만들려고 하든?”

 

다른 사람을 동성애자로 바꿀 수 없다는 걸 난 너무 잘 알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남편이 둘째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그 날 저녁 엔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죠. “엔, 혹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있니?” 그 애는 자기 역시 게이고, 그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어요. 아들 둘 다 동성애자라는 게 엄마 아빠에겐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거라고요. 그 애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거쳤을지 이제는 잘 알아요. 어쨌거나 난 엔에게 늘 하던 대로 같은 이야길 했죠. 모두와 좋은 친구가 되라고. 그리고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내가 아니라 너희에 대해 걱정하는 거라고요.

 

남편의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밍에 대해 알게 됐을 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둘째 엔도 게이라는 걸 발견하고선 내게 이렇게 비꼬더군요. “우린 거의 로또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어. 아들 둘 중 둘 다 동성애자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백만 분의 일?” 그 역시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해야 했겠죠—그 끔찍하게 깊은 실망을요. 그는 자기가 나름으로 둘을 응원해 왔다고 생각할 거에요. 그가 계속해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원해 온 건 어쩌면 사실이고, 그가 둘을 이전과 달리 대했다거나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됐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아내인 내게 그가 수없이 해 온 아이들에 대한 실망과 불평은, 그가 아이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거라고 볼 수 없게 만들어요.

 

결국 우리는 2년 반 전에 이혼했어요.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제일 먼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좋아. 이제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동성애자가 아닌 자식들을 둘 수 있겠군.”

 

이혼 소송 기간 중 그가 내게 했던 셀 수 없이 끔찍한 말들, 상처가 되는 행동들 가운데 그 말이 최악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가끔 그 말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질 때도 있어요. 보다 합리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죠.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우리 애들이 뭐가 잘못됐는데? 대체 왜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건데?”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첫째, 동성애자인 게 대체 뭐가 잘못이야? 둘째, 우리 아이 둘 다 동성애자인 게 엄마인 내 탓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건가? 그래서 새로운 여자친구와 결혼해 새 아이들을 가지면 그 애들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물론 남자들에게, 특히 “전통 중국 문화”에서 가족의 대를 잇는 걸 중시하는 가부장적 남자들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해해야겠죠. 만일 그가 했던 말을 지금 다시 듣게 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거에요. “동성애자건 아니건 당신의 새로운 자녀들이 지금 우리 아이들의 반 만큼이라도 훌륭하고 사랑스럽게 자란다면 그건 정말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일 거야.” 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여전히 응원해 줘요. 호주에 있는 친척을 방문했을 때, 전 남편과 나는 우리 애들이 동성애자라는 걸 설명했어요. 그리고 첫째 밍이 미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LGBT 대학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전 남편은 그 대학모임에서 만든 전단지에 ‘게이 아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한 아버지’로 소개되는 걸 개의치 않았어요. 나도 역시 미국에 방문해 밍과 친구들이 기획한 동성애자 인권과 문화에 관한 강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내가 거기에 기꺼이 함께 했다는 사실이 첫째에겐 꽤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동성애자 자녀를 누구보다 온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싱가포르에 남아 있던 엔 역시 계속해서 바빴어요. 중학교 때 또래들 사이의 강한 동성애 혐오를 경험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다가, 결국 인터내셔널 스쿨로 진학하게 됐는데 그 애에겐 잘 된 일이었죠. 인터내셔널 스쿨에 가서 훨씬 더 동성애 친화적인 환경을 만났고, 거기서 훨훨 날아다니더라고요. 거기서 엔은 동성애자 지지 모임을 만들기로 했어요. 미국으로 치면 게이 스트레잇 연대 (GSA: Gay Straight Alliance) 라고 부르는 지지 모임이요. 먼저 몇몇 선생님들과 얘기했을 때 다들 격려를 많이 해줬다고 했어요. 다음으로 이 안을 교장 선생님께 제출했는데, 교장 선생님은 GSA 라는 이름이 싱가포르에서 너무 ‘쎄게’ 들릴까봐 고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모임을 게이 스트레잇 포럼 (Gay Straight Forum) 으로 부르기로 결정됐죠. 그리고 나서는 엔은 연사를 초청해 관련 강의를 꾸리는 등 동성애자가 된다는 데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의 새로운 구성원들을 맞이할 수 있었어요. 그 모임에서의 아주 긍정적인 경험이 그 애의 개인적인 성장에도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액션 포 에이즈 (AFA: Action For AIDS, 싱가포르의 HIV/AIDS 관련 단체) 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고, 어웨어 (AWARE: 싱가포르 최대의 여성운동 단체) 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왔어요. 올해는 특히 HIV 와 여성에 관한 캠페인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싱가포르에서 HIV 양성 진단을 받은 여성의 2/3가 남편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이에요. 여성들도 HIV 에 감염되기 쉬울 수 있다는 거죠. 한편 싱가포르에서는 이성애자 감염률이 여전히 동성애자 감염률보다 높지만, 동성애자 아들을 둔 부모들에게 HIV 는 언제나 주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했더니, 다행히도 둘 다 안전한 섹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싱가포르에서는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HIV 를 둘러싼 위험과 안전에 관해 잘 모른 채로 위험을 감수하고 있어요. 둘째인 엔 역시 AFA 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가 처음으로 자원 활동을 시작한 날 하필 사무국장이 급히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혼자 부스를 내내 지키기도 했대요. 2년 전 에이즈 촛불 추모집회에서 사무국장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둘째가 부스를 아주 잘 지켰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어요. 둘째가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AFA 를 비롯한 이런 자원 활동들은 싱가포르에서 내가 맺고 있는 친구 관계를 엄청나게 확장시켰어요. 나는 원래 말레이시아 페낭 출신이기 때문에 내 주변 세계는 참 작았던 것 같아요. 직장 동료들 외엔 남편의 가족 아니면 다른 부부 친구들 정도가 다였죠. 2년 전 <우리 같은 사람들: 싱가포르의 성 소수자 People Like Us: Sexual Minorities in Singapore> 라는 제목의 책 출판 기념회에서, www.yawningbread.com 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알렉스 오 (Alex Au, 싱가포르 최초의 동성애자 단체인 People Like Us 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 를 만났어요. 그와 대화하면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의 부모와 친구들을 위한 일종의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죠. 그 때 알렉스에게서, 부모에게 커밍아웃한 뒤 집에서 쫓겨나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젊은 게이 친구들에 관해 처음 듣게 됐어요. 동성애자 뿐 아니라 그들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어쩌면 동성애자들의 부모와 친구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죠. 알렉스에게서 동성애자 자녀를 둔 다른 엄마의 연락처를 받았는데, 당시에 그 분께선 너무 바쁘셨고, 나도 이혼을 거치며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에 있어서 함께 뭔가를 꾸릴 여력이 없었어요. 요즘에 와서 얍 킴 하오 목사님 (Rev. Yap Kim Hao, 싱가포르의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공개적으로 LGBTQ 지지 활동들을 해 왔고, 현재 LGBTQ 친화적인 교회인 Free Community Church 에서 활동하고 있다) 과 조금 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어요.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내게 커밍아웃했을 때 내가 필요로 했던 그런 종류의 지지 모임 같은 걸 시작하게 될지도 몰라요.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는 SAFE Singapore 라는 지지 모임을 만들게 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 둘 다 외국에 나가 있어요. 우리는 주로 이메일을 하고, 일 주일에 한 번씩 통화도 하고, 둘 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기도 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들과 부모가 유대를 유지하는 현대적인 방식인 셈이죠. 내가 197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와는 전혀 달라요—그 땐 편지 한 장을 주고 받는 데 일주일 넘게 걸리곤 했거든요. 첫째 밍은 미국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최근엔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번 여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즈비언 권리센터 (NCLR: The National Center for Lesbian Rights) 에서 법무 담당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둘째 엔도 미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젠더연구에 관심이 있어서 전공할 생각을 하고 있대요. 통화나 인터넷 메신저로 그 애 남자친구들과 몇 번 얘기해 보기도 했어요.

 

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애들이 뭘 원하는지만이 아니라 어디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의 문제에요. 둘 다 말레이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둘에게 늘 얘기해요. 엄마로서 너희에게 바라는 건 각자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그 사회에 의미있는 구성원이 되는 거라고요.

 

여전히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궁금해요. 정책 결정 과정에 적잖은 종교적 입김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동성애자 커플이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한다면 그 사랑을 축하해선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이들이 가족을 꾸려선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죠? 첫째 밍은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어린 조카들과도 능숙하게 잘 놀아줘요. 그 애가 자녀를 갖지 못한다면 정말 아까운 일인데, 싱가포르에서는 법적으로 그 애가 자녀를 입양하는 게 불가능해요. 다들 이렇게 말하죠. “싱가포르는 너무 보수적인 사회라서 공개적으로 이걸 하는 건 안 돼, 저걸 하는 건 안 돼.”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설문조사라도 된 적이 있나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주변의 누군가 동성애자인 걸 알게 됐을 때 그 전과는 다르게 대할 건가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동성애자 자녀들이 여전히 우리의 자녀들인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모든 LGBT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상황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요.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더 잘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거에요. 아이들이 먼저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을 믿고 솔직히 자신을 드러낸 것처럼, 솔직히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게 중요해요.

 

두려워 할 것 없어요. 커밍아웃한 자녀들은, 커밍아웃하기 전 당신이 사랑한 바로 그 똑같은 자녀들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 아이들을 사랑할 거잖아요. 커밍아웃한 바로 그 날, 그 다음 날, 그 이후로도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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